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혜린 지음ㆍarteㆍ2018년 6월 14일ㆍ에세이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이혜린 지음ㆍarteㆍ2018년 6월 14일ㆍ에세이)

 

이 책의 한단락 : "지금 아이는 어디에 있나요? 사업하면 아이는 누가 키우나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자동으로 포지션이 바뀌고 만다. 청년 여성 사업가에서 애 키우다가 아이디어나 발표하러 나온 철없고 이기적인 아이 엄마로. 그리고 이전까지의 힘겹지만 소중했던 시간들이 처참하게 구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낯선 자리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왜 내 아이를 키우는 문제를 시시콜콜 변명해야 하는가. -111쪽 '애는 누가 키우나요'에서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스펙은커녕 경력에 ‘흠’이 생긴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마들의 고군분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가절하돼 있다.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에게 사회는 무섭도록 냉랭하며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구시대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죄 없는 엄마들은 모성애로 '처벌'받는다. 일하느라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 나쁜 엄마가 된다. 반면 일 없는 엄마들은 독박육아에 상실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느라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낯설다.

육아휴직과 경단녀를 위한 지원프로그램 등 사회적 관습을 고치기 위한 제도들은 많이 마련돼 있지만 변화는 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엄마 육아휴직 사용자 수는 총 7만8080명으로 1만2043명인 아빠 사용자 수의 7배에 달한다. ‘육아’하면 곧바로 엄마를 떠올리는 발상, 가정을 위한 아빠의 책임감은 ‘회사’로, 엄마의 책임감은 ‘육아’로 향한다는 고정관념, 육아휴직을 쓰려면 여전히 ‘법치’보다도 ‘눈치’인 사회부터 변하지 않으면 엄마들의 경력이 ‘흠’아닌 ‘스펙’이 되는 날은 멀어 보인다.

책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는 이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평범한 엄마의 목소리를 담았다. 저자는 다섯 살 딸과 7개월 된 아들을 키우며 일과 살림을 모두 해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일하는 엄마에 대한 배려없는 시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여기에 통쾌한 직설을 날린다.

저자는 “사람도 키웠는데 회사 하나 못 키우겠어?”라는 마음으로 창업을 시작했지만 살림 꼴이 뭐냐는 주변의 핀잔을 들으며, 아이는 어디있냐는 지긋지긋한 질문에 시달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저자는 "사업이라는 것이 비즈니스라는 유기적인 생명체를 키워나가는 과정이라면, '엄마'가 되는 과정은 기업가 정신을 자연스럽게 탑재하는 과정"이라면서 오늘도 '엄마의 속도'로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도, 엄청난 비전과 꿈을 품은 일도 아니지만, 저자가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아이를 데리고 사업을 제안하러 가는 것이 낯설지 않은 문화, 대표가 직접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화,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선례, 엄마들이 일과 생활의 균형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저자는 “당신이 경단녀라면, 혹은 일하는 엄마라면, 멀리 나갈 것도 없이 여성에게 육아와 살림을 모두 도맡게 하는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휴먼다큐와 블랙코미디가 섞인 이 책이 당신의 분기탱천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억울함을 위로하고 해소하는 역할을 확실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혜린 지음·arte·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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