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경 기자).2018.8.31/그린포스트코리아
패스트패션은 비싸고 질 좋은 옷을 오래 입기보다는 최신 유행을 좇아 한철 입고 버릴 저렴한 옷을 사자는 풍조를 만연케 한다.(권오경 기자).2018.8.3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패션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은서(26)씨는 환절기를 맞아 지난 주말 서울의 한 지하쇼핑몰을 찾았다. 그는 “작년에 도대체 무슨 옷을 입고 다녔는지 모르겠다”면서 “이곳은 평균 1만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없이 판매되는 ‘보세’옷들이 많아 애용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이곳에서 청바지 1벌과 티셔츠 3장, 블라우스 1장 총 5벌을 5만원에 구매했다. 그는 “패션분야는 특히나 유행에 민감하기도 하고 변화하는 흐름도 빨라 비싼 옷 하나를 사서 오래 입기보단 싼 옷을 다양하게 구매해 입는 편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씨의 이런 소비행태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명 ‘패스트 패션’은 옷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을 말한다. 옷이 판매부터 폐기까지 빠르게 이동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패스트 패션은 비싸고 질 좋은 옷을 오래 입기보다는 '최신 유행을 좇아 한철 입고 버릴 저렴한 옷을 사자'는 풍조를 만연케 한다. 이 같은 현상은 트렌드에 민감한 10대와 20대 초반 젊은층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일 수 밖에 없다.

한국패션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패션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지닌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반대로 환경에 미치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 섬유업체는 ‘유해 폐기물 발생소’?

미국 환경보호국은 섬유제조업체들을 ‘유해 폐기물 발생소’로 간주한다. 유럽에서는 섬유제품의 화학성분이 갖는 잠재적인 유해성을 소비자들에게 정확히 알리기 위해 2007년 6월 1일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sation and Reestrction of Chemicals) 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은 의복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들에게 제품에 사용된 화학성분을 수량화하고, 엄격한 검사절차를 진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해외에서 섬유에 대해 이 같은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섬유제품들이 많은 양의 원유를 필요로 하는 폴리에스테르로 제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폴리에스테르는 매립 시 최소 500년이 소요되며 소각 시에는 발암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유해물질 방출뿐 아니라 폐기물 배출문제도 심각하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 게시된 ‘폐기물 처리현황’ 통계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섬유류 규모는 2012년(186톤)부터 2016년(284톤)까지 증가추세다. 소각 처리된 폐섬유류의 비율도 62톤에서 78톤으로 늘었다.

이는 의류에 소비하는 가계 지출액은 줄었으나 섬유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 소비지출구성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6.8%에서 2016년 6.2%로 감소했고, 월평균 지출금액 또한 2012년 16만5883원에서 2016년 15만7964원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섬유 및 의복과 관련한 제조업 공장 수는 같은 기간 1만2338(2012년)곳에서 1만2844곳(2016년)으로 늘어났다.

생산은 증가했는데 소비가 줄었다는 것은 결국 폐기물의 증가로 귀결된다. 의복의 가격이 저렴해져 총 지출액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지만 ‘패스트 패션’의 경향을 보면 결국엔 낭비되는 자원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발생량이 늘어난 만큼 통계상 재활용률도 높아졌으나 실제 현장의 체감은 달랐다. 폐기물 소각업체들은 이전보다 소각되는 의류의 양이 늘어났다고 말하고, 재활용업체 직원들은 갈수록 수거율이 줄어든다고 호소한다.

재활용 업체에서 일하는 A씨는 “월평균 40톤도 (수거가) 안 된다. 가정집에서 버리는 옷들이 99%라서 많아봤자 40톤”이라고 밝혔다.

반면 폐기물 소각업체 사장인 B씨는 “우리는 주로 ‘메이커’업체에서 나오는 재고들을 소각한다”면서 “메이커 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재고품을 덤핑으로 넘기기보다는 소각을 선택한다고 들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의류의 소각률이 높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는 패스트 패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의류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규정까지 만들었다. 제조업체에 철저한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발생하는 폐의류에 대해 관리가 허술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서 의류가 빠진 이유에 대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위해성이 있는 것만 관리하는 제도인데, 폐의류는 위해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서 “의류에 대해서는 제도로 특별히 관리하지 않는다. 시장 내에서 발생하는 편익이 있기 때문에 재활용센터에 자율적으로 처리를 맡긴다”고 말했다.

◇ ‘패스트 패션’에서 ‘에코 패션’으로

이런 의류의 과잉생산 문제와 환경 오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패션저널의 김중희 섬유칼럼니스트에 따르면 무엇보다 친환경 섬유소재를 만드는 기술개발이 시급하다. 그는 “대구염색공단만 해도 130개 공장에서 나오는 검단 후 마디부분 커팅아웃 천 조각이 하루에 약 40톤 이상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데, 연폭을 좀 더 잘해 불량부분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1998년 초 일본의 모 염색공장을 방문했을 때 건식투습방수가공생산현장에서 명암크기 만큼의 샘플(Sample)을 요구했으나, 공장 측 직원이 가공단의 연폭부분을 보여주면서, 연폭부분 마디만 타고 전부 납품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컷팅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도 염색가공시 연폭 하나라도 직각으로 그리고 평행으로 똑바로 잘 연폭해 가공 로스(Loss)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면 폐기물의 상당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러나 현 상황에서 도저히 불량이나 로스를 더 줄이기 어렵다면 이러한 불량폐기물들과 낡은 의류 등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산업이라도 하루속히 전 제조업으로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몇몇 기업들은 폐섬유를 재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 

㈜효성은 2007년 11월 바다에 버려진 어망을 재활용해 나일론 원사를 만들어내는 브랜드 ‘마이판 리젠'(Mypan Regen)을 출시한 바 있다. 현재는 어망을 구하기 어려워 페트병을 재활용해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해내는 '리젠'(Regen) 브랜드만 운영하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섬유재활용 기술이 개발을 통해 상용화된다면 환경과 친한 패션, 즉 '에코패션'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에코패션 트랜드의 확산은 기업이 자사의 제품으로 고객과 함께 환경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섬유재활용은 섬유제조업체들의 장기적인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체 ‘마음:이[Maum:e]'도 ‘에코 패션’의 환경적 가치를 생각해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마음이'는 한 의류계열사와 협력해 이곳에서 발생한 재고들을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아울렛, 물류창고 등에 3~5년 정도 있다가 결국 소각될 예정인 재고의류들을 수거, 업사이클링을 통해 '애착인형' 키트를 만들었다. 또 한 호텔이 리뉴얼을 하게 되면서 폐기처분할 예정이었던 대규모의 침구류와 가운을 재활용해 보호자와 반려동물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커플 목욕가운을 제작했다.

김미경 '마음이' 대표는 “대기업 의류 및 호텔 브랜드들은 브랜드 가치를 고려해서 콘셉트나 디자인 등이 바뀔 때 기존 제품들을 전부 교체한다"면서 "이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라든지,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했을 때 나오는 자원절약 효과 등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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