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다회용컵에 음료가 제공된 모습. (황인솔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카페에서 다회용컵에 음료가 제공된 모습. (황인솔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지난 1일 일회용컵 사용 규제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일회용 플라스틱컵 대신 머그잔과 유리컵,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는 모습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매장 내 일회용품 배출량도 눈에 띄게 줄었지만 여전히 카페 주인과 손님 간의 '거리감'은 존재했다.

◇정책 초기 단계...손님은 '융통성' vs 가게는 '원칙'

점심을 먹은 후 카페를 찾은 직장인 정효원(31)씨에게는 여유 시간이 10분 정도 남아있었다. 잠시 더위를 식힌 후 일터로 가기 위해 '테이크아웃잔'에 음료를 요청했지만 곤란하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매장에 머무르는 시간과 관계없이 테이블을 이용하려면 다회용 컵을 이용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결국 정씨는 머그컵에 음료를 받아 몇 모금 마신 뒤, 다시 테이크아웃잔에 음료를 옮겨 담아 회사로 돌아갔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근무하는 윤태균(29)씨는 일주일 동안 이런 고객과 몇 차례 승강이를 벌였다고 토로했다. 손님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가게측은 모두의 사정에 맞춰서 음료를 내줄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정책을 어기면 과태료가 있다 보니 '원칙'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씨는 "정책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혼선이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자체가 꼼꼼하지 않다 보니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손님은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융통성 없게 장사한다면서 화를 내시는 손님들도 있다. 그리고 가게 입장에서는 잠시 머무르는 손님을 위해 설거지도 해야하고 일회용컵은 컵대로 사용하다 보니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확실히 일회용컵 사용 규제가 진행되면서 매장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컵의 개수는 확 줄었다. 평소에는 하루에 100L 크기로 두 봉지 이상 배출했는데 이제는 3일에 한 번 정도 내놓아도 될 정도다. 밖으로 가져가는 손님들이 컵을 깨끗이 씻고 분리배출하는 등 재활용을 위해 힘써주신다면 좋은 정책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관에 버려진 일회용 컵. (황인솔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영화관에 버려진 일회용 컵. (황인솔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영화관에도 플라스틱 범람...'놀이공간'이기 때문에 괜찮다?

지난 4월 벌어진 '재활용쓰레기 대란' 이후 정부는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과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는 일환으로 자발적 협약을 진행했지만 막대한 일회용품을 소비하는 영화관은 제외했다. 이번 일회용컵 규제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143개 영화관을 운영하는 CJ CGV의 경우 지난해 매출 9268억원을 기록했다. 팝콘, 콜라 등을 판매하는 매점 매출은 전체의 약 15~20%로 1400억~1850억원으로 추정된다.

각 커피전문점이 발표한 2017년 감사보고서에서 투섬플레이스가 2000억원, 이디야커피가 1841억원, 커피빈 1576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보면 카페와 영화관의 판매량과 이로 인해 배출되는 일회용품의 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카페 업계와 손님들이 승강이를 벌이는 동안 영화관은 일회용품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다. 텀블러를 가져오면 음료 가격을 할인해주는 등 환경 정책도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상영관 앞을 나가보면 '청소는 우리가 할 테니 그대로 두셔라'는 쓰여 있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관람객은 영화를 보면서 먹은 음료수컵, 팝콘통, 나초 접시 등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그 이후는 청소노동자의 몫이다. 종이컵에서 플라스틱과 빨대를 분리하고, 남은 팝콘과 음료는 다른 통에 쏟아붓는 등 쉼 없이 진행되는 분리수거 모습이 목격된다.

CGV 관계자는 "영화관이 일회용품 규제가 진행되기 어려운 이유는 본질적으로 카페와 다르기 때문이다. 카페는 업무와 공부를 위해 찾는 곳이지만 영화관은 놀이를 위한 공간이다. 놀이동산이나 놀이터에 매번 텀블러를 챙겨가지는 않지 않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리고 텀블러나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는 고객들에게는 음료, 팝콘의 정량을 제공하기가 애매한 부분도 있다. 그대신 우리는 재활용만큼은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청소하시는 분들이 플라스틱과 음식물, 일반쓰레기 등을 철저하게 구분해 배출한다"고 덧붙였다.

영화가 끝난 후 '재활용'을 진행하는 과정. (황인솔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영화가 끝난 후 '재활용'을 진행하는 과정. (황인솔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확대되는 플라스틱 규제...소비자 인식차 좁히는 게 중요

플라스틱이 수없이 사용되는 곳은 영화관 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편의점, 놀이동산 등 많은 이들이 찾는 곳들의 쓰레기통에는 여전히 플라스틱 폐기물로 넘쳐난다.

해외에서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장소에도 많은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호주의 대형마트 브랜드 울워스와 콜스는 지난 7월부터 고객에게 비닐봉지를 제공하는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가방(천가방·장바구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과일이나 야채를 포장하는 비닐, 랩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월트디즈니도 자사가 운영하는 테마파크 디즈니랜드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빨대, 음료수 젓개 등을 종이로 바꿔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기념품을 담아주던 비닐도 천가방으로 바꿔 제공할 예정이다. 리조트, 호텔, 유람선에서는 객실 내에 비치된 일회용품을 다회용으로 교체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편의점, 슈퍼마켓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 시행 1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비닐봉지 유상 제공에 대한 찬반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비닐봉지 규제'는 더욱 강화된다. 지난 2일 입법예고된 '재활용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대규모 점포, 소규모 슈퍼마켓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못한다. 제과점도 일회용 비닐봉지를 유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현진호(50)씨는 "20원이라는 봉투값을 거슬러주기 위해 10원짜리 잔돈을 늘 구비해야 하고, 카드로 계산한 뒤에 봉투를 요구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그냥 주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아직도 봉투값 받는 게 '치사하다'면서 폭언을 퍼붓는 손님도 있다. 우리 슈퍼에서 환경에 영향을 미칠만한 비닐봉지를 배출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평소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김민희(23)씨는 "사실 20원이 큰돈이 아니다보니 비닐봉지를 돈 주고 사도 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1000원 이상씩 받는다고 하던데 그러면 확실히 덜 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그 비닐봉지 값은 어떻게 되는건지, 다시 환경을 위해 쓰이는 건지 그런 건 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쓰레기통에 버려진 플라스틱컵. (서창완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중구 쓰레기통에 버려진 플라스틱컵. (서창완 기자) 2018.8.6/그린포스트코리아

◇정부는 '꼼꼼함', 소비자는 '배려와 인식' 필요

반면 일회용컵, 플라스틱, 비닐 등의 규제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카페 '얼스어스'를 운영 중인 길현희 대표는 가게에서 일회용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또 티슈 대신 손수건을 제공하며, 개인컵을 가져오지 않으면 테이크아웃도 불가능하다.

길 대표는 최근 일회용컵 사용 규제로 벌어지는 일들이 여러모로 아쉽다고 표현했다.

그는 "현재 운영 중인 정책은 세심함이 부족한 것 같다. 테이크아웃 전용 카페에서는 하루에 몇백잔의 일회용컵이 사용되지만 실내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건 환경을 위한 정책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컵 재활용률이 무척 낮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컵 재질을 통일한다거나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함께 진행하는 게 진짜 환경을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일회용품의 기준도 우리가 만들었고, 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빨대가 없어도, 플라스틱컵을 사용하지 않아도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카페는 충분히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자부한다. 세상에 모든 플라스틱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커피 한 잔 만이라도 소비자가 신경 써준다면 세상은 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breez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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