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석포제련소 논란' 속에서 제조된 공포감
[기고] '석포제련소 논란' 속에서 제조된 공포감
  • 박종석 번역가
  • 승인 2018.08.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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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번역가
박종석 번역가

사람은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에너지를 얻는 동물이다. 일반적인 포유류와 인간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 '사고하는 능력'과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하겠다. 그러나 상상과 추상은 반드시 증거를 바탕으로 한 관찰이 있어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고,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것들은 오로지 '몽상'이 될 뿐이다.

인간의 추상과 상상 중에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공포다. '무엇을 먹으면 죽을 병(病)에 걸린다'는 공포감, '직장에서 잘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실제로 그 메시지를 해부해 보면 별 이야기가 아니거나, 누군가의 의도가 담긴 통계 조작임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공포감들은 인간의 삶을 불안정하게 한다는 것 자체로 삽시간에 확산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좌지우지 한다. 공포감이 지배하는 공동체는 희망이 없다. 괴담과 그 공포감을 조작하는 자의 실력 행사만이 판칠 뿐이다.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통치하고 있는 현재의 시국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공포감 중 하나가 '환경 공포'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정권과 달리 경제적 가치만을 1순위로 두지 않고 사회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통치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이 정부에는 매우 다양한 시민운동가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환경운동가들이다.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약 30년 간 '근대화의 부작용'을 고발해 왔던 인물들이 환경부 장관, 청와대 비서관 등으로 포진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은 이 땅에서 제조업으로 돈을 벌어 왔던 자본 권력이 가장 취약하게 느끼는 분야다. 규제 당국의 입장에서는 '기업 잡기'에 가장 적절한 소재다. 동시에 규제 당국자는 이 권한을 행사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기업 하나를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곽에 있는 '시민단체 동료'들에게는 이 사실이 매우 독특한 기회구조다. 대중들에게 '환경 공포'를 환기함으로써 얻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가가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급 인사로 포진한 시대에 '환경 공포'는 그들이 움직일 수 밖에 없게 하는 동인이 된다. "국민들이 이렇게 환경오염으로 불안해 하는데, 공무원들은 왜 나서지 않느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쉽다.

필자는 가장 대표적인 '환경 공포' 사례로 영풍 석포제련소 이슈를 이야기하고 싶다. "낙동강 상류에 환경오염 공장이 떠 있다", "낮에는 조업량을 늘렸다가 밤이면 조업량을 늘려 그 매연이 봉화 하늘을 가득 채운다". 경북 봉화 낙동강 상류 유역에 위치한 이 공장은 우리 생활에 매우 절실한 아연을 매년 36만톤 만들어 낸다. 그러나 산업 단지가 아닌 곳에 위치한 특정 대기업의 공장은 오랫동안 수질오염으로 시달린 낙동강 유역 주민들에게 ‘스트레스의 근원’처럼 치부되고 있다.

이 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환경운동가들이다. 그들은 공공기관의 데이터를 특정 맥락만 강조해 오려내거나, 검증되지 않는 사설 단체의 자료를 들고 와 '영풍 측의 중금속 오염이 극에 달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환경오염이 사람들의 목숨을 죽이고 살릴 만큼의 수준인지는 외면된다. 봉화 일대가 광산이 많았고, 토양 자체에 중금속 성분이 많다는 것은 그저 "주민들의 주장"이라고 치환된다. 그들의 공포감을 대량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 매체가 보도한 "전국의 대기 상 카드뮴(62kg) 중 절반 가량(31kg)이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나온다"는 데이터도 대중들의 공포감을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카드뮴은 '이따이이따이병'으로도 알려진 일본 중금속 오염 사고의 대표적인 원인 물질이다. 이따이이따이병은 미츠비시 금속광업이 운영하는 광산에서 섬광 과정에서 발라낸 카드뮴을 폐기물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강으로 흘려 보낸 오염 결과였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이 카드뮴이 함유되어 있는 온갖 ‘화합물’들을 이따이이따이병 자체의 근원이라고 주장해 왔다.

어떤 금속이든지 화학물질로서 작용하려면 불순물이 걸러 지고 ‘용출’되어야 한다. 아연이든, 카드뮴이든, 은이든 중금속이 그 자체로 가치를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제조기업들은 금속이 자체 성분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쳐 가공하게 된다. 환경단체들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중금속이 있는 어느 곳이나 환경오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몸 안에도 중금속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공포감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삶의 현상태를 무시하고 무작정 "공장 하나를 들어 내자"고 주장하게끔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어떤 환경주의자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인허가를 취소한 다음, 땅을 영풍이 스스로 정화하게 하고 그 위에 박물관을 짓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석포 주민들이 그 박물관에 취업해서 얼마나 먹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정말 미지수다. 그러나 이 공포감은 영풍 제련소가 위치한 경북 봉화군 석포면 주민들에게는 매우 강렬한 ‘실제 공포’다. 자신들의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본 기고의 내용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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