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포스트모더니즘으로 답하는 한국 '탈코르셋' 운동

우리 사회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진화를 반복하며 발전해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는 그동안 주류가 기대온 가치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낡은' 구조로부터 이탈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선다. '합'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종종 논란 속에 길을 잃기도 한다. 이에 탈(脫)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현상들을 진단해보고 차이와 반복을 통한 '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탈(脫)수기'시리즈를 통해 그 방향을 제시해본다. 시리즈는 총 3회에 걸쳐 '탈코르셋', '탈소비', '탈원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픽사베이제공)2018.7.7/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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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한국의 ‘탈(脫)코르셋’ 운동을 두고 ‘역코르셋’이라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을 억압해온 사회규범에서 벗어나겠다는 이 운동을 두고 왜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어떻게 ‘탈코르셋’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한국 탈코르셋 운동을 들여다봤다.

◇ '탈코르셋' 운동, 무엇이 문제일까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A씨는 탈코르셋을 선언한 뒤 취미로 모으던 형형색색의 하이힐을 전부 버렸다. 화장하는 걸 좋아해서 유튜브 채널까지 만들어 방송을 하던 뷰티 유튜버 B씨도 탈코르셋에 동참하겠다고 밝힌 뒤 채널운영을 종료하고 민낯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위 사례의 주인공들이 '탈코르셋' 운동의 올바른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까. 취미로 모으던 구두, 좋아해서 하던 화장이 과연 그들에게 ‘코르셋’이었을까.

꾸밈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여성이라는 성별에 과도하게 부과된 미(美)의 규범들, 외양적 가치들을 부수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의 일부가 될 수는 있겠지만 '탈코르셋 운동이 곧 꾸밈노동의 해방'이라는 일대일 구조를 갖는 것은 아니다.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탈코르셋은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부과되는 규범화된 여성성의 강요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해방운동"이라면서도 "젠더체계에 대한 해체행위"라고 설명했다.

여성을 억압하던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면 '젠더체계'라는 코르셋에 좀 더 집중하면서 여성들이 갖는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탈코르셋 운동은 다양성을 외면하고 '외모' 코르셋에만 함몰돼 여성성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탈코르셋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동참하는 일부 사람들은 하이힐을 신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에게 ‘탈코르셋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코르셋'을 긴머리, 화장, 제모 등 외모 코르셋으로만 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 개별이 갖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보다 '여성성을 거부'하는데 방점을 찍은 탈코르셋 운동은 편향적 시선을 낳을 위험이 있다. ‘남성모방’, ‘역코르셋’ 등의 지적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픽사베이제공)2018.7.7/그린포스트코리아
(픽사베이제공)2018.7.7/그린포스트코리아

◇ 이분법의 미로에서 빠져나와 다양성 존중해야

‘워마드’는 이른바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남성들의 온라인 사이트인 ‘일베’의 미러링으로 만들어진 여성우월주의 사이트이다. ‘워마드’ 회원들은 그동안 남성들이 ‘일베’ 사이트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 행동 등을 해온 것처럼 남성을 비하하며 함께 공유한다.

그들은 이같은 ‘미러링’을 통해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부교수에 따르면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지지한다.  워마드 회원들에게 모든 생물학적 남성은 그들이 성적소수자이든 장애인이든 간에 ‘혐오’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태도를 견지한 성(姓)대결 구조는 해방이 아닌 고착만 가져온다. 이현재 교수는 여성을 억압하던 사회구조에 저항하고 이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생물학적 성을 떠나 소수자들끼리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다시말해서 탈코르셋 운동또한 여성해방 운동의 일환으로서 다양성을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김지영 교수는 '연대'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연대의 정치'는 연대를 위한 최소조건에 합의한 대상들이 행하는 인식행위이자 실천행위"라면서 "명확한 경계없이 '소수자'라는 틀 안에서의 무분별한 '연대'를 강요하는 행위는 자칫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구도가 될 수 있다. 연대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즉 연대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는 조건들을 구분짓는 '개념적 경계선'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급진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연대조건은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 것'인 반면 퀴어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연대조건은 트랜스 혐오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연대는 무조건적 포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떻게 연대할 것이며 이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논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운동이 이같은 '연대'의 정치를 실현하고 여성들 각각의 다양성을 표출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철학가 질 들뢰즈의 신체개념을 이해하고 이런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습적인 구조로부터 탈피하려는, 보편성을 거부하고 각각의 개성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어떤 물체 혹은 사람 C와 D는 각각 서로가 갖는 특성, 즉 차이만 있을 뿐 이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따르면 앞서 사례로 제시한 페미니스트 A와 뷰티 유튜버 B또한 각각 개별로서 존재할 뿐 이들을 아우르는 ‘여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이 같은 방식, 즉 ‘여성성’을 거부하는 획일화된 방식으로 탈코르셋에 동참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서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핵심개념으로 확보된다.

질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본질’개념을 거부하듯, 다양한 신체들을 하나의 ‘대문자’ 신체로 환원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에 회의를 표한다. ‘자연스러움’을 가르는 기준이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중심적인 서구형이상학의 전통을 따른다고 지적한다.

들뢰즈에게 여성의 신체라는 것은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다층적이며 복수적인 개념이다. 그는 여성들 개별이 갖는 경험, 체험의 다양성으로부터 다양한 신체가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현재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 지지자들에게 필요한 태도이다.

질 들뢰즈(제공:Rien ne veut rien dire).2018.7.7/그린포스트코리아
질 들뢰즈(제공:Rien ne veut rien dire).2018.7.7/그린포스트코리아

◇ ‘여성’해방에서 ‘젠더’해방으로

탈코르셋 운동에서 꾸밈노동으로부터의 탈피가 먼저 시작된 것은 그동안 여성들이 사회구조 속에서 획일화된 '여성성'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탈코르셋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의 강요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이지 '여성성' 파괴 그 자체에 운동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탈코르셋 운동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면서 여성들에게 또 다른 ‘역코르셋’을 씌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은 이제 다양성을 상실한 ‘여성 해방' 운동에서 ‘젠더 해방'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사회는 ‘젠더 정체성=생물학적 성’의 공식을 강요해왔다. 하지만 젠더(gender)는 생물학적 성(sex)과 다르다. 여‘성’(sex)으로 태어난 사람이 전부 같은 젠더를 가진 것이 아니고 남‘성’(sex)으로 태어난 사람이 전부 같은 젠더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젠더 정체성과 생물학적 성이 다른 사람을 ‘성소수자’라고 불린다.

이 교수는 ‘워마드’ 회원들을 두고 ‘구분의 정치’가 아닌 ‘연대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탈코르셋 운동 지지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자세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이제 성소수자와 연대하고 젠더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생물학적 성에 갇힌 젠더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탈코르셋’ 운동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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