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 세상이 넓고 복잡해지면서 마니아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교적 대중적인 마니아부터, 남들은 모두 외면하는 아주 소소한 것에 몸 바치는 마니아까지. 이들은 말한다. “99명이 오른쪽이라 해도, 내가 왼쪽을 택하면 그것이 바로 내 길이다.”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한층 다채롭게 만드는 그들.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마니아 문화’를 통해, ‘흥에 겨운 소수’가 인생을 즐기는 방식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행복의 형태도 다양해진 지금, 이 말이 그렇게 실감이 날 수 없다.

탐이(좌측)와 오뎅이(우측)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탐이(좌측)와 오뎅이(우측). (사진 조예나씨 블로그)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조예나씨와 열두 마리 고양이 

인천에서 과외 일을 하고 있는 조예나(블로그 닉네임‧40대)씨의 집에는 열두 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엘리, 망고, 오뎅, 콩순, 똥꼬, 호떡, 노랭, 탐이, 루기, 도로시, 찹쌀, 홍시. 이름을 다 열거하기도 바쁘다. 

예전에는 행복, 하말이라는 강아지 두 마리와 나봉, 찰리, 통키라는 고양이 세 마리가 더 있었다. 하지만 이 다섯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별이 됐다. 

고양이들의 사연은 모두 각양각색이지만, 공통점은 모두 ‘길 출신’이라는 것이다. 

특히 ‘똥꼬’는 화단의 대리석 틈에 껴 숨이 넘어가기 직전 간신히 구출한 ‘구사일생’ 고양이다. ‘호떡이’는 사고로 앞다리 하나를 잃었고, ‘노랭이’는 종양, 구내염, 췌장염, 방광염 등 온갖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루기’는 ‘범백'(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과 학대로 고통 받은 경험이 있다. 

하나 둘 거두다 보니 이렇게 불어났다는 조예나씨. 아침부터 새벽까지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내가 고양이를 거둔 것이 아니라, 고양이 집에 내가 얹혀산다”는 농담이 농담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조예나씨의 가족들. 아직 강아지 '행복이'가 있을 때로, 이 때는 모두 11마리였다.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조예나씨의 반려동물들. 아직 강아지 '행복이'가 있을 때로, 이 때는 모두 11마리였다. 고양이 수가 많다 보니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기도 어렵다.(사진 조예나씨 블로그)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뿐만 아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사는 길고양이들에게 몇 년 째 밥을 챙겨주고, 중성화수술을 해 주고, 아프면 치료해 주고 있다. 아픈 고양이나 버림받은 고양이가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달려가 구조해 새 가족을 찾아준다. 대전에 하반신이 마비된 길고양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 2시에 달려간 일도 있다.

그렇게 쏟아 부은 시간과 돈이 헤아릴 수 없다. ‘노랭이’ 한 마리의 치료비가 자동차 한 대 값을 너끈히 넘겼다. 큰 수술로 턱의 일부와 신장 하나를 떼어낸 노랭이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자연스레 조예나씨 본인에 대한 ‘투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백화점에서 옷을 샀다면 이제는 인터넷에서 최저가를 찾는다. 한 장에 1만원짜리 티셔츠도 감지덕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예나씨는 “고양이를 만나고 내가 잃은 것은 잠밖에 없다”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그녀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조예나씨는 대답은 망설임이 없다. “내가 행복하니까.”

 

◇시작은 평범한 얼룩고양이 한 마리

너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

이제는 ‘베테랑 집사’인 조예나씨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조예나씨의 머릿속에 ‘고양이’란 단어조차 없었다.

조예나씨의 삶에 고양이가 스며들어온 것은 2011년 가을. 조예나씨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얼룩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네 마리 새끼고양이와 함께 힘겨운 삶을 살아가던 어미 고양이였다. 비쩍 마르고 꾀죄죄한 것이 가여워 무심코 밥을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얼룩고양이가 밥을 전부 새끼들에게 양보한 것이다. 자신도 배가 고플 텐데, 새끼고양이들이 안전하게 배를 채울 때까지 그저 지켜볼 뿐 입을 대지 않았다. 이 안타까운 모정이 한 아이의 엄마인 조예나씨의 마음 깊이 새겨졌다. 

조예나씨는 그 얼룩고양이에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조예나씨는 그 감정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했다.  

그 뒤 꾸준히 밥을 챙겨 주면서 ‘엘리’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닮아서다. 이름을 붙여 준 순간부터 조예나씨는 엘리와 함께 사는 날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리는 쉽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밥은 얻어먹어도 결코 곁을 내주지 않았고, 포획용 덫을 놔도 들어가지 않았다. 속이 타 전문 수색꾼까지 불러봤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몸을 숨겨버렸다. 그동안 조예나씨는 엘리가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출산하고, 새끼를 키우고, 어렵게 키운 새끼를 병이나 사고로 잃는 것을 1년이나 지켜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엘리가 조예나씨에게 온 것은 2012년 9월이다. 9월은 고양이들의 짝짓기 시즌이자 암컷 고양이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간 조예나씨는 문득 수컷 고양이와 대치하던 엘리를 발견했다. 그때 엘리가 조예나씨를 바라보며 애타는 비명을 질렀다. 마치 “구해 달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조예나씨는 직감했다.

“아, 이제 때가 됐구나. 엘리가 나에게 올 거야.” 

덫을 놓자 아무리 애를 써도 잡히지 않던 엘리가 거짓말처럼 제발로 순순히 들어갔다. 

조예나씨의 첫 고양이, 엘리.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조예나씨의 첫 고양이 '엘리'. (사진 조예나씨 블로그)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조예나씨는 그길로 동물병원을 찾았다. 수의사는 엘리의 몸이 생각보다 많이 상했고, 한 번만 더 출산했다면 못 견디고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엘리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던 걸까? 조예나씨는 그럴 것으로 믿고 있다.

