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모 사피엔스, 동물 법정에 서다'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동물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없을까? 부처는 "모든 존재는 폭력 앞에서 떤다.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살생하지 말고, 다른 이들이 당신도 죽이지 않게 하라."라고 설파했다. 부처의 정신에 영감을 받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동물은 우리처럼 영혼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픽사베이)/그린포스트코리아
동물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없을까? 부처는 "모든 존재는 폭력 앞에서 떤다.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살생하지 말고, 다른 이들이 당신도 죽이지 않게 하라."라고 설파했다. 부처의 정신에 영감을 받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동물은 우리처럼 영혼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그린포스트코리아

 

이 책의 한단락: 인간들의 뒷방에서는 이런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평화를 이야기하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말하며, 기업은 품질을 이미지로 속입니다. 폭력을 숨기기 위해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2003년 ‘도롱뇽의 친구들’이라는 환경단체가 경상남도 양산시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경부고속철도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사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천성산에 산재한 22개 늪과 12개의 계곡은 도롱뇽의 서식지였다. 특히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는 1급수 환경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건설 노선을 발표하며 도롱뇽의 서식지가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

천성산 내원사의 지율스님이 행동에 나섰다. 알 낳을 곳을 잃을 도롱뇽을 대신해 2003년 철도시설공사를 상대로 ‘천성산 구간(원효터널)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 물론 법원은 기각했다. 소송 대상자인 ‘도롱뇽’의 지위를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이 없는 자연(물)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13.3㎞의 터널은 뚫렸다.

도롱뇽 소송 사건과 같은 사례를 '자연대리소송'이라고 한다. "말도 못하고 법도 모르는 도롱뇽이 원고라니 말이 되냐"며 지율스님의 자연대리소송을 한낱 촌극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외국의 경우 당사자 자격을 부여한 사례가 종종 있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장의 말에 따르면 1979년 하와이의 희귀 새 ‘빠리야’가, 일본의 ‘우는토끼’가, 미국의 ‘점박이올빼미’가 자연 대리소송으로 자신의 생존권을 지켰다. 사람이 아닌 동물들이 원고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기업은 대리소송이 가능하지 않은가. 기업 역시 사람은 아니다. 

도롱뇽, 다시 말해 ‘자연’이 인간 때문에 잃은 건 서식지뿐만이 아니다.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반려동물 ‘중성화 수술’은 사실 그들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행위다. 상상력이 빈곤하면 생각이 비좁아 편협해지기 마련이니 생각을 뒤집어보자. 서식지를 잃은 도롱뇽, 거세의 증표로 귀 끝이 잘린 고양이, 인플루엔자에 시달리는 조류, 구제역에 의해 산채로 매장되는 돼지, 광우병으로 쓰러지는 소, 밭작물 훼손으로 사살당하는 멧돼지, 비좁은 우리에 갇혀 인간의 구경거리가 된 사자, 쓸개까지 빼줘야 하는 곰이 우리 인간을 동물 법정에 세운다면?

《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모 사피엔스, 동물 법정에 서다》 저자: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에두아르도 하우레기∥역자:김유경∥책공장더불어∥2017.07.17∥2488쪽
《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모 사피엔스, 동물 법정에 서다》 저자: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에두아르도 하우레기∥역자:김유경∥책공장더불어∥2017.07.17∥248쪽∥동물

 

◇ 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모 사피엔스, 동물 법정에 서다

맛을 위해 거세당한 돼지는 증인석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실 암퇘지가 아닙니다. 수퇘지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수퇘지고기는 특유의 누린내가 난다면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고환을 떼어내는 거세를 당해야 했습니다. 거세 수술은 마취 없이 진행되었고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중략)…인간은 더럽고 역겨운 인간을 돼지라고 부릅니다. 자신들이 돼지를 비참하고 더럽고 참담한 상황에 몰아넣으면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 인간들이 지구를 쓰레기, 오염 물질, 온갖 오물로 ‘돼지우리’로 만듭니다.<책 본문 중>”

