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승무원들 천막농성 12일째…복직·직접고용 위한 투쟁 이어가

KTX 해고승무원들은 지난달 24일부터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트코리아
KTX 해고승무원들은 지난달 24일부터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천막농성 12일째. 서울역 공항철도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천막생활은 밤이 더 괴롭다. 돌로 된 바닥을 긁는 대형 캐리어,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 소리가 잠을 깨운다. 힘든 날들을 이렇게 버티고 있지만, 지난 12년에 비할 수 있을까. 철도공사(당시 철도청)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4474일이 흘렀다. KTX 해고승무원들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이들은 돌아가며 천막을 지킨다. 점심에 사람이 모이면 108배를 한다. “약간은 힘들지만, 그게 힘들다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잖아요.” 이제 엄마가 된 양모씨가 말했다. 강산이 바뀐 세월을 버텨온 내공이다. 108배는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투쟁 방법 중 하나다. 쇠사슬도 묶고, 오체투지도 했다. 무엇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대법원 판결 없었더라면 그 친구도

지난달 25일 발표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3차 조사 결과는 해고승무원들을 천막에서 나올 수 없게 하는 이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이던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하려 한 사례로 ‘KTX 승무원 판결’이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그 모습은 ‘사상 초유 대법정 농성’이란 이름으로 화제가 됐다. “되게 처절하게 나왔다”는 김 지부장은 양 전 대법원장 사법 농단 사태에 분노했다.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이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철도공사 서울 사옥 1층 입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트코리아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이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철도공사 서울 사옥 1층 입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트코리아

“사법부의 그런 판단들, 뒷거래까지 다 밝혀졌는데도 이것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사실 대법원 판결 나고 절망할 때마다 이민 가야겠다는 말도 많이 했는데, 정말 이 나라를 버리고 싶지 않을까요?”

KTX 해고승무원들을 분노케 한 2015년 2월 대법원 판결은 당시에도 ‘정치적 판결’이라는 의심이 많았다. 대법원은 “코레일과 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근로자 파견계약 관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1인당 864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배상하게 했다. 이미 지급 받은 4년치 임금이 포함된 환수금이었다.

이 판결로 KTX 해고승무원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환수금은 10년을 길에서 보낸 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었다. 끝까지 투쟁해 온 34명 중 1명이 판결이 난지 한 달이 채 되기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미정 KTX 열차승무지부 총무에게 그날은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됐다.

“당시에는 이런 인터뷰 요청하면 대답을 못했어요. 그 얘기는 사실 저희에게는 너무 안 좋은, 안타까운, 힘겨운 기억이에요. 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서 인터뷰를 거절했죠.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너무 억울하고 화나요. 그런 조작하는 상황이 없었으면 지금 저희 모두 다 웃고 있겠죠. 일하고 있겠죠. 여기 있는 승무원들 전부 다 KTX 안에서 일하고 있을 거예요. 돌아가신 분도 일하고 있을거구요.”

◇준공무원 신분을 강조했던 ‘지상의 스튜어디스’

코레일은 2006년 3월 1일 KTX 승무원들이 철도노조와 파업에 들어가자 두 달여 만인 그해 5월 19일 홍익회(퇴직자와 순직자 유가족을 돌보는 목적으로 만든 코레일 유관단체, 현 철도유통) 소속 KTX 승무원 350명 중 280명을 정리해고했다. 

당시 KTX 승무원은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며 당시 항공사를 준비하던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KTX 1기 승무원 시험은 13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보였다. 항공사보다 낫다는 주위의 권유로 KTX 승무원의 길을 선택한 이들도 많았다.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당시 정부가 ‘비핵심 업무’ 외주화를 추진한다는 사실을 알기는 힘든 나이였다.

당시 승무원 교육을 받았던 철도대학의 교수들은 내년에 공사가 되면 티오를 받고 정규직이 될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강미애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사회 초년생이라 비정규직 그런 건 몰랐어요”. 당연히 믿었지 음성 녹음 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나라가 자신들을 속일 거라고 생각할 수 없던 시기였다.