“엘리가 아직 길고양이였을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장을 지키다 엘리가 생각나 새벽 3시에 밥을 주러 갔죠. 그런데 절대 다가오지 않던 엘리가 무슨 생각인지 졸졸 쫓아와서는 가만히 앉아 저를 바라보더라고요. 마치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이야기해 봐’라고 하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 위에서 조예나씨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엘리에게 털어놨다. 엘리는 조예나씨의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묵묵히 곁에서 기다려줬다. 이렇게 똑똑한 엘리가 자신의 몸 상태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예나씨는 엘리가 그저 ‘동물’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엘리에 대한 사랑은 다른 고양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노쇠한 탓에 치매까지 걸렸던 고양이 찰리는 엘리의 짝 중 하나였고, 오뎅이, 루기, 탐이, 노랭이, 도로시 모두 엘리가 살던 지하주차장에서 거뒀다. 대부분 엘리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이다. 

조예나씨네 '루기'. 루기는 누군가 담뱃불로 지져 뼈가 드러나 보이는 상처, 썩은 꼬리,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장염의 3중고로 고생했다. 지금은 매일 밤마다 조예나씨의 팔을 베고 자는 어리광쟁이다.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조예나씨네 '루기'. 루기는 누군가 담뱃불로 지져 뼈가 드러나 보이는 상처, 썩은 꼬리, 바이러스성 장염의 3중고로 고생했다. 지금은 매일 밤마다 조예나씨의 팔을 베고 자는 어리광쟁이가 됐다.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말없이 따뜻한 너, ‘행복’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 변화에 민감하고, 힘들 때면 말없이 위로해 주는 고양이가 꼭 한 마리씩 있다”고. 조예나씨에게도 그런 고양이가 있다. 오뎅이다.

몇 년 전 지하주차장에서 울다 구조된 새끼고양이 오뎅이는 지금은 몸무게가 9kg의 ‘거대한 덩치’가 되어 집안 고양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어리광과 애교로 조예나씨의 마음을 녹이고 힘들 때면 말없이 끌어안아 위로해 준다고 한다. 

“우울할 때, 지칠 때면 오뎅이가 다가와서 가만히 바라봐요. 그러다 제가 ‘이리 와’하면 무릎 위로 올라와 제 품에 안기죠. 제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저를 꼭 안아줘요.”

고양이는 안기는 것을 싫어하는 동물이다. 엘리나 찹쌀이 같은 경우 손대는 것조차 싫어해서 농담 삼아 ‘관상묘(猫)’라 부를 정도다. 

오뎅이도 고양이이니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싫은 것보다 위로를 선택하는 모습에서 조예나씨는 오뎅이의 진심어린 사랑을 느꼈다고 했다. 

오뎅이가 체온으로 위안을 준다면, 노랭이는 기다림으로 위안을 주었다. 노랭이는 조예나씨가 귀가하기 두 시간 전부터 현관 앞에 앉아 기다린다. 아무리 늦어져도 절대 거르는 법이 없다. 루기, 탐이, 망고, 다른 고양이들도 모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조예나씨를 반겨준다. 그 어떤 피로와 짜증도 그 모습만 보면 눈 녹듯 녹아버린다. 

조예나씨의 귀가를 기다리는 노랭이의 뒷모습.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늦은 밤까지 조예나씨의 귀가를 기다리는 노랭이의 뒷모습. (사진 조예나씨 블로그)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최근, 조예나씨의 집에는 손님이 생겼다. 임신한 상태로 구조된 길고양이 완두콩이다. 애칭 삼아 ‘듀콩이’라 부르는 이 고양이는 얼마 전 조예나씨의 집에서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일곱 마리나 되는 새끼를 돌보느라 힘들고 지칠 텐데도 듀콩이는 24시간 조예나씨에게 애교를 피우고 애정을 표현한다. 심지어 얼마 전 구조해 임시 보호중인 새끼고양이 꼬깜이에게도 젖을 물렸다. 제 새끼도 아닌 꼬깜이를 다정하게 품어주는 모습에 조예나씨는 “내가 듀콩이를 구한 게 아니라, 듀콩이가 나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예나씨의 손님, 듀콩이와 새끼고양이들.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듀콩이와 새끼고양이들. (사진 조예나씨 블로그)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고양이가 주는 행복은 ‘따뜻함’ 이에요.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마음까지 통하지 않는 건 아니랍니다.

그런 ‘따뜻함’에 중독되어버린 조예나씨는 오늘도 고양이들을 위한 간식거리를 산다. 길에서 병을 얻고 사고를 당한 고양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런 일을 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의 ‘따뜻함’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조예나씨가 바라는 진짜 행복이다.

그 행복은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고양이를 키우며 시작한 블로그가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좋은 인연’들이 많이 생겨났다. 

아무리 조예나씨라 해도 아픈 고양이 모두를 돌볼 수는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늘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다른 ‘고양이 마니아’들이 있어서다. 구조, 입양 홍보, 치료비 모금, 실제 입양까지 이들과 함께 한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앞으로 또 어떤 고난이도의 고양이를 만나게 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지만 조예나씨는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 한 쪽 손에는 고양이의 따뜻한 손을, 다른 손에는 그에 못지않게 따스한 ‘고양이 마니아’들의 손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듀콩이가 낳은 새끼고양이들 중 다섯째, 오콩이. (조예나씨 블로그 제공)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듀콩이의 새끼고양이 중 다섯째, 오콩이. (사진 조예나씨 블로그) 2018.08.04/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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