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전문 1인출판사 전은정 대표와 생태 이야기꾼 장세이 작가 공동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생태공간 목수 木水'에서 최근 이름을 바꾼 '옥수책빵'은 성동구 옥수동 한 건물 2층에 자리해 있다. 출판사이자 서점이자 다방이자 생태교실인 이곳으로 오르는 길 층계참에는 '죽다가 살아난 나무'가 심겨져 있다. 소생甦生 '옥수책빵'은 생명을 잃어가는 도심의 생명을 꿈꾼다. (박소희 기자) 2018년 5월 25일 / 그린포스트코리아
'생태공간 목수木水'에서 최근 이름을 바꾼 '옥수책빵'은 성동구 옥수동 한 건물 2층에 자리해 있다. 출판사이자 서점이자 다방이자 생태교실인 이곳으로 오르는 길 층계참에는 '죽다가 살아난 나무'가 심겨져 있다. 소생甦生. '옥수책빵'은 파괴되는 생태감수성을 살리기 위해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을 목수책방 전은정 대표와 장세이 작가가 도모하는 생태플랫폼이다. (박소희 기자) 2018년 5월 25일 /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지속가능한 삶과 순환의 질서’를 꾸준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생태 전문 1인 출판사 ‘목수책방’의 전은정 대표. 숲이 없는 마을은 부박하다 말하는 이도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2002년, 그땐 분명 서울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희망이 사라졌다는 '서울 사는 나무' 저자 장세이 작가.  

잡지사에서 선후배로 만나 강산도 변한다는 십여 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두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함께 공존 공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옥수책빵’. 단순히 서점이라 부르면 곤란한 이곳은 생태 전문 출판사 ‘목수책방’, 우리 차를 판매하는 '목수다방’, 숲과 사람이 만나는 ‘생태교실’, 생태 서적을 파는 '독립서점'이 더불어, 호흡이 불가능한 도심 속 생태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서 책을 엮는 전은정 대표는 2014년 '생명의 교실'을 시작으로 '서울 사는 나무', '식물 이야기 사전',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 '엄마는 숲 해설가' 등을 펴냈다. 최근에는 벌린 클링켄보그의 '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이 목수책방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 벌린 클링켄보그는 아주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에 ‘시골생활(rural life)’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한 작가로 "분량이 많아서 편집하며 힘이 들기는 했지만, 삶이란 내 몸과 마음에 내 주변 환경이 서서히 각인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주변 환경에 내 흔적을 각인시키는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라고 전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무엇보다 절실한 '자연과 생태'를 이야기는 장세이 작가와 전은정 대표는 '옥수책빵'이 시골 외가의 앞뜰처럼 아늑하고 푸근한 사랑방이 되기를 꿈꾼다. 사진은 전은정 대표 (박소희 기자) 2018년5월25일 / 그린포스트코리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무엇보다 절실한 '자연과 생태'를 이야기는 장세이 작가와 전은정 대표는 '옥수책빵'이 시골 외가의 앞뜰처럼 아늑하고 푸근한 사랑방이 되기를 꿈꾼다. 사진은 전은정 대표 (박소희 기자) 2018년5월25일 / 그린포스트코리아

 

목수책방에서 나온 책들은 모두 흙, 숲, 나무, 똥, 식물 투성이다. 그렇게 쌓인 13권은 '옥수책빵'에서 자그마한 '생명정원'을 이루고 있다. 목수책방 생태 컬렉션 가운데와 '서울 사는 나무'와 '엄마는 숲 해설가'는 ‘옥수책빵’ 공동대표 장세이 작가가 썼다. 12년의 잡지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생태 이야기꾼이 된 장 작가는 '후불어 꿀떡 먹고 꺽!', '느린 여행자를 위한 산보길' 등 7권의 책을 쓴 배테랑이다. 현재 교통방송에서 매주 나무 한 그루를 소개하고 있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존재는 불가능하다 말하는 전은정 대표. 그는 관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 

“책 한 권을 깊이 읽기 위해서 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 미로와 같은 행간을 오랫동안 거니는 것이 좋다. 간혹 하루 한 권 책을 읽는다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그 책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인 걸까 의구심이 든다. 생태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와 타자는 유기적 관계임을 깨닫는 순간 겸허해진다.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 숲과 책은 관계 맺기를 배울 수 있는 장소다."

로마를 하루 다녀오고 로마를 다 알았다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하루 보고 그 사람을 다 알았다 할 수 있을까. 그는 ‘헤맴의 독서’를 통해 삶을 겸허히 통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숲은 관계 맺기 좋은 장소라는 말에 장세이 작가가 거들었다.

“서울은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옥수책빵) 맞은편에 공원 하나 있었다. 모든 공원에는 나무와 풀이 공존한다. 인간이 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사는 공간이다. 공원에는 새들도 살고, 수많은 벌레나 곤충도 산다. 그런 장소가 하루아침에 뿌리뽑혔다. 저는 숲에서 마을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분수를 설치하겠다고 숲을 도려내고 펜스를 친거다.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행정부터 '생태 감수성'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는 부박하고 황량한 서울이 점점 싫어진단다. 