증거라고 할만한 건 재판할 때 이미 다 제출했다. 2006년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감사원, 국가인권위, 교수 집단 등은 해고된 KTX 승무원을 지지하며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2003년 노동부는 코레일에 “열차 승무원 중 안내원의 업무는 파견법이 규정한 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지 않고, 도급은 독립적 업무 수행이 가능한 업무에 한해 추진해야 하는데 요청한 업무는 독립적으로 업무 수행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KTX 승무원들은 해고 이후 점거·삭발·오체투지·고공농성 등을 이어갔다. 소송만은 피하고 싶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거리로 나설 때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알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KTX 한 대에 승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3명이고 1명은 본사 소속, 2명은 자회사 소속의 노동자들이다. KTX에 사고가 났을 때 매뉴얼에 따르면 본사 소속의 1명만 안전업무를 담당하고 2명의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은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 해고승무원들은 이같은 매뉴얼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토코리아
KTX 한 대에 승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3명이고 1명은 본사 소속, 2명은 자회사 소속의 노동자들이다. KTX에 사고가 났을 때 매뉴얼에 따르면 본사 소속의 1명만 안전업무를 담당하고 2명의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은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 해고승무원들은 이같은 매뉴얼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토코리아

힘든 싸움 끝에 남은 34명은 2008년 11월 결국 소송을 선택했다. 1, 2심 재판부는 KTX 해고 승무원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2010년 8월 1심 판결에서 해고된 KTX 승무원이 코레일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위장도급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가 홍익회를 코레일의 일부 부서라 판단한 근거는 △코레일이 KTX 승무원 채용에 직접 참여해 수습교육 및 이후 수시 교육 △코레일이 우수 승무원 선발해 해외연수 실시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이 승무원 업무평가 뒤 결과를 승무원 인센티브에 반영 △코레일이 승무원 4대 보험료 직접 부담 및 피복비와 새해 선물 지급 등이다. 

재판부는 또 코레일이 승무원별로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30개월치 임금을 주고, 복직할 때까지 월급 150만~18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2심 역시 1심 판단을 유지하고 도급과 위장 도급의 기준을 제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철도유통은 사실상 피고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 대행기관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환수금 문제는 지난 1월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승무원은 임금 5% 반환, 코레일은 다른 청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중재안을 내놓자 법원이 양측에 조정 권고를 결정하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직접고용과 복직은 여전히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KTX 해고승무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후보시절 약속했던 ‘해고승무원 문제 전향적 해결’을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 총무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정당성을 인정 받고 싶어요. 지금 이 나이에 승무원 할 수 있냐고 얘기하지만, 하고 싶어요. 하다가 못해서 내리더라도 스스로 내리고 싶어요."

◇12년을 버티게 한 힘은 '우리'

천막농성장에 모인 KTX 해고승무원들은 긴 시간 아픔을 함께한 만큼 끈끈한 힘이 느껴졌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트코리아
천막농성장에 모인 KTX 해고승무원들이 농성 일정표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6.4/그린포스트코리아

천막농성장 분위기가 어둡지만은 않았다. 12년 동안 우울하고 억울하게만 보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젊음이 다 날아간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정 총무가 답했다.

“예전에는 그게 되게 억울했어요. 분하고, 슬프기도 하고. 근데 뭔가 거창하지만, 그만큼 깨달음도 얻었고, 연륜도 쌓인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죠.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고요.”

12년 동안 추억이란 것도 쌓였다. 경찰을 만나던 양씨는 시위 현장에서 남자친구와 마주하는 웃지 못할 일도 겪었다. 비가 오던 시위장에서 집에 돌아가던 양씨는 '핑크색 우산을 쓴 XX야'라는 문자를 남자친구에게 받았다. 화가 나서 며칠을 싸우고 말도 안 하던 둘은 결국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

여전히 긴 시간 투쟁에 앞장서 온 김 지부장에게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동력을 물었다. 긴 침묵 끝에 그가 답했다.

“친구들이죠.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재밌고. 힘든 것도 물론 많지만 이런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에요. 투쟁을 선택한다고 해서 항상 울분에 차 있고, 슬프고, 억울하고 분노에 차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 상황에도 내가 마음을 어떻게 갖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서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문제를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많은 분들의 격려도 너무나 감사해요. 그런 지지가 내가 하는 일이 내 인생을 버리는 게 아니라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에 하루하루 버틴 것 같아요.”

KTX 해고승무원들은 지난 1일 철도공사 서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영식 코레일 사장과 만나 면담을 했다. 4일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KTX 해고승무원들에게는 지금 또 한 번의 희망이 찾아왔다. 그리고 바라고 있다. '또 한 번 희망이 좌절되지 않기를.'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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