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책'에 '빽판'까지...6080 대중문화 중심 세운상가
'빨간책'에 '빽판'까지...6080 대중문화 중심 세운상가
  • 황인솔 기자
  • 승인 2018.08.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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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계박물관, 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 개최
 
1967년대 촬영된 청계천 세운상가. (서울시 제공)
1967년대 촬영된 청계천 세운상가. (서울시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서울 청계천박물관은 1960~80년대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추억의 물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 1960년대 서울시 청계천 세운상가를 찾으면 '은밀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일명 '빽판'이라 불린 복제 LP와 성인물 '플레이보이', '빨간비디오' 등을 저렴하고 쉽게 구매 가능했다.

청계천에서 판매한 물건 중 많은 것들이 불법이었지만, 이곳은 한때 6080 대중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청계천에는 어떻게 이러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을까.

◇빈민굴에서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진 '청계천 일대'

청계천 3·4가는 해방 직전에는 공습시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됐다. 해방 후에는 이주민이나 무거주자들이 모여 생계와 주거를 해결하는 터전으로 삼았고 일종의 '빈민굴'이 형성됐다.

1966년 임명된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도심의 유곽지역을 정비하고 판자촌을 정리한 자리에 세운상가를 건립했다. 당시 세운상가는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1970년대 중반까지의 큰 인기를 구가했으나 백화점과 강남아파트, 용산전자상가에 밀려 약 8년간의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몰락한다.

당시 방송에서 금지됐던 이미자 '동백아가씨' 일본판 빽판. (서울시 제공)
당시 방송에서 금지됐던 이미자 '동백아가씨' 일본판 빽판. (서울시 제공)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빽판'에 빠지다

1960년대 당시는 음반의 수입이 전무해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외국가수 음반은 모두 빽판이었다.

빽판이라는 말은 은밀히 뒤에서 제작돼 'Back'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복제판을 흰색종이로 포장해 백색 포장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해적판은 1950년대부터 만들어 졌으며 198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1960년대는 라디오의 시대였다. 라디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은 곧 유행이 됐고 민간 상업 라디오 방송사가 잇달아 설립됐다. 라디오 방송사는 음악프로그램 청취율 경쟁에 돌입했고, 오락 매체로서 라디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70년대에는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라디오와 TV가 보급되며 한국대중음악의 번영기를 이끌었다. 세운상가에서는 저렴한 가격과 심의 및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적판이 성행했다.

1980년대는 카세트 테이프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로 제작된 해적판들이 전국적으로 범람한 시기이다. 길거리의 해적판 판매원들이 가요를 선곡하여 판매하는 '길보드'가 탄생했고, 이후 해적판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법적 처벌이 강화돼 해적판 생산이 위축됐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서울시 제공)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서울시 제공)

◇"좋은거 보여줄까?"...볼 빨간 기억 남은 세운상가

세운상가 주변은 누군가에게는 성인물인 플레이보이, 허슬러, 각종 복제된 비디오와 성인만화들이 은밀하게 거래된 곳이다.

특히 어린시절 치기어린 호기심에 큰 맘 먹고 구입한 비디오에서 KBS 음악프로그램 '전국노래 자랑'이 엉뚱하게 튀어나와 뭇 청소년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음란물 유포를 막기 위해서는 세운상가만 단속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계천 일대는 음란물의 유통에 있어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대중문화' 규제...그럴수록 탄탄해진 음지 시장

1970~80년대에는 대중문화에 대한 정권의 혹독한 탄압과 검열이 있었다. 이 시기 국가는 방송, 영화, 만화, 대중가요 등을 집요하게 규제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긴급조치 제9호'가 시행됐다. 학생·노동운동을 봉쇄하는 장치였지만 표면적으로는 '사회기강을 해치고 국민정신을 좀먹는' 대중예술을 과감히 정화한다고 표현했다.

긴급조치 제9호가 시행되면서 무더기로 금지곡이 양산됐다. 풍기문란의 단속 명분은 대중문화를 위축시켰지만 거꾸로 세운상가의 음지 시장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금지음반은 빽판으로 제작됐고 불량도서는 청계천에서 더 은밀히 거래됐다.

6080대중문화와 당시 청계천 일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메이드 인 청계천'은 오는 11월 11일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breezy@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