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 유류유출 10여년, 직무유기의 역사

용산 미군기지 사우스포스트 인근 녹사평역에 설치된 오염 지하수 저장고 앞을 미군들이 지나치고 있다. [출처=환경TV DB]
용산 미군기지 사우스포스트 인근 녹사평역에 설치된 오염 지하수 저장고 앞을 미군들이 지나치고 있다. [출처=환경TV DB]

지난 10여년간 전국에서 반환된 주한미군 기지는 하나같이 환경오염 문제를 앓고 있다.

포름알데히드 등 독극물 무단 방류 뿐 아니라, 고엽제 다이옥신 성분과 중금속인 카드뮴, 납 등이 기준치의 100배 이상 검출되기도 했다.

올해 말 반환돼 공원으로 바뀔 용산 미군기지는 유류로 인한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차량과 군사장비용 대형유류저장고를 포함해 건물 1~2곳 마다 유류저장고가 있는 미군기지 특성상 유류유출로 인한 토양 지하수 오염이 빈번하다.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4월 미국 정보자유법을 통해 미국 국방부에서 입수한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유출사고 기록(1990~2015년)'에 따르면 이 기간 기름유출사고는 모두 84건이 발생했다. 주한미군 자체 기준으로 '최악'인 3700리터(1000갤런) 이상의 기름 유출 사고가 7건, '심각'인 400리터(110갤런) 이상의 사고도 31건에 달했다.

미국 국방부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유출사고 기록(1990-2015)’의 유출사고 현황도. [출처=녹색연합]
미국 국방부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유출사고 기록(1990-2015)’의 유출사고 현황도. [출처=녹색연합]

대부분 지하유류탱크와 배관이 부식해 발생한 사고로 이중 미군이 우리 정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에 통보한 기름 유출사고 건수는 7건에 불과했다.

또 2013년 한미 양국이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 논의를 거쳐 2015년 5월 용산 미군기지 사우스캠프 내·외부 14곳의 지하수 관정에서 수질오염 여부를 합동 조사한 결과, 7곳에서 허용기준치(0.015㎎/L) 이상의 발암물질 벤젠이 나왔다. 이중 한 곳은 기준치를 160배 초과한 2.440㎎/L가 검출됐다. 

2016년 서울시의 한국농어촌공사 용역 조사에서는 6호선 녹사평역과 사우스캠프 인근에서 벤젠이 최대 8.8㎎/L, 기준치의 600배 가까이 검출됐다. 캠프킴 주변에서는 석유계통 물질 오염 여부를 판단하는 '석유계총탄화수소'가 최대 768.7㎎/L 검출돼 기준치를 500배 이상 초과했다. 

올해 말까지 유엔사령부 등을 남기고 평택 등으로 기지를 이전하는 미군은 정화작업과 비용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미군의 무책임한 태도는 SOFA의 제4조1항,'기지에 대한 원상회복 및 보상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규정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미국 합중국 정부는, 본 협정의 종료시나 그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에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에, 이들 시설과 구역이 합중국 군대에 제공됐던 당시의 상태로 동시설과 구역을 원상 회복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하며, 또한 이러한 원상 회복 대신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보상해야 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해당 조항이 '환경오염 면죄부 조항'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이 조항에 근거해 환경오염에 대한 원상회복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SOFA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 상 환경오염 정화기준, "인간건강에 대해 널리 알려진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 : 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도 해석이 엇갈린다. 

2005년 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한국은 정화 기준으로 토양환경보전법을, 미국은 KISE를 제시했다. KISE는 미 국방부 환경정책에 있는 내용이다. 주한미군 환경관리기준(EGS)에 따르면 KISE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돼있다. KISE가 '인간 건강' 국한돼 생태계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2003년 5월 한미 양국은 미군 공여지를 반환할 때 미군이 오염을 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최초로 2003년 12월 반환된 용산 아리랑 택시 부지는 미군이 오염을 정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군 측의 정화 작업은 거기까지. 이후 반환된 미군기지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기지 반환 1년 전부터 환경오염조사를 할 수 있다.

반환 기지에 대한 환경조사와 치유에 관한 내용을 협의하고 승인하는 기구는 SOFA 환경분과위원회다. 한국측 대표는 환경부가 맡고 있다.

오염 정화기준을 정하며 토양환경보전법을 주장한 환경부와 KISE를 주장한 미군 사이 논의가 진정되지 않자 국방부는 이 문제를 2005년 9월 SPI(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의제로 올렸다. 결국 SPI를 통해 미국 입장대로 반환에 합의하게 됐다. SPI에는 청와대 안보실, 환경부, 국방부, 외교부가 참가하며 한국 측 주무부처는 국방부다.

반환기지의 오염 실태가 심각한 것은 오염유발 시설에 대한 상시 점검이 불가능한데 기인한다. 국내법에 따르면 오염유발 시설은 지자체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고, 정기적인 점검과 보고를 해야 한다. 군 시설도 예외가 아니지만 미군기지는 오염 유발 시설에 대한 직·간접적인 점검이 불가능해 문제를 키워왔다.

우리 측에 불리하거나 해석이 모호한 조항은 SOFA 제5조 2항(시설 및 구역 사용과 관련한 제3자 청구권 면제 규정)이다.

환경오염이 발생하면 오염 발생자가 이를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미군기지로 인해 기지 외부에 환경오염 발생 시 미군이 이를 조사하고 정화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 등 기지 외부의 환경조사와 정화를 지자체가 이행한 후 관련 비용을 미군 측에 청구했지만 미군은 SOFA 제5조 2항 등을 근거로 관련 비용 부담도 거부하고 있다.

미군의 책임 회피에 대해 정부는 한미동맹 관계에 악영향 등을 우려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녹색연합은 지난 4월 발표한 성명에서 "그동안 미군기지 오염 문제에 대해 공공연한 비밀로 쉬쉬하다 오염된 채 돌려받아 한국 정부가 정화하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한다"며 "미군기지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사전예방의 원칙과 오염자 부담의 원칙이 적용되고 관련 정보가 시민들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군기지 환경피해 조사위원회 '미군기지 환경피해 보고서 2008'에서는 "2007년 6월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치유에 관한 국회 청문회'를 통해 오염과 정화의 기준이 합의되지 않은 점,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해 반환미군기지 환경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진 점, SOFA에 신설된 환경보호 조항의 현실화를 위해 SOFA개정이 절실하다는 점이 확인 됐다"고 밝혔다.

또 "반환되는 기지의 환경오염은 근본적으로 미군 주둔 기간 동안 발생한 오염 사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오염유발 시설들을 점검 관리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앞두고 같은 문제가 반복 되고 있다.

econ@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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