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을의 싸움에 침묵하는 갑

픽사베이
부지영 감독의 '카트(Cart, 2014)' 스틸컷.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러시아 극작가 겸 소설가 체호프의 작품 가운데 ‘자고 싶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소설구조는 간단한데 담긴 이야기는 섬뜩하다.

13세 유모 바리까는 낮에는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느라, 밤에는 주인집 아이의 울음을 달래느라 잠잘 시간이 없다. 바리까는 자장가를 부르며 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을 흔든다. 눈이 감기고 고개가 떨궈진다. 바리까는 온몸을 흔들어 본다. 잠이 들면 안주인의 매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기가 겨우 잠이 들면 아침이다. 하루가 시작되면 바리까는 러시아식 난로인 뻬치까에 불도 지펴야 하고, 주인어른의 덧신도 닦아야 한다. 덧신 속에 머리를 박고 잠깐 눈좀 붙였으면 좋으련만 계단 물청소가 남아 있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나면 아이가 또 울어 재낀다. 

한계에 부딪힌 바리까는 소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최근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4일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한 8350원으로 의결했다. 노동계는 “적다”, 사용계는 “많다”며 각자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정부는 어느쪽 편도 들 수 없어 난감해 보인다.

논란은 “인건비 압박을 견딜 수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 반대’를 위해 거리로 나온 편의점주들로 인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언론은 앞다퉈 상품 매출 원가, 본사 가맹 수수료, 가맹점 부담 비용, 기타 공제 기금 등을 공개하며 현실의 다각적 측면을 분석했다. 한달 매출에서 월 200만원도 못가져간다는 점주들의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편의점 매출 하락은 근접 출점이 가능한 순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반경 1km안 편의점만도 수십 개인 시장상황에서 매출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모범거래' 기준(250m 이내 편의점 출점을 제한)이 2014년 슬그머니 폐지된 이후 한 편의점주는 한 달 8000만원 보던 수익에서 급격한 매출 하락을 겪고 있단다. 규제 완화로 동일 브랜드만 아니면 얼마든지 근접 출점이 가능해진 탓에 전국 편의점 수는 이제 4만개(5대 편의점 기준)를 넘어섰다. 인구수가 우리보다 2.5배 많은 '편의점 왕국' 일본이 5만6000개다.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편의점 본사 입장에선 가맹점 수가 곧 매출이다. 여기에 편의점주 고통에 한 몫하는 것이 높은 납품원가라는 지적도 있다. 편의점의 월 매출 77% 가량이 상품매출(물건값)액으로 빠진다. 본사가 대량구매로 유통마진을 많이 남기면서 가맹수수료까지 가져간다는 소리다. 이중수탈이다. 

옆집 편의점이 망해야 본인이 살아남는 시장구조에 내몰린 점주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 반대'다. 매출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인건비 부담은 자꾸 높아지니 "제발 좀 살려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여기서 체호프의 소설을 다시 떠올려보자. 소상공인을 유모 바리까라 하고, 임금노동자는 아기라 하자. 경제는 침체돼 있는데 노동자는 먹을 걸 달라고 울어재끼고 있다. 바리까는 소설 막바지에서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그녀를 짓누르고, 그녀의 '살아 있음'을 방해하는 힘을 찾는다. 벗어나려면 그것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바리까는 그녀의 생을 방해하는 적을 발견하고 환희에 찬다. 그녀는 아기를 죽이기로 한다. 아기가 조용해지자 바리까도 죽은 듯 곤히 잠든다.

바리까가 잘 수 없던 이유를 편의점주들도 잘 알고 있다. 경영 부담의 근본적인 원인이 편의점 본사가 측정한 높은 가맹수수료와 상품 원가, 갈수록 치솟는 임대료, 매출을 저해하는 근접 출점이라는 것을.

다행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가맹 본점에 목소리를 내는 건 어렵다"던 편의점주들이 생사의 유탄을 주인에게 돌렸다. 그들은 19일 가맹본점에 가맹수수료를 인하하고 근접 출점을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가맹 본사가 조금 분담해달라는 것이다. 사실 근접출점의 경우는 시장에만 맡길 순 없다. 정부가 제도을 재정비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가맹수수료나 임대료는 시장의 역할이 더 크다. 

고용불안, 경기침체 등 모든 경제 문제를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리까가 아기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르바이트생과 더불어 저임금 노동자는 분명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다.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 역시 불공정거래 앞에서는 또 다른 약자다. 

바리까의 분노는 왜 아기를 향했을까. 이제 편의점주들은 바리까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런데 아기에게 젖을 주고, 유모의 착취를 중단할 힘을 가진 주인은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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