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자의 마니아+] "어깨 위 작은 '어리광쟁이 폭군'이죠"
[홍기자의 마니아+] "어깨 위 작은 '어리광쟁이 폭군'이죠"
  • 홍민영 기자
  • 승인 2018.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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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조 '해리' 키우는 새 마니아 김선경씨

마니아.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 세상이 넓고 복잡해지면서 마니아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교적 대중적인 마니아부터, 남들은 모두 외면하는 아주 소소한 것에 몸 바치는 마니아까지. 이들은 말한다. “99명이 오른쪽이라 해도, 내가 왼쪽을 택하면 그것이 바로 내 길이다.”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한층 다채롭게 만드는 그들.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마니아 문화’를 통해, ‘흥에 겨운 소수’가 인생을 즐기는 방식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홍민영 기자]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시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다양한 동물들이 안방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가족을 이룬 개는 물론 ‘길에 사는 도둑’ 취급받던 고양이, 햄스터, 파충류까지 키우는 사람도 있다.

그중 새는 수면 밑에서 조용히, 그러나 탄탄한 마니아층을 이루고 있는 반려동물이다.
 

'뽀송한 가슴털'이 자랑인 모란앵무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뽀송한 가슴털'이 자랑인 모란앵무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날개 달린 가족

“해리! 그거 하지 말랬지!”

서울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김성경(30대)씨의 아침은 반려동물 ‘해리’를 혼내는 소리로 시작한다. 해리가 워낙 작고 약한 탓에 큰 소리는 내지 못한다. 덕분에 혼을 내도 효과는 ‘없음’이다. 

아니나 다를까, 해리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해리의 일이란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책을 찢는 것이다. 새의 습성을 알기에 평소 조심했는데 간밤에는 책상 위에 책을 두고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부리나케 해리에게서 책을 빼앗아 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씨는 귀퉁이가 너덜너덜해진 책을 움켜쥐고 해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분노가 식어버린다. 

“그래, 거기 둔 내 잘못이지. 네가 무슨 죄겠냐.” 

김씨는 한숨을 쉬며 팔을 내밀었다. 해리가 기쁜 듯 날개를 펼치고 날아와 팔위에 앉았다. 가느다랗고 긴 발가락, 보드라운 털, 초코알같이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남은 분노마저 사르르 녹여버렸다. 

“이제 다시 그러지 마?”

김씨는 지금까지 수 십 번 반복했던 말을 또 되풀이했다.

"언니 팔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라는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언니 팔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라는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김씨의 반려동물인 해리는 모란앵무다. 연한 개나리색 머리와 하늘색, 민트색의 날개가 아름다운 새다. 

그는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워 왔다. 처음엔 강아지를 키웠다.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강아지는 언젠가 크리스마스날 부모님이 데려 온 치와와였다. 치와와는 그렇게 가족과 14년을 살다 종양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해리를 만난 것은 4년 전. 지방에 사는 친한 동생이 새를 분양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을 때였다. 동생이 그의 집에 머물면서 새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얻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에게 새는 ‘수수께끼의 세계’였다. 직접 접하고 보니 조그만 머리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게 귀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룸메이트와 진지하게 논의한 끝에 새를 들이기로 했다.

해리는 일반 가정집에서 분양 받는, 일명 ‘가정 분양’으로 데려왔다. 깃털의 색이 너무나 예뻐서 룸메이트와 김씨 두 사람 모두 첫 눈에 반해버렸다. 그때는 이런 말썽쟁이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애정을 먹고 사는 폭군

모란앵무는 모란잉꼬라고도 한다. 말라위, 모잠비크, 잠비아,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의 밀림이나 계곡에 20~100마리가 집단 서식한다.

주요 먹이는 풀의 씨앗, 나무의 새싹 등이고 둥지는 나무구멍이나 떼베짜는새(Social Weaver Bird)의 둥지를 이용한다. 알을 낳으면 암컷이 22일 가량 품어 부화시키고, 육아는 암‧수컷이 공동으로 한다. 깃털색이 아름답고 사람을 좋아해 ‘새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종이다. 

여기까지가 김씨가 공부해 알고 있는 모란앵무의 습성이다. 

