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클린 디젤’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경유차가 돌연 미세먼지 주범이 됐다. 2006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사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디젤=친환경차’라는 ‘상식’은 뒤집히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처럼 상식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다수가 욕망하는 ‘소비재’거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할 때가 있다. 근대의 초석을 마련한 16C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상식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려나가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쓰레기 대란, 미세먼지, 상수원 녹조, 온난화 등 환경의 역습이 시작되자 ‘친환경’이 대세로 떠올랐다. 그러자 기업은 자연 친화적 컨셉트의 제품을 '대량 생산'하며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하면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친환경 인증마크가 새겨진 제품을 구매하고, 생활폐기물 분리배출을 생활화하고,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Good bye plastic bag(비닐봉지여 안녕)’이 적힌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가는 것 만으로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에코의 함정’(추선영 옮김, 이후 펴냄)의 저자 헤더 로저스는 "'녹색소비'가 환경오염의 탈출구라는 기업의 함정에 우리가 너무 쉽게 빠진 것"이라 지적한다.  

늘어나는 유기농 설탕 수요에 파라과이 숲이 병들고 ‘바이오 연료’인 야자수 경작지를 조성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밀어낸다면 유기농 설탕과 바이오 연료를 소비하는 일이 정말 친환경적일까.

친환경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비닐' 하우스부터 만드는 것이 소규모 유기농가의 현주소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일체 검출되지 않아야 하는데, 주변 농장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바람을 타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배된 유기농 작물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친환경 인증 마크를 달고 비싼 가격에 팔린다. 

뿐만 아니다. 친환경 구호에 맞춰 공정무역·유기농·텀블러·에코백·자전거가 소비 트렌드가 되자 한 사람이 한 개의 텀블러만 사서 꾸준히 사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다. 기업은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더 예쁜 텀블러를 생산해 내고, 소비자는 더 예쁜 텀블러를 사다보니 '텀블러 콜렉터'까지 생겼다. 자전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석유를 주원료로 하는 타이어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전거, 텀블러, 에코백 '자체'는 친환경 제품이 아니라 잠재적 쓰레기다. 우리가 실천하는 친환경이 생태계의 피해를 가급적 최소화하는 것뿐이지 자연에 완전히 무해한 것은 아니다. 매연을 뿜지 않는 자전거가, 재사용이 가능한 텀블러나 에코백이 자동차, 플라스틱, 비닐보다 환경 오염을 덜 시키는 것 뿐이다. 친환경조차 기업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갑을 여는 것 만으론 환경을 보호할 수 없는 이유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제로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한 강의에서 "우리가 분리수거를 잘 해봤자 기업의 생산량을 규제하지 않으면 쓰레기는 줄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헤더 로저스가 다른 저서 '사라진 내일'(이수영 옮김, 삼인 펴냄)에서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책임전환을 모색하자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생태계가 직면한 재앙에서 빠져나갈 현실적인 해결책은 '소비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원순환을 염두한 '생산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경우 중국의 쓰레기 수입 중단으로 '쓰레기 대란'이 빚어졌을 때, 폐기물 부담금 제도의 완화 및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안일한 정책이 국내 쓰레기 발생량을 크게 증가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과잉 생산 시대, 로저스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개인의 탓으로 뒤집어 씌울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기 규율 능력이 없음을 인식하고 보다 강한 환경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환경 문제가 정부와 기업의 협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비판적인 소비는 자연에서 자원을 착취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이윤을 거두는 기업의 과잉생산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헤지 로더스는 공정 무역 상품이나 유기농 먹거리를 구입하는 것이 아예 가치 없는 일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녹색 소비’가 생태계를 구원할 것이라 믿는 '게으른 환경주의자'가 되지 않으려면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토착민들의 숲을 빼앗아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일부 다국적 기업이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까지 일거양득하고 있다. 기업윤리보다 환경의 가치를 우선하는 제품을 기꺼이 소비하는 것, 소규모 유기농 농가 제품을 직거래 하는 것, 쓰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과 나누는 것,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는 것이 ‘에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첫 걸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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