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책읽기] 꼬마 '쿠르디'가 남긴 숙제, 여전히 풀지 못하는 우리
[화목한 책읽기] 꼬마 '쿠르디'가 남긴 숙제, 여전히 풀지 못하는 우리
  • 박소희 기자
  • 승인 2018.07.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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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케이트 밀너 글/그림 ·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4월 30일 · 그림책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케이트 밀너 글/그림 ·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4월 30일 · 그림책

 

이 책의 한 단락: 사람들은 우리를 '난민'이라고 불러. 하지만 너만이라도 안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2015년,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진 속에는 세 살배기 아이가 얼굴을 모래에 파묻은 채 싸늘한 주검으로 해안가에 쓰러져 있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터키 해안가에 떠밀려온 시리아 소년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로 넘어간 쿠르디 가족은 힘든 생활을 견디다 못해 다시 그리스로 길을 떠나던 참이었다. 밀입국 브로커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잡은 배편은 이들 가족을 비극으로 이끌었다. 사나운 파도가 배를 덮쳤고, 쿠르디와 엄마는 차가운 바다에 빠져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렇듯 생사를 걸고 떠도는 이들을 세상은 '난민'이라 부른다.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어느 날, 엄마가 말한다. “얘야, 우리는 여기를 떠나야 한단다. 우리 마을은 너무 위험해.” 그렇게 해서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떠난다. 정든 집과 친척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미 엉망이 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을 떠나, 걷고 또 걷고, 걷다가 멈춰 서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또 다시 걸어야 하는 먼 여행을 시작한다.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는 서글픈 여정을 아이의 눈으로 그린 그림책이다. 난민이 된 이유, 전쟁이 일어난 이유 등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건 아이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어서 네 가방을 싸야 해. 하지만 명심하렴.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갈 수 있단다”라는 말에 짐을 싸고 보니, 하루아침에 낯선 세상에 와 있다. 때로는 와글거리는 사람들 무리에 섞이고, 때로는 엄마와 단둘이 격리된 시간을 보낸다. 태어나 처음 보는 물건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낯설고 불편한 장소에서 힘겹게 잠에 들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듣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음식들을 먹는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책 밖의 우리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라면 무엇을 가져가겠니? 너라면 얼마나 걸을 수 있겠니? 너는 예전에 살던 집이 그리웠던 적이 있니? 평범한 질문들이지만 그 답을 골똘히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난민’이라고 불리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된다.

'쿠르디 사진'은 당시 선진국들이 외면하고 있던 난민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그 이후, 난민 문제는 해결됐을까?

유엔난민기구의 연간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말 전 세계 강제이주민의 수는 6560만명으로 2015년 대비 30만명 증가했다. 2017년엔 미얀마에서 자행된 ‘인종청소’로 16개월 된 로힝야족 난민 아기 주검이 사진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인 549명이 난민지위를 얻기 위해 현재 기다리고 있다. 난민신청자가 늘어나며 난민포용 문제가 최근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사실 해답은 이미 나와있다. 유엔난민협약 가입국이자 국내법으로 난민법을 제정한 한국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들에게 난민지위 부여할 지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난민으로 인해 '자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견에 보수 개신교의 '이슬람 혐오'까지 더해져 난민 수용 반대 목소리가 생각보다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쿠르디는 난민이기 이전에 쿠르디였다.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그림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난민’이라는 슬픈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편견 가득한 눈길 대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원한다. 다시금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 

2018년 6월 14일, 세계난민의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오랜기간 쌓아온 무언가를 훔칠지 모른단 의심에서 오는 두려움은 인간의 관점에서 타당하며 이해되는 만큼 죄는 아니다”면서도 “타인, 나와 다른 사람, 이웃을 마주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건 죄”라고 했다.

또 “그 두려움이 우리의 반응을 결정하고, 선택을 제한하고, 존중과 관대함을 타협하게 하고, 적개심과 거부반응을 부추기는 것도 죄악”이라고도 했다.

우리의 두려움이 판단력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난민에게 또 한 번의 거부로 상처주긴 전,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건 어떨까.(케이트 밀너 글/그림·마술연필 옮김·보물창고·32쪽)

 

 

ya9ball@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