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우리에겐 비포장도로가 필요하다
[발행인칼럼] 우리에겐 비포장도로가 필요하다
  • 김기정
  • 승인 2017.09.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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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테를지국립공원내의 초원. 파란 하늘과 푸르른 들판이 맞닿은 풍경은 몽골인들이 자랑하는 몽골의 상징이다.
몽골 테를지국립공원내의 초원. 파란 하늘과 푸르른 들판이 맞닿은 풍경은 몽골인들이 자랑하는 몽골의 상징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인근에 위치한 테를지국립공원. 몽골의 젖줄이 톨강과 초원이 어우루져 울란바토르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인근에 위치한 테를지국립공원. 몽골의 젖줄인 톨강과 초원이 어우루져 울란바토르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 동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테를지(Terelj)국립공원이 있다. 몽골의 자연경관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몽골 여행의 ‘필수코스’로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그야말로 대자연의 한복판에서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ger)에 묵으며 몽골이 자랑하는 파란 하늘(blue sky)를 맘껏 감상할 수 있기에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승마도 이곳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체험이다. 몽골의 젖줄인 톨(Tull)강과, 그 강물로 투영되는 파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사의 근심거리를 잠시나마 잊게 된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는 국도.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차들이 서로 추월하며 곡예하듯 운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는 국도.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차들이 서로 추월하며 곡예하듯 운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테를지를 가려면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2시간 남짓 달려야 한다. 이곳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하나 밖에 없고, 포장상태도 그리 양호하지 않다. 따라서 앞 차를 추월하기 위해 맞은 편 도로로 곡예 하듯 들랑날랑 하는 모습은 이 도로의 ‘고정 풍경’이나 다름 없다. 몽골의 차량들은 대부분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기 때문에(일본산 차량들이 많다는 뜻이다), 앞 차를 추월하는 일이 그리 용이치는 않지만 몽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적을 울리며 요리조리 곡예운전을 한다. 동승한 한국인 방문객으로서는 바짝 긴장한 채 가슴을 졸일 수 밖에 없다.

1시간 조금 넘게 달리고 나면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테를지로)로 빠지게 된다. 역시 비좁은 왕복 2차선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도로 포장상태는 훨씬 양호하다. 이때부터 몽골 초원과 구릉, 아파트 한 채 만한 바위 등을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테를지국립공원에 들어서기 직전 고갯마루에서는 훈련된 독수리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테를지국립공원에 들어서기 직전 고갯마루에서는 훈련된 독수리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풍경. 잘 훈련된 독수리를 팔에 얹고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가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 직전의 고갯마루에 있다. 여기부터 다시 내리막을 3km 가량 달리면 톨강을 건너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내리막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지 않고 완만한 S자가 계속 이어지며 구불구불 휘어져 있다. 하지만 경사는 급한 편.

여기에서부터 길은 갑자기 비포장 자갈길로 바뀐다.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까지.

올 봄 처음 이곳을 지날 때는 비포장의 이유를 몰랐다. 일행과 함께 “도로 포장하다가 돈이 모자랐나?” 정도의 농담만 주고 받았을 뿐, 비포장도로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8월에 다시 이곳을 지날 때 가이드로부터 들은 설명은 뒤통수를 살짝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테를지국립공원으로 들어서려면 고갯마루에서부터 비포장도로를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2km 남짓한 내리막 구간을 차들이 저속으로 운행하고 있다.
테를지국립공원으로 들어서려면 고갯마루에서부터 비포장도로를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3km 남짓한 내리막 구간을 차들이 저속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의 설명.

“이 도로를 잘 포장해 놓으면 차들이 내리막길을 쌩쌩 달릴 것이고, 커브길에 사고가 엄청 많이 날 겁니다. 그걸 막으려고 일부러 이 구간만 포장을 하지 않은 겁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줄이기 위해 내리막길을 포장하지 않은 지혜. 잘 닦아 빠르게 가는 것 만이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가 이 비포장도로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내달리는데 익숙하다. 특히 뭔가 잘 나가는 것 같으면 아예 끝장을 보려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야심 차게 추진중인 환경정책을 바라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중단, 노후 석탄화력 가동중단, 물관리일원화 등등 굵직한 정책들을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거침없이 추진중이다. 정권 초기 지지율이 높을 때 일사천리로 해치우겠다는 듯, 거칠다는 느낌이 팍 들 정도다. 특히 환경·에너지 관련 정책의 속도는 아주 잘 닦인 고속도로를 쌩하고 달리듯 멀미가 날 지경이다.

이제 다음달이면 현 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째로 접어든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기에, 촛불을 등에 업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내각구성도 완전히 마치지 못한 상태다. 헌재소장이 국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과연 이런 상황을 사사건건 발목 잡는 야당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이쯤에서 한 번쯤 비포장도로 앞에 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 정권(들)의 모든 것이 잘못 됐고 청산해야 할 적폐들이 산적했다고 확신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일거에 쓸어버리고 싶을지 모르지만, 한 나라의 경영은 결코 광화문광장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잠깐 멈춰서 방향과 속도를 점검하면 왜 아직도 내각구성조차 완료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숨가쁘게 쏟아낸 환경과 에너지 분야의 급진적인 정책도 과연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진실로 이 나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 차분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장 20여일 뒤면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어떻게 결과가 나오든 한바탕 논란과 혼란의 소용돌이가 예정돼 있다.

그런데도 마냥 달릴 것인가. 급커브의 내리막길인데도 포장도로라고 가속페달을 계속 밟을 것인가? 그 다음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테를지의 몽골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2017.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