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공공기관장 8명 즉각 해임 추진
음서제·금수저 논란 등 청년층 박탈감
이 총리 "사회 신뢰 훼손한 중대 적폐"

출처=pixabay
출처=pixabay

 

[그린포스트코리아]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캐도 캐도 끝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관에게 질문할 내용을 사전에 지시했고, 항공안전기술원은 지인의 채용시험에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다른 지원자보다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면접위원이 아닌 고위 인사가 면접장에 들어와 특정인에게 우호적인 질의를 하는 등 공정면접을 방해했다. 서울대병원은 서류전형에서 합격배수를 조정해 특정인을 합격시킨 후 면접에서 면접위원 전원이 고득점을 줘 채용했다. 한식진흥원은 경력도 없고 서류도 안 낸 고위인사 지인의 자녀를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쳐 특별채용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가점 대상자에게 가점을 부여하지 않아 탈락시킨 후 지역 유력인사의 자녀를 채용했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고위 관계자의 자녀를 개약직으로 채용한 후 면접 최고점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모두 정부가 29일 발표한 공공분야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 내용이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 만연… 청년층 박탈감 커

공공기관장이 선두에 서서 채용 비리를 저지른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현대판 음서제’ ‘한국은 낙하산 공화국’ ‘금수저 흙수저’ 등의 자조 섞인 한탄이 만연하고 있다. 특히 가뜩이나 취업 한파를 겪고 있는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올해 한 기업에 입사한 홍모(32)씨는 “민간에서는 ‘아버지가 어디어디 임원이어서 그 아들이 해당 회사에 취직했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좌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공공기관은 좀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번 결과를 보고 나니 금수저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인 김모(29)씨는 “빽 없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게 아니냐”라며 “음서제라는 말이 아니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분노했다. 주무 이모(57)씨도 “딸이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결국 부모 잘 만난 자식들만 좋은 직장을 차지하는 것 아니냐”라며 “그저 내가 죄인인 것만 같다”고 허탈함을 드러냈다.

정부 채용비리 원스트라이크 아웃 방침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로 중앙 부처 산하 공공기관, 지방 공공기관, 기타 공직 유관단체 등 1190곳 가운데 946곳에서 총 4788건의 비리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부정 합격된 사람도 100명에 달했다. 정부는 이에 채용비리에 연루된 임직원 390명을 즉시 업무에서 배제하고 수사를 의뢰하는 등 퇴출 작업에 착수했다.

이와 별개로 수사의뢰 대상 8개 현직 공공기관장에 대해서는 즉각 해임이 추진한다. 그러나 정부는 해임하기로 한 현직 공공기관장 8명의 구체적인 신상정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정연석 항공안전기술원 원장, 김상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등은 조사 결과 상당한 연루 혐의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물러났거나 해임된 전직 기관장들도 수사 대상이다. 신성철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과 정기혜 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장 등이다. 이외에 지난해 이미 퇴직한 공공기관장 14명도 수사를 받고 있다.

아울러 부정한 방법으로 임용된 자에 대한 채용 취소 근거 등도 재정비한다. 수사 결과 최종합격자가 뒤바뀐 경우는 원칙적으로 구제하고, 채용 비리에 대한 상시 감시 및 신고체계도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향후 채용단계 전반의 투명성을 높일 방침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30일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청년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사회의 신뢰를 훼손한 중대한 적폐”라고 규정한 후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사법 처리를 주문했다. 이어 “금융권을 포함한 공공기관들은 출신학교나 지역, 스펙을 보지 말고 실력과 업무 잠재력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블라인드 채용 같은 공정한 채용제도를 시행하라”라고 지시했다.

pigy9@naver.com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