우화 형식의 ‘동물들의 인간 심판’은 스페인의 사상가이자 신랄한 사회 분석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가 초고를 작성하고 사망하자 사회정치학자인 그의 아들 에두아르도가 내용을 보충해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인간이 잔인하게 군림하는 세상이 아닌 모든 생물의 공존 공동체를 바라는 저자는 동물권, 언어, 신과 종교, 인류와 진화, 우상과 상징, 철학, 자본주의 시스템, 전쟁과 평화 등 인간 사회의 구조와 위선을 동물의 관점으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동물은 우주의 리듬과 영원의 흐름, 우리의 본성, 삶과 죽음의 주기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다른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과학 지식을 얻으려다 더 중요한 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은 사자, 풀, 태양도 전혀 관계성이 없는 각각의 객체로 봅니다. 인간 자신들조차도 따로 떨어진 존재로 봅니다. 모든 것을 다 그런 식으로 봅니다. 관계성을 잃어버린 거죠. 정말 그 고독과 혼란은 끔찍합니다."<책 본문 중>

관계성을 상실한 인간은 타자를 대상화한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은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고, 아동을 대상화하는 어른은 아이들의 개성을 박제한다.

자연에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근대 이후 인간은 인간이 진화의 정점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제 먹고, 입고, 쓰고, 즐기는 수많은 것 모두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땠나. 밤꾀꼬리 리우이의 증언처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잔혹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착취해오지 않았는가. 책 속에 등장하는 돼지 '장브누아르', 고양이 '핀초', 암소 '옴', 늑대 '블랑코', 모기 '피'에게 인간이 군림한 세계는 감금, 폭력, 학살이 일상화된 '죽음의 수용소'다.

'동물들의 인간심판'은 동물들을 학대한 인간을 재판장에 세운다.(픽사베이)/그린포스트코리아
'동물들의 인간심판'은 동물들을 학대한 인간을 재판장에 세운다.(픽사베이)/그린포스트코리아

 

◇ 자연 법칙을 깬 인간에 선고된 형량은?

동물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없을까? 부처는 "모든 존재는 폭력 앞에서 떤다.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살생하지 말고, 다른 이들이 당신도 죽이지 않게 하라"고 설파했다. 부처의 정신에 영감을 받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동물은 우리처럼 영혼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동물들에게 비방·중상·학대·대학살을 자행한 인간을 재판장에 세운다. 검사인 코브라 칼리는 살모사 혀로 인간이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낱낱이 밝힌다. 다양한 동물 대표는 법정에서 인간의 범죄를 증언한다. 인간의 친구이자 변호인인 개 필로스는 쏟아지는 비난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한다. 비방과 중상에 시달리고, 인간 혀끝의 즐거움을 위해 공장의 상품이 되고, 조련당하고, 동물원에 갇혀 쇼를 하고, 죽을 때까지 싸우고, 어이없는 실험에 이용되고, 멸종의 위기에 처한 동물들.

그들은 인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당당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은 바로 인간입니다. 그들의 모든 삶은 연극이자 변장하고 나타나는 축제 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안 속지만요. 참 '페르소나(persona)'란 단어는 인간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로 그 말의 어원은 '가면'입니다. (중략) 그들은 자신들의 진짜 생각, 충동, 느낌을 감추기 위해 '문명화된' 복잡한 예법에 따라 자신들의 태도나 말을 숨기고 통제합니다. (중략) 종종 그들은 '원한다면 진실을 말해주지.'라든가 '솔직히 말하자면...'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을 자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의 탈을 쓴 자들입니다! 게다가 여럿이 모이면 거짓말이 아주 황당한 목소리가 되고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쇼윈도에 진열해 놓고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보게 합니다.<책 본문 중>"

지구가 인간의 소유물인양 지배하며 수많은 환경 변화를 일으킨 인간. 다른 생명의 그물망을 찢어놓고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며 자연의 법칙을 깬 인간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저자: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에두아르도 하우레기∥역자:김유경∥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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