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 업사이클링기업 '밀키프로젝트' 김수민 대표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밀키프로젝트'의 김수민 대표.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밀키프로젝트'의 김수민 대표.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우유팩은 슬픈 운명을 타고 났다. 종이이면서 다른 종이와 섞이지 못한다. 비닐수지가 코팅된 우유팩은 일반 폐지와 혼합배출하면 쓰레기가 된다. 우유팩 재활용률이 30%를 밑도는 이유다.

그런 우유팩은 ‘밀키프로젝트’에서 지갑으로 재탄생된다. 이곳에서 출시되는 지갑들은 ‘1등급’, ‘MILK’, ‘참맛’ 등 우유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본, 한국 등 각 나라 마트에서 바로 집어온 듯한 이들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처음 탄생했다.

후쿠오카에서 시작한 밀키프로젝트는 현재 한국과 일본 두 곳에 거점을 두고 있다. 두 명의 디자이너가 일본과 한국에 한 명씩 거주하면서 활동 중이다. 한국의 밀키프로젝트는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 3층에 사무실이 있다. 25일 그곳에서 김수민 대표를 만났다.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유통마케팅을 전공했다. 김 대표가 취직한 일본의 환경 벤처기업은 플랜트를 제조하고 발전소 만드는 일을 했다. 그에겐 그 일이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제가 주체가 된 일을 하지 못했어요. 나라 지원사업 쪽으로 활동했죠. 지금 하는 일과는 성격이 달랐어요. 사업은 간단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디자인을 전공해서인지 일본 마트의 우유팩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한국과는 달리 색상이 화려하고, 폰트가 예뻤죠. 저걸로 뭔가 해보면 재밌겠다 싶었죠.”

밀키프로젝트 제품이 진열된 우유팩 모양 전시품.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밀키프로젝트 제품이 진열된 우유팩 모양 전시품.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후쿠오카에서 시작해서인지 일본 기업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 밀키프로젝트의 시스템은 일본에 더 잘 갖춰져 있다. 그곳에서는 지역 단체와 연계해 제품을 생산 중이다.

“후쿠오카시 인큐베이팅 센터에 사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센터에 들어가게 되면서 사업이 시작되죠. 일본에는 또 장애인시설 단체 등에 일감을 제공해주면 상품을 만들어 주는 곳이 많아요. 그들과 연계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저희는 안정적인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는 윈윈 시스템이 된 거죠.”

디자인을 고려하다 친환경이 돼 버린 것처럼 처음부터 사회적 약자와의 협업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후쿠오카 인큐베이팅 센터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제안을 받았다. 협업을 하며 얻은 보람이 꽤 컸다. 정신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우유팩 지갑 생산을 즐거워했다. 그 즐거움이 김 대표에게는 깊은 감동으로 찾아왔다.

원활한 생산 시스템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6개월 이상의 트레이닝 기간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덕분에 잘 숙련된 장인들이 배출됐다. 그들과 함께 소량 생산 체계를 중량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한국에도 생산 시스템은 있지만 일본처럼 체계를 갖춘 상태는 아니다. 이제 공동체와 함께 하는 체계를 구축한 단계다. 장애인시설뿐 아니라 직업 학교 등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다양한 디자인의 우유팩이 제작을 기다리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다양한 디자인의 우유팩이 제작을 기다리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제품의 원재료가 되는 우유팩은 어떻게 제공받을까. 우리나라 주민센터 중에는 우유팩을 모아오면 재생 화장지와 바꿔주는 곳이 꽤 있다. 폐지와 섞이면 쓰레기가 돼버리는 우유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김 대표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주민센터 등과 협업해 다달이 일정량을 공급받고 있다.

아무 우유팩이나 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겨지거나 심하게 찌그러진 우유팩은 제품화가 힘들다. 김 대표는 이런 점을 알리려고 주민센터 한편에 디스플레이 박스를 마련했다. 유인물도 돌렸다. 재생휴지를 나눠 주거나 완성품을 보여주며 관심을 유도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그러자 우유팩 양이 늘고 상태도 점점 좋아졌다.

그렇게 모인 우유팩으로 만든 제품이 본격적으로 판매된 건 지난해부터다. 한국 우유팩 제품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인기가 더 많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일본 우유팩 제품들이 더 많이 팔린다. 소비자들은 익숙한 느낌보다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한글 폰트가 외국에서는 신선한 디자인 요소다.

밀키프로젝트는 한국, 일본뿐 아니라 대만과 유럽에서도 우유팩을 제공받고 있다. 김 대표가 밀키프로젝트를 어느 나라 브랜드라고 콕 집어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제품화했을 때 소비자 선택을 받을 수만 있다면 최대한 영역을 넓히는 게 목표다.

새활용플라자 1층 전시공간에 마련된 밀키프로젝트 제품들.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새활용플라자 1층 전시공간에 마련된 밀키프로젝트 제품들.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밀키프로젝트에 지갑만 있는 건 아니다. 주력 상품인 밀키 파우치를 보조하는 제품으로 뱃지도 판매한다. 뱃지에는 전 세계 우유캡의 이미지가 프린팅 돼 있다. 뱃지를 모으는 수집가들도 많은 편이라 뱃지도 반응이 좋다. 현재 휴대폰 케이스 등도 개발하고 있다.

“휴대폰 케이스는 명동성당 지하 ‘레코드’라는 곳에서 이번 달 처음 선보였어요. 올 상반기 내에는 출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휴대폰 케이스, 키링 등 잡화 중심으로 상품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제품의 원재료를 우유팩에 한정 짓지 않을 수도 있어요. 환경적 소재로 가방 등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업 영역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유팩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험해 봤다. 초중고 학생들이 우유팩으로 조립용품을 만드는 체험학습이다. 밀키프로젝트 관계자가 없어도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완성도를 높이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보령우유와 협약을 맺고 제작한 제품들.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보령우유와 협약을 맺고 제작한 제품들. (서창완 기자) 2018.5.25/그린포스트코리아

우유업계 등과 연계한 제품 생산도 시작했다. 밀키프로젝트는 지난 3월 보령우유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우유팩으로 만든 제품 자체가 우유를 광고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밀키프로젝트의 상품은 매력적이다. 김 대표는 이 점을 발전시켜 기업 연계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밀키프로젝트가 내세우는 가치는 ‘환경친화, 사회친화, 사람친화’다. 원자재 공급부터 제품 생산까지 친환경과 사회적 공헌이라는 공익적 요소가 담겼다. 이 뚜렷한 방향성을 갖추게 되기까지 계획대로 된 것은 없었다.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죠. 친환경이 포인트가 아니라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그렇게 시작해 생산을 하려는데, 사회적 약자분들과 함께 하게 됐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생겼습니다. 예쁜 우유팩을 보고 시작된 호기심이 어쩌다 보니 사람과 사회까지 어우르게 된 거죠.”

김 대표는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과정이 조화를 이뤄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발전했다.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건 ‘우리’만 잘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김 대표는 공동체적 가치들이 모인 밀키프로젝트라는 브랜드가 단단해지면 자연스럽게 수익은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1~2년만 하고 그만둘 사업이 아니잖아요. 유행을 좇거나 흐름을 탈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 목표는 뚜렷해요. 수익도 내면서 상생하는 기업이 되는 겁니다.”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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