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빠른 멧돼지 출몰로 농가 피해 늘어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극심한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농가가 때아닌 멧돼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로 가을이나 겨울에 불청객을 자처했던 멧돼지들이 올해는 무더위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더 일찍 농가에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보고된 전국의 농작물 피해 규모는 2335.8㏊에 달한다. 통제불능인 자연재해 수준의 폭염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예년보다 일찍 하산한 멧돼지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해 멧돼지로 인한 농가의 피해가 급증했다.(픽사베이 제공)2018.8.16/그린포스트코리아
폭염으로 인해 멧돼지로 인한 농가의 피해가 급증했다.(픽사베이 제공)2018.8.16/그린포스트코리아

◇ 폭염에 사냥개도 지쳐…“산소에도 철조망 설치해야 할 판”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의 화목마을에서는 유해조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설치한 트랩에 멧돼지 3마리가 한꺼번에 포획된 일이 발생했다. 멧돼지가 무리로 잡힌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 같은 일이 트랩 설치 닷새 만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를 단순 화제로 삼기엔 농민들의 한숨이 워낙 깊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멧돼지 피해 건수가 올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충남 세종시의 경우 지난달 기준 피해 신고건수가 229건에 달한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주형철 충북 옥천군 문정3리 이장은 “올해는 유독 이른 시기에 출몰한 멧돼지들이 많아 산과 인접한 농가는 매일 같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며 “폭염 때문에 옥수수 농사도 망칠 판인데 멧돼지가 고구마와 복숭아밭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말했다.

주 이장은 또 “멧돼지들이 이제는 산 인근 농작물뿐만 아니라 산소까지 전부 헤집어 놓은 탓에 주민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며 “망을 설치해도 소용이 없어 이제는 산소에까지 철조망을 설치해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멧돼지에 의한 농가 피해 호소는 급기야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한 한 농민은 “올해 7월부터 (멧돼지들이)옥수수, 땅콩, 고구마 등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며 “더위 때문에 사냥개도 지친 나머지 농심이 타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릴 때부터 농촌살리기, 농촌유통구조 개선 등 구호는 거창했지만, 멧돼지 하나 잡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농촌현장에 직접 들러서 현재 농가의 현실이 어떤지를 좀 봐달라”고 호소했다.

각 지자체도 멧돼지 포획에 열을 올리고 있다.(픽사베이 제공)2018.8.16/그린포스트코리아
각 지자체도 멧돼지 포획에 열을 올리고 있다.(픽사베이 제공)2018.8.16/그린포스트코리아

◇ 지자체, 멧돼지 수당 인상 등 대응…“실효성은 의문”

상황이 이러한 탓에 각 지자체도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개체 수를 늘리던 멧돼지들이 수확기에 극성을 부리자 일부 지자체는 특별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만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충북 영동군은 지난달 25일부터 유해조수포획단 엽사들의 고라니 포획 수당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멧돼지 포획 수당을 2배 올렸다. 충북 옥천군도 기존 3만~5만원이었던 멧돼지 포획 수당을 3만~10만원까지 올렸다. 전남 순천시는 전기울타리 설치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멧돼지 포획 수당을 올려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충남 지역의 한 엽사는 “수당이 올라도 멧돼지 엽사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과연 효과가 있겠냐”며 “엽사는 전문 직업이 아니기에 폭염이나 울창한 수풀 등 여건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병욱 옥천군청 환경관리팀장은 “엽사들은 총기를 사용하는 만큼 관련 규제가 많아 인원을 확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당장 엽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수당을 올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그러면서 “그동안 갖은 이유로 조사가 힘들었던 멧돼지 개체 수 파악에도 신경쓰고 있다”며 “멧돼지가 농가에 끼치는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체계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의 심각한 폭염은 그 자체로도 농가에 큰 피해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의 지난 13일 발표에 따르면 높은 기온에 3∼5년생 어린 사과나무를 중심으로 일소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봉지 씌우기를 해도 피해가 확대되고 있어 저품질 과일이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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