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1차 빛공해방지 종합계획 달성률 '반타작'도 안돼

밤 12시가 지나서도 조명이 그대로 켜져 있는 삼청동 갤러리 모습.(권오경 기자)2018.9.11/그린포스트코리아
밤 12시가 지나서도 조명이 그대로 켜져 있는 삼청동 갤러리 모습.(권오경 기자)2018.9.1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살고 있는 박모(27)씨는 최근 암막커튼을 구매했다. 한밤중에도 창밖으로 환한 불빛이 들어와 수면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타워팰리스는 특히나 외벽이 유리로 돼 있어 실내에서 불을 켜면 유난히 빛이 더 밝은데 그 빛이 내 방으로 다 들어온다”면서 “주변에 술집들도 많아 화려한 간판때문에 중간중간 잠을 깨고 깊이 잘 수 없어 암막커튼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살고 있는 유모(27)씨도 비슷한 불편을 호소했다. 그는 “직업 특성상 실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창 바깥에 바로 촬영 스튜디오가 있는데 간판 장식이 하도 화려해서 낮에도 불편하고 어두운 밤에는 불빛이 더 부각된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빛공해’ 피해자들이다. 빛공해는 인공조명이 너무 밝거나 지나치게 많아 야간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환경부는 지난 2014년 제1차 '빛공해 방지 종합계획'을 수립, 2018년까지 국토의 50%를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조명기구의 빛방사허용기준 초과율을 13%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상반기가 지난 지금도 국토의 23.5%만이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빛방사허용기준 초과율도 정확한 수치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 무관심으로 방치된 빛공해 방지법...‘유명무실’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은 지난 2013년 2월부터 시행됐다. 이 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빛공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조명환경관리구역은 제1종(보전·자연 녹지), 제2종(생산·자연 녹지), 제3종(주거지역), 제4종(상업·공업지역)까지 구역을 구분하여 지정된다.

관리되는 조명은 공간조명(가로등, 보안등, 공원등, 옥외 체육공간, 공동주택단지), 광고조명(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관련 허가대상), 장식조명(건축물, 교량, 숙박 및 위락시설) 등이다.

조명환경관리구역에서 허용되는 공간조명과 광고조명 조도(비추는 밝기 정도)는 1~3종 구역은 최댓값이 10룩스(Lux)를 초과하면 안 되고, 4종 구역은 25룩스까지 허용된다.

광고조명의 경우 휘도(조명원이 빛나는 정도)는 1종 50룩스, 2종 400룩스, 3종 800룩스, 4종 1000룩스로 제한된다.

빛방사 허용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제공)2018.9.10/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시제공)2018.9.10/그린포스트코리아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해당 법률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또 현행법 자체의 문제도 빛공해 방지 대책이 부실한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현행법상 각 시·도는 지자체별로 ‘시·도 빛공해 방지계획’을 세워야하지만 ‘빛공해 방지계획’에 대한 수립 기한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 같은 현행법의 ‘빈틈’으로 2018년 9월 현재까지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빛공해 방지계획을 수립한 곳은 8곳, 빛공해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한 곳은 12곳, 조명환경 관리구역을 지정한 곳은 서울, 경기, 인천, 광주 단 4곳에 불과하다.

지난 2015년 서울·대전을 시작으로, 2016년 광주·부산, 2017년 인천·울산·대구·경남이 계획을 수립했고, 올해 세종·경기·충남·전남, 내년 충북이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전북·강원·제주도는 빛공해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이후 빛공해 방지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도 결국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듯 보인다. 서울시 도시빛정책과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예산이 없기 때문에 아주 적은 표본을 갖고 평가한다. 오차범위가 크기 때문에 빛방사허용기준을 초과한 지역이 전체 지역에서 몇 퍼센트의 비율을 차지하는지 그 수치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면서 “다만 빛공해 추세가 과거보다 현재 얼마나 나아졌는지, 또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걸 평가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치된 것은 환경영향평가뿐이 아니다. 시·도지사는 매년 시·도 빛공해 방지 계획의 추진실적을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하고 환경부 장관은 매년 추진실적을 평가해야 하지만 실제 평가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평가지침도 없어 내년에나 지침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 ‘빛공해’ 심각성...한국 G20 국가중 2위  

국제 공동연구팀이 2016년 6월 전 세계의 빛공해 실태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국토에서 빛공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89.4%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이탈리아(90.4%) 다음으로 2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제주특별자치도 빛공해 환경영향평가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보안·가로등 공간 조명에 의한 침입광의 빛방사허용기준이 타 조명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결과 일반상업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모두에서 빛방사허용기준을 과반 이상 초과했다. 자연녹지 빛공해 초과율이 80.50%로 가장 높았고, 제2종 일반거주지역 78.57%, 준주거지역 76.19%,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 66.67%을 기록했다.

조명 종류별로는 공간조명의 빛공해 초과율이 74.29%, 광고조명 67.68%. 장식조명 66.67% 순이었다.

제주도는 밤낮의 구분 없이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빛 공해가 매우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빛 방사허용기준 강화’, ‘빛공해 환경영향평가’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관광특구를 예외로 두는 조항은 따로 없다”면서 “관광특구를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하는 일은 지자체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빛공해 환경영향평가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25개구 중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간조명의 조도값 및 광고조명, 장식조명의 휘도값이 빛 방사허용기준보다 높게 나왔다.