시민들과 한강변 산책을 마치고 옥수책빵으로 돌아오는 길, 돌계단 틈에 피어있는 제비꽃을 만져보는 장세이 작가. 나무를 배우고 숲에 들기 시작하며 인생으 ㄴ자연의 순리 아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박소희 기자)2018년5월25일/그린포스트코리아
시민들과 한강변 산책을 마치고 옥수책빵으로 돌아오는 길, 돌계단 틈에 피어있는 제비꽃을 만져보는 장세이 작가. 나무를 배우고 숲에 들기 시작하며 인생은 자연의 순리 아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옥수책빵에서 동호대교 교통 상황이 하도 잘 보여 '교통방송 통신원을 할까' 고민했는데 그 말이 씨가 됐는지 정말 교통방송에 출연해 매주 나무 한 그루씩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박소희 기자)2018년5월25일/그린포스트코리아

 

자주 찾아 올려다보던 운형궁 인근의 목련은 다음해 봄, 전봇돼가 되어 있었다. 마구잡이로 가지치기를 당해 한참만에 알아 보았다. 종로2가 금강제화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나무가 가죽나무인 것을 알아보고 기뻐 날뛰었는데, 오래지 않아 댕강 베어진 것을 보고는 무릎이 꺾였다. (중략) 서울사는 나무는 곧 사울사는 나무라는 걸 깨달았다. 마치 우위의 생명인 양 나무를 함부로 대하는 살풍경은 하도 허다해 질릴 새도 없다. 굳이 위아래를 매긴다면, 계통의 역사성과 다양성, 개체의 독립성과 자생력 그 무엇도 나무가 인간보다 못할까. 죽어서조차 생태계에 미치는 광대한 이로움은 가히 우주적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나무는 생명이다. 나무는 목재가 아니다. (중략) 나무가 인간보다 위대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무너져가는 인산성이 다소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흐릿해지는 끈기에 풀을 보탠다. 더불어 내가 떠돌던 서울은 어찌 움트고 성장했는지, 지금은 어떤 도시인지.(장세이 작가의 '서울 사는 나무' 중 발췌)

미워졌다는 건, 그만큼 마음을 주었다는 방증이라 했던가. ‘옥수동 사랑방’을 자처하며 지난해에는 ‘원더풀(원래도 좋았는데 더욱더 좋아지는 풀)’과 ‘거기나무(거룩하고 기나긴 생, 나무)’라는 이름의 생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장석주 시인, 성석제 소설가, 이순정 숲해설가 등이 함께했으며 장세이 작가가 진행한 어린이 생태 글짓기 교실은 반응이 아주 좋았다. 올해는 책·옷·그릇 등 안쓰는 물건을 필요한 이에게 되파는 '그린장', 도자기 재활용 워크숍 '다시 담다' 등도 함께 했다. 아이들과 생태동화를 함께 읽는 '생동생동'도 진행중이다. 기발한 행사 이름들은 모두 장세이 작가의 솜씨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지난달 25일도 옥수책빵이 마련한 ‘황경택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강변 산책’이 있었다. 이날 두 사람은 '숲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황경택 작가를 초청해 옥수역 드뭇개나루터 공원에 모여 시민들과 함께 산책했다. 황 작가는 느티나무가 있으면 느티나무에 대해, 대나무가 있으면 대나무에 대해, 뽕나무가 있으면 뽕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술술 풀어갔다. 이날 한강변 산책에 나선 이들은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과정, 수피가 벗겨지는 까닭, 죽창을 만든 이유, 다른 나무에 비해 버드나무가 오랫동안 푸른 이유 등을 배웠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시민도 황 작가의 이야기에 매료돼 긴 시간 산책에 합류했다. 이들은 이렇게 옥수동 주민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목수책방'은 자연과 인간의 공생,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2014년부터 꾸준히 펴내고 있다. 사진은 목수책방에서 발간한 책들. (박소희 기자) 2018년 5월25일 / 그린포스트코리아
'목수책방'은 자연과 인간의 공생,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2014년부터 꾸준히 펴내고 있다. 사진은 목수책방에서 발간한 책들. (박소희 기자) 2018년 5월25일 / 그린포스트코리아

숲에서 사는 도마뱀의 관점에서 터널 공사를 위해 산에 구멍을 뚫는 인간은 침입자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은 ‘해충’에 불과하다는 장세이 작가. 조금 과격하게 들리지만 결국 지구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공존공간'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숨쉬고, 먹고, 자고, 사랑하는 이 땅, 지구생명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전 대표는 “균형과 순환”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생태 피라미드를 배울 때 인간은 그 관계에서 빼놓고 가르친다”며 인간 역시 생태계를 이루는 한 요소임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균형과 순환, 우리는 그것을 '생태'라 부른다. 죽어가는 숲에 인공호흡. 전은정 대표가 ‘인간과 자연의 공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주제로 책을 펴내는 이유도, 장세이 작가가 낡은 의자, 망가진 이젤, 부러진 빨래 방망이들을 모아 이웃의 이진경 목수에게 부탁해 ‘죽다가 살아난 나무’를 ‘옥수책빵’ 앞에 심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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