'혐오와 매혹사이: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혐오와 매혹사이》 저자 이문정·동녘·336쪽·2018년 9월3일 출간·현대미술
《혐오와 매혹사이》 저자 이문정·동녘·336쪽·2018년 9월3일 출간·현대미술

 

이 책의 한 단락 : 세라노는 '시체 안치소'(The Morgue)시리즈에서 실제 시체를 사진 촬영했다. '시체 안치소'가 허스트의 작품들에 비해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것은 그 강도가 너무 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 작품들은 발표 당시 죽은 자의 존엄을 훼손했다는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시체 안치소에 냉동 보관되어 있던 인간의 시체를 촬영한 것이라 당시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클로즈업(close-up)되어 피부의 주름과 솜털까지 선명히 보이는 거대한 사진들은 관객들이 관음증적 엿보기를 하는 것같은 불편함까지 이끌어낸다. 그러나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것은 세라노의 목표가 아니었다. -96쪽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예술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훨씬 복잡하고 모호한 영역이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수학적 배치와 기하학적 비율을 따져가며 성경 속 진리의 세계를 통해 이 세상의 선과 악을 구분하고, 이를 세상의 아름다움과 일치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은 이같은 ‘진=선=미’ 공식으로부터 완벽히 해방됐다. 그리고 이 분리는 예술이 갖는 묘한 매력을 탄생시켰다.

몇몇 예술가들은 이제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나 잔혹하다 못해 지저분하기까지 한 작품을 전면에 드러낸다.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던 죽음, 시체, 피, 곰팡이, 배설물 등의 소재(선과 반대되는 개념들)로부터 ‘아름다움(미)’을 발견해내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 “이렇게 끔찍한 것도 미술이야?”

도대체 왜 이 예술가는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장식하는 기이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2007년 영국의 한 괴짜 예술가는 주물을 떠 백금으로 만든 해골에 1106.18캐럿에 달하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작품’을 만들었다.

또 다른 예술가는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서 채혈한 피를 얼려 본인의 두상을 만들고, 태반과 탯줄을 얼려 갓난아기 얼굴 모양을 한 두상을 만들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시체 안치소에서 실제 시체 사진을 찍거나, 자신의 똥을 깡통에 담아 전시하거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쇠고기로 옷을 만들어 직접 입은 예술가도 있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소재들이지만, 이런 작품을 본 관객들은 한편으로는 충격과 혐오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작품을 계기로 ‘불특정한 죽음’에 대해 떠올려 보거나 생소한 진실에 대해 고민해보는 등 또다른 ‘미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현대미술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묘하게 이끄는 지에 대해 들려준다.

앞서 ‘괴짜 예술가’라고 언급한 데미안 허스트, 자신의 피를 얼려 자아 두상을 만든 마크 퀸, 시체 사진을 찍은 안드레 세라노, 자신의 똥을 깡통에 담아 전시한 피에로 만초니, 쇠고기로 옷을 지어 입은 야나 스테르박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의 작품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출퇴근길 도로에서 로드 킬 당한 동물 사체, 도시의 패악이 되어버린 길고양이들처럼 지저분해 보이지만 세상에는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들이야말로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진지하게 마주봐야 하는 주제임을 강조한다. 불편함을 유발하는 예술적 행위 대부분은 스캔들과 가십이 아니라, 우리 삶에 숨겨진 어떤 진실을 찾으려는 예술가들의 절실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 불편한데... 왜 이렇게 마음이 끌리지?

미술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할까.

저자는 “어떤 작품이 훌륭한 예술로서 의미를 갖는지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이상향을 보여주는 것이 미술가의 의무는 아니며 모든 미술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장은 미술에 불필요한 족쇄를 씌우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가장 쉬운 사례로, ‘새드엔딩’ 영화를 들 수 있다. ‘행복’ 혹은 ‘아름다움’이 빠진 서사는 때로 우리 마음 속에 더 큰 물결을 일으킨다.

예술과 외설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듯 현대미술은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는 과도한 잔혹성 혹은 ‘비윤리적인’ 소재로 인해 시민단체의 규탄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진리가 곧 선이요, 선이 아름다움'이라는 합일공식에서 해방됐으니 진, 선, 미를 나누는 세 가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마음을 먹고 ‘혐오와 매혹’ 사이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그동안 낙인찍고 밀어냈던 불편한 예술의 얼굴을 마주 볼 차례

이 책은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 등 우리에게 불편한 키워드를 주제로 구성됐다. 이 모두는 하나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 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고 궁금한 무언가다.

특히 ‘질병’의 경우 이런 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 것인지 무척 궁금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투병 과정을 예술로 만든 한나 윌케는 1987년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점점 죽음에 다가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가감없이 사진과 비디오에 담았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점점 빠지고, 눈은 충혈되고, 혀의 색도 바뀌는 등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의 모습을 담아냈다. 몸 곳곳에 주삿바늘을 꽂고 가슴과 배, 엉덩이에 거즈를 붙인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윌케의 모습은 병을 극복하려는 의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긍과 체념, 두려움 등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만약 당신이 윌케의 이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고 혐오스럽고 불쾌함을 느낀다면 당신은 ‘미’와 ‘추’를 구분하는 진부함에 길들여져 왔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우리 실제 현실에는 아름다운 비너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윌케의 작품명이 '인트라 비너스(Intra-venus)'인 것은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Intra-venus’는 ‘동맥 혹은 정맥으로 들어가는 정맥 주사의'라는 뜻을 가진 ‘intravenous’와 동음이의어이다. 이 같은 중의적인 단어로써 투병하는 윌케의 상황을 은유한 것이다.

우리는 윌케의 사진과 영상을 통해 불편함과 두려움, 연민과 슬픔을 느끼면서 피할 수 없는 병의 흔적과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불편한’ 미술을 이해하고 사유했으면 한다. 더불어 오묘하고 매혹적인 동시에 불편한 동시대 미술이 단순히 예술적인 도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숙고하고 긍정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것임을 느끼길 바란다”고 강조한다.(《혐오와 매혹사이》 저자 이문정·동녘·336쪽·2018년 9월3일 출간·현대미술)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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