실제로 해리와 함께 살며 깨달은 것은 새도 강아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가족과 손님을 확실히 구분하고, 가족 중에서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애교도 부릴 줄 안다.

또 집 밖에서 인기척이 나면 강아지처럼 짖기도 하고,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하루 종일 붙어있고 싶어 하는 ‘껌딱지’ 같은 면도 있다.

조그만 몸으로 팔이나 어깨에 착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언니에게 애교를 피우는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애정 가득한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는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그러나 반려동물을 키우면 늘 그렇듯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종이가 눈에 띄는 족족 물어뜯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암컷의 경우 번식기가 되면 꼬리깃과 둥지를 꾸미기 위해 많은 양의 종이를 사용한다.

김씨도 예외는 아니어서 적지 않은 수의 책이 희생되었다. 책뿐만 아니라 각종 서류, 심지어 지폐까지 해리의 부리에 해체됐다.

지폐가 희생되었을 때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새는 그것이 지폐인 줄 모른다. 어디까지나 지갑 밖에 꺼내 둔 본인의 잘못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뿐만 아니라 질투도 심하다. 시도 때도 없이 육탄돌격하며 관심과 애정을 요구한다. 한가할 때는 괜찮지만 바쁠 때는 그 불꽃같은 애정 공세가 버거울 때도 있다. 그래도 김씨는 최대한 해리의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하고 있다. 

새는 사람의 애정을 먹고 사는 폭군이에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말이다. 김씨는 그 말이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꼬리깃 꾸미기에 열중하고 있는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꼬리깃 꾸미기에 열중하고 있는 해리.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새와 함께 하려는 모두에게

강아지 마니아들은 세상 모든 강아지가 귀엽고, 고양이 마니아들은 길고양이도 내 고양이처럼 느낀다. 김씨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의 비둘기나 참새도 모두 귀여워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새의 마법은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을 새를 권할 때는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종이를 물어뜯는 습관때문이다. 해리의 경우 종이에서 끝나지만, 다른 새들은 종종 컴퓨터 키보드, 스마트폰, 케이블 선, 전기 코드, 옷까지 물어뜯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살도 예외일 수 없다. 

크기는 작지만 정말 똑똑해서 외로움도 많이 탄다. 가족의 사랑이 부족하면 깃털을 뽑는 등 자해를 하기도 한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키우는 게 좋다. 

‘새가슴’이라는 말처럼 정말 아주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기 때문에 놀라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질 좋은 먹이, 목욕을 즐길 수 있는 물통, 깨끗하고 안락한 환경, 앉아서 쉴 수 있는 횃대와 둥지는 기본이다. 

화난 눈(위)와 신난 눈(아래)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화난 눈(위)과 신난 눈(아래) (김성경씨 제공) 2018.09.08/그린포스트코리아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실종’이다. 날아다닐 수 있는 데다 모란앵무의 경우 크기가 작기 때문에 잃어버리기 쉽다. 

김씨 역시 해리를 집 안에 풀어 키우다 ‘실종’을 경험한 적 있다. 어느날 외출했다 돌아오니 있어야 할 해리가 없었다. 안팎의 문을 다 닫아 두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하고 뒤지다 전 세입자가 낸 베란다의 구멍을 발견했다. 은박지로 막아두었는데 해리가 ‘종이찢기’ 놀이를 하다 구멍을 낸 것이다. 

그날 새벽, 김씨와 룸메이트는 전단지를 만들어 온 동네에 붙이며 가출한 해리를 찾았다.

하필 비도 내려 ‘이제 살아서 해리를 못 보겠구나’ 하고 체념했을 즈음, 어느 가정집에서 연락이 왔다. 창문으로 웬 새가 쏙 날아 들어와 보호하고 있는데 전단지를 보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해리를 찾은 뒤부터는 두 사람이 지켜볼 수 있을 때만 새장 문을 열어 준다.

김씨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나도 새 마니아로서는 초보지만 함께 새의 귀여움을 알아 가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조그만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자, 해리가 좋아하는 ‘언니’의 손에 살며시 고개를 기댔다. 

hmy10@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