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자의 마니아+] '견팔자 상팔자'…왕후장견 따로 없다
[홍기자의 마니아+] '견팔자 상팔자'…왕후장견 따로 없다
  • 홍민영 기자
  • 승인 2018.08.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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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 세상이 넓고 복잡해지면서 마니아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교적 대중적인 마니아부터, 남들은 모두 외면하는 아주 소소한 것에 몸 바치는 마니아까지. 이들은 말한다. “99명이 오른쪽이라 해도, 내가 왼쪽을 택하면 그것이 바로 내 길이다.”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한층 다채롭게 만드는 그들.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마니아 문화’를 통해, ‘흥에 겨운 소수’가 인생을 즐기는 방식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사랑을 줬다고 해서 반드시 돌려받을 필요도 없다. 주기만 해도 충분한 사랑이 있다.

 
강아지는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존재다. (Pixabay 제공) 2018.08.18/그린포스트코리아
강아지는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존재다. (Pixabay 제공) 2018.08.18/그린포스트코리아

◇새침한 강아지 ‘둥이’

부산에 사는 반려견 둥이(8)의 하루는 오후 10시에 시작된다. 최근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견’이 됐다. 

잠에서 깬 둥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식사다. 사료는 노견인 둥이의 몸 상태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요즘에는 체력 보충을 위해 단백질이 풍부하고 과다한 탄수화물을 배제한 ‘그레인프리’ 사료를 먹는다. 

간식으로는 캥거루 꼬리고기, 오리 오돌뼈, 오리 사사미, 북어채, 게살, 닭똥집채, 고구마빵 등 '강아지가 이런 것도 먹어?'라는 생각이 들 만한 음식들이 식탁에 오른다. 모두 입맛이 까다로운 둥이를 위해 고르고 골라 사 온 것들이다. 치석 관리를 위한 치약껌, 우유껌도 잊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면 가벼운 체조를 마친 후 산책에 나선다. 오후 11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임에도 공원에는 둥이와 같은 반려견들이 가득하다. 다들 둥이처럼 해를 피해 ‘밤 피서’를 나온 것이다.

둥이는 공원 반려견들의 대장이다. 둥이가 사뿐사뿐 다가가면 강아지들은 예의를 갖춰 맞이한다.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둥이야~”하며 반갑게 부르지만, 둥이의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둥이는 사람을 보는 눈이 까다롭다. ‘엄마’ 또래의 50대 이상 여성이나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곱게 한 젊은 여성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3년 동안 매일같이 둥이에게 인사를 하고도 여전히 무시당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둥이가 새침하다고 말한다. "믹스견이 지능이 높다" "지나치게 높아서 얄밉다"며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둥이가 슬쩍 다가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녹아버린다. 소위 말하는 ‘강아지다운’ 애교를 피우지 않아도, 꼬리를 흔들지 않아도, 둥이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둥이는 반려견이고, 그 사람들은 모두 ‘강아지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강아지 '둥이'. 초상권에 예민한 강아지여서 얼굴이 나온 사진이 드물다. (김민주씨 제공) 2018.08.18/그린포스트코리아
강아지 '둥이'. 초상권에 예민한 강아지여서 얼굴이 나온 사진이 드물다. (김민주씨 제공) 2018.08.18/그린포스트코리아

◇둥이, 어느 날 찾아온 ‘업둥이’

둥이의 ‘언니’ 김민주(30대)씨는 사실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없었다. 

김씨는 원래 토끼를 키웠다. 10년 넘게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를 노환과 병으로 떠나보낸 후, 심각한 ‘펫로스증후군(반려동물을 잃은 후 상실감으로 병을 얻는 것)’을 앓았다. 식욕이 사라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뚜렷한 이유 없이 면역력이 뚝 떨어져 사소한 감기에도 힘들어했다. 

김씨가 시름시름 앓자 그의 어머니는 반려동물을 다시 키울 것을 권했다. 한 대상에게서 입은 마음의 상처는 다른 대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의논 끝에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다. 

‘운명의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 동네 길고양이들을 섭렵(?)하고 다니던 어느 날, 뜻밖에 강아지인 둥이를 만났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엘리베이터에는 아래층 이웃이 타고 있었다. 이웃은 하얀 강아지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다. 웬 강아지냐고 묻는 김씨에게 이웃은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아는 사람에게서 떠맡았는데 난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혹시 키울 생각 없어?”라는 질문이 되돌아 왔다. 

김씨는 망설였다.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화장실이며 사료까지 주문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있던 어머니가 선뜻 그러자고 했다. 어머니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의 강아지를 안아들며 “원래 이런 건 업둥이를 들여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둥이는 가족이 됐다. 고양이 물품은 지인에게 나눔하고,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해 강아지 물품을 다시 샀다. 강아지 관련 책도 잔뜩 주문했다.  