특히 옥외광고물 허가 수량이 서울시 전체의 34.7%를 차지하는 강남구에서 광고조명(외조형)이 차지하는 빛방사 측정값은 1만6157cd/㎡로, 허용기준인 1500이하보다 약 16배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서울시제공)2018.9.10/그린포스트코리아
강남구 빛공해 현황 (서울시제공)2018.9.10/그린포스트코리아

높은 상업지역 구성비를 나타내는 중구(39.22%)와 종로구(12.25%)에서도 광고조명(외조형)이 차지하는 빛방사 측정값이 평균 1만7248.2cd/㎡로 나타나 마찬가지로 허용기준보다 17배 높았다.

빛공해로 인한 민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제주도내 빛공해 민원은 52건이다. 2016년만해도 18건이었던 빛 공해 민원은 지난해에는 28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서울시는 빛공해 민원 건수가 가장 많다. 서울시의 2017년 빛공해 민원현황 분석 보고에 따르면 빛공해와 관련한 민원 건수는 2013년(773)부터 2017년(2413건)까지 3배가량 늘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접수된 빛공해 총 민원 건수는 8016건으로 수면방해(2014건), 생활불편(217), 눈부심(177) 순으로 높았다.

◇ 생태계도 위협...‘별들의 전쟁’ 막기 위한 전세계적 움직임

2007년 국제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기구(IARC)에서는 빛공해를 발암물질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빛공해가 사람의 생체리듬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수면상태로 접어들기 위해선 몸에서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야 하는데 야간에 빛공해가 지속되면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이 억제되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빛공해는 우리의 생체리듬뿐 아니라 동·식물의 생태계도 교란한다. 빛공해로 낮과 밤이 모호해지면 식물 번식률이 떨어지고, 양서류·포유류 등의 생식률이 저하된다.

서울시의 빛공해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인공조명이 포유류에 미치는 영향은 섭식활동(foraging behavior) 교란과 포식위험 증가, 생체시계 교란, 로드킬 유발, 이동특성과 생태통로(ecobridge) 사용단절 등이 있다.

빛공해는 농림수산업의 영위에도 위협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울시의 빛공해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벼, 콩, 참깨 및 들깨와 같은 단일성식물은 단일조건에서 화성이 유도되어 개화, 결실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나 장일 조건(야간조명이 비출 때)에서는 화성 유도가 지연돼 영양생장기간이 길어지고 개화가 늦어져 결국 수량감소를 초래하게 된다.

밤하늘이 밝아져서 천체관측도 어려워졌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도시 조명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이유로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빛공해 방지를 위한 관련 법규 및 조례를 만들어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1972년 애리조나주를 시작으로 100개 넘는 도시에서 관련 법규와 조례가 시행되고 있다. 애리조나주의 경우 옥외조명의 정도에 따라 전등갓을 씌우도록 규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구역 성격에 따라 조도와 조명시간을 제한하고, 조명갓을 씌우는 방법, 사용 램프의 규정 등 기술적 규제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감대책까지 세워놓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과반 이상의 국민들이 빛공해의 원인을 광고판으로 지목한 데 주목해 2013년 7월1일 모든 광고판에 대해 새벽 1~6시 사이 점등하도록 관련 법규를 마련했다. ANPCEN(어둠과 하늘을 보호하는 국가환경단체)는 “우리의 인생은 어둠을 필요로 하고 어둠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자취를 감춰가는 별들의 빛과의 전쟁을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면서 “비록 법규가 마련된 지 6년이 지난 7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중이지만 환영의 뜻을 밝힌다. 이전에 설치된 광고판을 포함해 새로 설치되는 광고판 모두를 대상으로 정부의 엄격한 관리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호주는 환경보호법을 제정해 지나친 조명으로 인한 빛공해를 불법행위로 간주해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1989년 오카야마(岡山)현에서 빛공해 방지 조례가 최초로 제정됐다. 이후 각 지역에서 빛공해 관련 조례들이 생겼고, 1998년에는 일본 환경성에서 빛공해 대책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영국은 청정근린 환경법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빛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지자체는 시정명령 조치 불이행시 최고 5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

국제조명위원회(CIE)는 국립공원과 같은 자연환경 보전지역은 건축물과 광고물의 평균 휘도(輝度·광원의 단위 면적당 밝기의 정도)가 0㏅로 제한하고, 농림·녹지 지역의 경우 평균 휘도가 건축물은 1㎡당 5㏅, 광고물은 5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주거지역의 경우 건축물은 15㏅, 광고물은 400㏅를 넘어선 안되고, 야간 활동이 활발한 상업지역일지라도 건축물은 50㏅, 광고물은 800㏅, 대형 광고물의 경우도 1500㏅ 이하를 권장한다.

이 같은 국제적 움직임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빛공해방지를 위한 시행들은 대기오염, 소음 그리고 수질오염 등의 공해문제에 가려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빛공해를 개선하고자 2차 빛공해 방지종합계획 수립 중”이라면서 “조명환경관리지역이 확대되면 현행법이 적용돼 빛방사 허용기준 초과율도 줄어들고 지자체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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