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학자, 언어 확장 측면에선 '긍정적' 평가
초등교사 "언어는 생각의 도구…행동을 결정"

기성세대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 때는 안 그랬어." 젊은세대들을 바라보는 이 불편한 시각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시대에 쓰인 점토판 문자에서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세대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풀지 못한 숙제였다. 특히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는 고도의 압축성장을 이뤘지만 그만큼 세대 간의 단절도 크다. 그렇다면 요즘 애들 버릇은 정말 문제일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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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급식을 먹는 세대' 즉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체라고 해서 이름 붙은 '급식체'. 지난해 11월부터 방영된 tvN <SNL코리아>의 시즌9 ‘설혁수의 급식체 특강’ 코너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거나 성인물에 사용되는 말을 차용한 신조어가 ‘급식체’ 일부에 포함돼 있지만 ‘SNL9’은 이를 여과 없이 사용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올 3월 ‘저속한 언어 사용’을 이유로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나도 초딩과 대화 할 수 있다’는 주제로 기획된 ‘급식체 특강’은 당초 자녀와 소통이 부족한 기성세대를 타깃층으로 노렸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해당 프로그램이 15세 이상 시청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10대 사이에 회자되며 '급식체' 파급에 앞장서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급식체’를 사용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모(18·성신여고)양은 “‘급식체 특강’(프로그램 방영) 후 친구들끼리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초성어와 일본어를 적극 차용하고 종결형 어미를 붙이지 않는 게 특징인 이 말투는 일명 ‘휴먼급식체’라 불린다. 지난해 스마트학생복에서 공식 페이스북 및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초·중·고교생 총 7582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급식체 사용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소년 10명 가운데 7명은 '급식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왜 ‘급식체’를 사용 하냐는 질문에 설문 참여자들 절반 이상이 “재밌어서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김철수 마케팅팀 대리의 급식체 사직서’ '앙~ 대표찡~ 부장님 인성이 오지고 지리고 렛있고 /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소쩍새 지저귀는 부분이고요? / 일이 너무 빡세서 좌로 에바쎄바쌈바디바 참치넙치공치삼치갈치인 부분입니다~ 이거레알 반박불가 빼박캔트 벅캔스탁인 부분 지리고요~'를 보면 ‘인과성’이 거세된 동음이의어를 리듬감 있게 배열하고 있다. 

저급한 기지(wit) 형식의 이 낱말놀이는 동시대의 특징인 탈구조적 성격을 가진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박진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낀 젊은이들이 어느 시대나 자기들만의 은어를 만들어왔다"며 "젊은 사람들끼리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는 현상이 더 강화된 것"으로 풀이한 바 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리가 문법파괴라는 형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글파괴’다 ‘세대문화’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표현방식이 다채로워지며 우리 언어·문자와 관련된 문화 다양성을 증대한다는 전문가들의 긍정적 평가도 많다. 

그러나 방심위의 ‘SNL9' 행정지도 처분에서도 드러나듯 단지 재미로 사용하기엔 불편한 지점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임모(29·여) 교사는 최근 당황스러운 사건을 경험했다. 종이접기 시간에 해당 칸에 좋아하는 단어를 써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남학생이 발표를 자청했다. 발표할 종이엔 음란물에서 파생된 ’급식체‘가 담겨 있었다. 임 교사는 해당 학생을 불러 어디서 이 단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그는 유튜버가 사용하는 단어라고 대답했다. 교사는 그날 ’정보통신윤리교육‘을 한 시간 실시했다. 정보통신윤리교육이란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아직 별도 교과로 지정돼 있지 않지만 필요시 담임 재량으로 진행된다. 

임 교사는 “온라인에서 습득한 언어나 행위를 아이들 대부분 의미도 모르고 따라한다. 언어는 생각의 도구며 생각은 곧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 타인을 비하하는 언어는 타인을 무시하는 행동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인 아이들에게 이젠 온라인 콘텐츠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들은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잘 모르니까 MBC나 KBS처럼 유튜브(같은 온라인 콘텐츠)도 검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제안을 전했다.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냐는 질문에 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는 ‘실과’에서, 중고등학교에서는 ‘정보’ 교과에서 정보통신윤리를 다루기는 하지만 ‘사이버 폭력’이나 ‘저작권’ 관련 등만 담겼다. 해당 내용에 관해서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① 대한민국은 거대한 노키즈존?
② 디지털 세계로 비켜난 아이들
③ '급식체', 문화일까? 문제일까?
④ 거부당한 아이들의 ‘비행’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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