하얗고 보들보들한 털과 삼각형 모양으로 접힌 귀, 시무룩한 까만 눈동자의 둥이는 어디로 보나 평범한 ‘바둑이’였다. 시골집 마당 구석에서 턱을 괸 채 졸고 있는 바둑이. 김씨는 둥이의 성격 또한 바둑이처럼 해맑고 순진무구할 것이라 생각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 생각은 틀렸다. 둥이는 새침하고, 예민하며, 겁이 많고, 낯을 심하게 가리고, 참을성이 없는 성격이었다. 매일 바뀌는 택배기사도 10년을 같이 산 가족처럼 반기는 게 강아지라는데 둥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족 외에는 모두 적이었다. 일 년에 수차례 다니러 오는 김씨 친구에게도 여전히 꼬리를 내리고 짖는다. 

심지어 가족들이 외출했다 돌아와도 반겨주지 않았다. 소파에 드러누워 심드렁한 표정으로 흘긋 쳐다볼 뿐이다. 하도 꼬리를 흔들지 않기에 뼈에 이상이 있나 싶어 병원에서 검진까지 받아봤다. 결과는 ‘이상 무’.

이렇게 별나다보니 김씨의 친구들은 둥이를 ‘요개’라고 부른다. ‘요괴+개’의 합성어다. 김씨는 부정하지 못했다. 

김씨는 아직도 친구들에게 묻는다.

내가 둥이를 잘못 키운 걸까, 아니면 둥이가 정말 요개인 걸까?

'둥이'의 물품들 중 일부. 이 외에도 상자며 서랍 속에 산처럼 쌓여 있다. (김민주씨 제공) 2018.08.18/그린포스트코리아
'둥이'의 물품들 중 일부. 이 외에도 상자며 서랍 속에 산처럼 쌓여 있다. (김민주씨 제공) 2018.08.18/그린포스트코리아

◇‘믹스견’이 무슨 상관이야

둥이의 산책은 2~3시간 동안 이어진다. 날이 추워도, 더워도, 가리는 법이 없다. 둥이가 산책을 가고 싶다고 하면 가야만 한다. 덕분에 노견임에도 여전히 체력만큼은 좋은 편이다. 

산책을 마친 후 전용 욕조에서 느긋하게 스파를 즐긴다. 피부가 연약한 둥이를 위해 마련된 스페셜 스파다. 따뜻한 물에 고급 입욕제를 풀어 다리와 등을 조물조물 마사지한다. 목욕도 천연비누로만 한다. 욕실을 나오면 푹신한 방석과 따뜻한 옷이 기다리고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둥이는 다양한 옷을 가지고 있다. 여름에는 ‘미용’ 후 자외선이 차단되는 옷을 입고, 겨울에는 패딩, 조끼, 잠옷을 입는다. 

허리가 긴 특이체형 때문에 옷을 사기도 쉽지 않다. 미국제 중형견 옷이나 일본의 몇몇 브랜드만 맞는다. 강아지 체형에 맞춰 제작해 주는 개인 제작자에게 별도로 주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산 옷들이 수북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또 새 옷을 산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둥이를 위해 분홍색을 주로 고른다. 본인 옷은 어쩌다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사는 것이 전부면서 둥이 옷에 수 십만원을 쓸 때, 김씨는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견팔자 상팔자라는 사람도 있다. “믹스견 주제에 호강한다”, “다음 생에는 너희 집 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도 여러 번 들어봤다. 하지만 김씨는 무슨 말을 들어도 어깨만 으쓱하고 만다. 

둥이가 믹스견인 것과 내가 둥이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둥이의 성격이 그 모양(?)인 것과 내가 둥이를 사랑하는 것 또한 별개의 문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믹스견이 품종견보다 못난 것도 아니고, 품종견이라고 믹스견보다 덜 똑똑한 것도 아니다. 성격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강아지도 성격이 있다. 강아지라고 해서 무조건 사람을 따르고 애교가 많으리란 법은 없다. 그리고 애교가 없는 강아지라해서 사랑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강아지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이유가 충분하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요즘 유행하는 ‘강아지 전용 리조트’에 가는 것이다. 강아지 호텔, 수영장, 운동장이 합쳐진 형태의 리조트는 견주들의 ‘꿈의 장소’다. 또 조만간 둥이를 위한 유모차도 마련할 예정이다.

김씨는 잊지 않는다. 강아지가 가장 바라는 것은 ‘가족과 24시간 함께 지내는 삶’이라는 것을. 가족과 함께 살고 가능하면 매일 산책을 나가는 강아지. 둥이를 그런 ‘행복한’ 강아지로 만들기 위해 김씨는 오늘도 ‘강아지 마니아’의 길을 걷는다.  

hmy10@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