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국립경주박물관, 오는 8월 5일까지 특별 전시

좌상- 왼손에 칼을 든 신장 하단, 우상-왼손에 칼을 든 신장상, 좌하-왼손에 칼을 든 신장, 중하- 활과 화살을 든 신장, 우하-오른손에 칼을 든 신장
좌상- 왼손에 칼을 든 신장 하단, 우상-왼손에 칼을 든 신장상, 좌하-왼손에 칼을 든 신장, 중하- 활과 화살을 든 신장, 우하-오른손에 칼을 든 신장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경주 사천왕사지 발굴 100주년을 맞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과 공동으로 15일부터 오는 8월 5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에서 사천왕사 녹유신장상(四天王寺 綠釉神將像) 등을 전시한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각각 다른 기관에서 보관해온 7점을 모아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해 7월 27일 체결한 학술교류 협약의 성과다.

사천왕사는 679년 문무왕(재위 661~681년)이 경주 낭산 신유림(狼山 神遊林)에 건립한 호국사찰로, 낭산 신유림은 신라를 공격하는 당(唐)나라의 해군을 막기 위해 승려 명랑(明朗)이 밀교 의식을 설행한 곳이었다. 사찰은 고려 초까지 번성했지만 고려 말부터 쇠락해 조선시대에는 폐사됐다. 사천왕사에 대한 근대적인 재인식은 1915년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서탑지에서 녹유신장벽전의 깨어진 조각 일부를 수습하면서 시작했다.

경주 사천왕사 녹유신장상은 1915년 처음 발견 당시, 세 종류의 벽전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깨진 조각만 발굴됐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1918년 사천왕사 발굴을 개시했고 1922년부터 ‘고적발굴조사사업’의 하나로 본격적인 발굴을 진행됐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발굴로 사찰과 녹유신장상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광복 이후 발굴 자료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벽전 파편을 조립한 결과, 두 종류의 신장(왼손에 칼을 든 신장과 활과 화살을 든 신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체계적이고 정밀한 발굴을 진행했고, 200여 점의 파편을 3차원 입체(3D) 스캔하고 이를 참고로 세 종류의 신장을 복원했다. 또한 이들이 사천왕사지 동·서 목탑 기단 벽면을 장식했던 사실도 밝혀냈다.

사천왕사 녹유신장벽전은 세 종류가 한 묶음으로 탑 한 면에 두 묶음씩 동·서 목탑 기단에 16개의 묶음으로 배치되어 벽전의 총 수는 48점인 것으로 밝혀졌다. 발굴 성과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 수습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보관하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의 하단부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서탑지 북편에서 발굴한 상단부 6점이 같은 상이었음을 확인했다. 2017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7점의 파편을 조립하고 빠진 부분은 같은 유형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 파편을 참고해 벽전 복원에 성공했다. 

올해 국립경주박물관은 처음 사천왕사 발굴을 진행한 지 100년 만에 최초로 원래 짝을 찾아 복원된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을 전시한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사천왕사의 건립과 100년에 걸친 녹유신장상의 발굴 조사 약사(略史),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정밀한 발굴 과정, 글과 영상으로 녹여낸 탑 기단부 녹유신장벽전의 배치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복원된 3가지 유형의 벽전이 탑지뿐만 아니라 금당지나 단석지 등 사역 내 여러 위치에서 출토된 같은 유형의 다른 벽전을 참고해 복원한 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 나온 녹유신장벽전 뿐 아니라 월지관의 ‘월지 출토 금동판불상’(보물 제1475호)과 신라미술관의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보물 제366호) 사리외함을 함께 관람하면 통일신라의 국제성과 신라인의 종교·예술적 역량을 느낄 수 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 설명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2시 30분까지 신라미술관 1층 불교미술 제1실에서 진행된다.

녹유신장상 포스터
녹유신장상 포스터

 

 

parkty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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