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갑에게 '을질'할 수 있는 세상
[기자수첩] 갑에게 '을질'할 수 있는 세상
  • 황인솔 기자
  • 승인 2017.12.13 15: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황인솔 기자]
[그림= 황인솔 기자]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사회구조는 상하관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어려서는 선생과 부모를 공경하도록 교육받고, 자라서는 직급이 높거나 소위 '갑'이라 불리는 고용주에게 고개 숙이라고 강요받는다.

상하가 존경과 배려로 하나되면 금상첨화겠지만, 건강한 상하관계를 찾기란 좀처럼 힘들다. 기자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사회적 풍토는 철저하게 갑에게 유리한 구조다. 즉, 을의 볼멘소리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을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거나, 정당한 요구를 할 때 갑은 이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배척하기도 한다.

갑을관계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는 이유는 소수인 갑이 다수인 을에게 불공정한 요구를 하고, 착취하는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갑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 또는 회사'이고, 을은 '돈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갑이 을을 고용하는 이유는 이윤 창출이고, 을은 갑의 수익을 위해 노동하고 계약된 임금을 받는다. 이론상 등가교환의 관계다.

그러나 을은 노동에 비해 임금이 적다고 느끼는 경우가 태반이며, 반대로 갑은 을이 소위 '밥값'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찰이 시작된다. 게다가 돈을 가진 갑은 소수이고, 노동자인 을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갑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마찰을 빚는 을을 걸러내면 그만인 경우도 생긴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믿고 있던 신분제도가 갑과 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셈이다. 갑질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자주 듣는다. 을은 갑에게 일정 노동을 제공하겠다는 계약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 갑의 폭언을 견뎌야 하고,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준수해야 하겠지만, 갑의 엄격한 잣대는 항상 출근과 점심시간만을 향하고 있다. 을의 정상적 권리인 퇴근시간을 준수하려면 갑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한다.

최근 언론에서는 몇몇 갑질기업에 대한 얘기가 크게 회자됐다. 가장 최근에는 파리바게뜨의 '불법 파견 근로 의혹'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본 문제를 제기했던 이정미 의원실은 "파리바게뜨 본사가 가맹점 제빵기사에게 에어컨 청소를 시키거나 품질을 지적하는 등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제빵기사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아닌 협력사와 계약을 맺고, 가맹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지시는 파리바게뜨 측에서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부는 제빵사들에 대한 부당 고용에 대해 파리바게뜨 본사가 직접고용하라는 시정조치를 지시했지만, 사태는 쉽게 풀릴 기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노조 내 갈등이 심화되면서 파리바게뜨 측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는 연구를 통해 "갑질이 뇌 이상에 의한 정신적 병"이라고 발표했다. 권력에 취해 이를 남용하면 도파민이 비정상적으로 촉진되며,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공격성을 높이는 호르몬이 증가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갑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갑질하는 자의 뇌는 쾌락 호르몬으로 젖어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한민국은 계급사회를 탈피해 민주주의로 변하는 과도기를 겪고 있지만 아직도 직원을 수단과 도구로 생각하는 고용주가 많다. 다수의 기성세대 역시 젊은세대에게 자신이 경험한 수직관계를 강요하곤 한다. 민주주의가 꽃 피기 위해선 서로 존중하고, 개개인의 능력을 인정해야 함에도 말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 기술이나 생활패턴은 정말 빠르게 바뀌고 있음에도 상하관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이 과도기는 아닐까? 과도기가 끝나고 건강한 상하관계 또는 수평관계가 정립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갑에게 진정으로 고한다. "을이 있기에 당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