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친환경' 화장품 인증·표기 규정 '나몰라'
"인증기준 및 표기준칙 강화해야" 목소리 높아

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흔히 말하는 유기농 화장품, 천연화장품에는 몇 퍼센트의 유기농·천연 성분이 포함돼 있을까. 또 '자연주의'는 어떤 화장품을 일컫는 말일까.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흔히 말하는 유기농 화장품, 천연화장품에는 몇 퍼센트의 유기농·천연 성분이 들어 있을까. 또 '자연주의'는 어떤 화장품을 일컫는 말일까.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는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의 수많은 화장품 업체들은 ‘친환경’, ‘천연성분 함유’, ‘자연에서 유래한 원료’ 등을 표방한 제품을 만들어 유통·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눈속임 마케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국내에서 ‘친환경 화장품’ 인증을 위한 기준도 없거니와 표기준칙에도 ‘빈틈’이 많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 공식 인증된 친환경 화장품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면서 “한번도 용어에 대해 검토를 한 적 없으며 기준도 없다. 국내에서는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기준만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마련된 유기농 화장품 인증기준도 국제 기준에 비해 현저히 낮고 표기원칙도 미비하기는 마찬가지다.

Bioforum(벨기에), Cosmebio/Ecocert(프랑스), BDIH(독일), ICEA(이탈리아), Soil Association(영국)이 공동으로 참여해 국제 인증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모스(COSMOS·COSmetic Organic Standard)의 유기농 인증 기준에 따르면 화장품 원료를 물리적으로 가공했을 때 최소 95%가 유기농 성분이어야 하며, 각 원료를 포함한 전체 화장품 함량에 있어서도 20% 이상이 유기농이어야 한다.

표기에 대해서는 자연유래성분인 경우 반드시 ‘x%’로 명시해야 하고, 유기농 성분의 경우에도 그 함량 비율을 명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브랜드명에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95% 이상의 유기농 성분을 포함해야 하며 유기농 함량이 95% 미만인 경우에는 원료 종류를 명시하고 해당 원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몇 퍼센트인지 명확하게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유기농 화장품 기준에 관한 규정’ 제8조(유기농 화장품의 원료조성)에 따르면 전체의 10% 이상이 유기농이면 유기농 화장품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다. 원료별 기준 퍼센트는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표기의 경우도 유기농 함량이 95% 이하인 제품에 대해 코스모스가 규정하듯 어떤 유기농 성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에 대해 표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제품명을 제외하고는 얼마든지 ‘유기농’이라는 수식을 써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유기농 함량이 95% 이상인 경우에 한해 제품명에 '유기농'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제품명 이외에 따로 용어 사용을 금지하는 세부지침은 없기 때문이다.

국제공인시험인증기관인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식약처의 경우 라벨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치 95%의 유기농을 함유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은 과장광고에 해당하기 때문에 코스모스 인증 기준처럼 95% 이상인 경우에만 유기농이라고 브랜드명에 쓸 수 있도록 규정을 두거나 그 이하의 경우에 대해서는 어떤 원료가 유기농이고 전체대비 몇 퍼센트가 유기농인지 정확히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장품 제조업을 하고 있는 박모씨도 “유기농 기준을 맞추기 위해 소량의 유기농 성분을 쓴 후 전체 성분이 유기농인 것처럼 광고하는 브랜드들이 많다”면서 “유기농 원료 함량이 95% 이하인 제품의 경우 '유기농' 용어를 어디에 표시할 수 있는지 등 세부적인 기준이 없어 허위표시, 과장광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13년, 시판되던 유기농 화장품의 70%가 유기농 함량을 거짓으로 표시하거나 인정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의 알권리 및 선택권 확보를 위해서라도 유기농 함량에 따라 표시방법을 달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식약처는 아직까지 이를 방치한 채 관리·감독을 강화하지 않고 있다.

천연·자연주의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아직 국내에는 천연 화장품에 대한 정식 기준이나 규정, 인증마크, 표기준칙 등이 마련돼 있지 않아 ‘천연’을 내세운 허위·과장 광고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자연주의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환경에 유해한 초록색 플라스틱 용기를 쓰는 업체들도 많다.

종이로 된 화장품 패키지를 만드는 업체인 ‘톤28’의 박준수 대표는 “친환경 화장품, 천연화장품, 자연주의 화장품 등을 내걸고 판매하기 위해서는 제조공정, 원료, 세척, 작업장뿐 아니라 보존 용기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A사는 ‘자연의 힘을 가득 담은 착한 화장품’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자연성분’으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자연주의’ 여부를 가르는 정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 역시 신빙성을 갖기 어렵다.

직장인 천우성(31·가명)씨는 “(친환경을 강조한 화장품 원료함량 기준 및 표기준칙을 알고 나니)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당한 기분이었다”면서 “(이런 경우가 하도 많아) 이제는 그런 광고문구를 봐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고 전했다.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에서 마케팅업무를 하고 있는 이다희(27)씨는 “그동안 화장품업계에서 ‘친환경’을 광고문구로 너무 많이 사용해왔기 때문에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차별적인 마케팅으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신빙성도 떨어진다”면서 “믿을 수 있는 기준이 생기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천연·자연주의·친환경 등의 용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식약처는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표기준칙을 강화하는 등 보다 개선된 기준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제공인시험인증기관인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관계자는 “소비자가 오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라벨링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제적으로도 자연주의에 대한 용어 정의나 기준이 없다”면서 ”자연주의라고 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통념이 있지 않느냐, 자연주의·친환경을 내세운 화장품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단어에 대해 기준을 세워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2013년도에 문제가 됐던 시판 화장품들 중 70% 이상이 허위과장 광고로 처분된 것에 대해 왜 함유량 표기 관련 규정이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묻자 식약처 관계자는 “자료를 찾아봐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즉답을 피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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