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흑룡의 해, 임진년(壬辰年)이 밝았다. 서양력(西洋曆)으로 2012년 1월23일이다. 흑룡의 해를 맞아 만사형통하고 용처럼 크게 날아오르라는 덕담은 이제야 비로소 제 때에 맞는 것이다. 임진년은 동양력(東洋曆)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서양력으로 새해는 십이간지, 육십갑자와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서양력으로 새해를 맞을 때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동양력으로 육십갑자에 해당하는 해를 서양력에 갖다 붙이고는 한바탕 유난을 떠는 일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그 메아리를 다 거두기도 전에 벌써 무슨무슨 해의 첫 아이가 자정을 막 넘긴 시각에 태어났다고 방송사마다 호들갑인 게 이제는 아예 습관화되었다.

기자멘트 : 네, 60년만에 한번 돌아오는 흑룡의 해인 임진년에 첫 아이는 1월1일 0시 1분에 서울 OO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 3년차인 김OO씨 부부는 임진년 첫 아이로 기록된 자신들의 아이를 사랑스런 눈으로 내려다보며 순산의 기쁨을 말합니다.

산모 : 흑룡의 해 큰 기운을 타고 난다는 아이를 낳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용처럼 훌륭한 인물로 키우겠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애석하게도 흑룡띠가 아니라 토끼띠, 신묘년(辛卯年) 태생이다. 아이의 부모는 일부 미디어와 대형 기업들의 상업성에 휩쓸린 희생양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새해 인사를 두 번 주고받는 일에도 이제는 아주 익숙해졌다. 서양력으로 새해 첫 날 즈음에 한 번, 그리고 우리의 설날 무렵에 또 한 번이다. 서양력으로 12월 말일 종무식 때 회사동료들과 나누었던 인사를 설 연휴 시작 직전에 다시 주고받곤 한다.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와 SNS도 물론 두 번 오간다. 특이한 것은 연하장만큼은 거의 서양력을 기준으로 한 새해에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설날 전후해서는 선물이 오고가고 대신 연하장을 보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새해를 두 번 맞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서양력만을 사용하는 서양 사람들이 아주 많이 부러워해야 할, 동양력을 함께 쓰는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홍복(洪福)이다. 더욱이 설날을 큰 명절로 쇠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 의미가 깊다. 새해라는 새로운 기회를 두 번이나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한다. 책상정리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새 다이어리에 신년의 계획과 결심들을 꼼꼼히 적어 넣는다. 초콜릿 복근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에 하고, 영어 울렁증에서 탈출하겠다고 출퇴근길에 열심히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 책을 주문하고, 아침을 깨워주는 알람 시간도 새로 설정한다. 그리고는 며칠간은 책상머리에 붙여놓은 목표를 따라 열심히 움직인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이다. 애초에 계획을 너무 크게 잡았거나, 아니면 여건이 받쳐주지 않은 탓에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제대로 지켜지는 게 하나 없다. 헬스클럽 회원증은 지갑 안에 꼭꼭 숨겨져 있고, 영어는 서너 마디 외운 채로 끝이다. 한 달 목표로 잡아 사들인 책에는 조금씩 먼지가 쌓이고, 아침 기상시간은 자꾸 늦어진다. 끊겠다고 라이터까지 모두 버렸건만 어느덧 담배에 스스럼없이 손이 간다.

그러면서 좌절한다. 자신의 의지박약을 탓하고는 지난해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일상으로 빠져든다. 이 때 우리는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신년에 세운 목표가 한 달여의 시행착오 끝에 목표 수립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다시 시작해 보라고, 지난 한 달여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새로운 계획과 목표로 다시 도전하라고, 그래서 새해가 정말 알차고 충실하도록 이루어내라고.

살아가면서 이토록 쉽게 두 번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도 세월이 선사하는 선물임에야. 그러므로 두 번째 주어진 기회는 아주 소중하게 맞을 일이다. 목표 달성률을 최대화하기 위해 계획을 수정하고 실천방식을 바꾸고 의지를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설날을 그저 친지들과 함께 하는 명절일 뿐이라고 무의미하게 지나칠 일이 아니라, 두 번째 맞는 새해의 첫 날로 탄탄하게 인식하면 맞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2012년과 임진년은 이미 그렇게 우리의 생활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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