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환경칼럼] 차 한잔 합시다
[뉴스펭귄 환경칼럼] 차 한잔 합시다
  • 김기정
  • 승인 2017.09.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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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차(茶) 산지 하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윈난성(云南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녹차와 함께 가장 선호하는 중국차, 보이차(普茸茶)의 주산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차=보이차=운남성’을 ‘상식’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면, 보이차와 같은 흑차(黑茶)의 주생산지인 후난성(湖南省)이 윈난성에 비해 앞선다. 식품과학기술대사전에 따르면 중국 차생산지를 양으로 따질 경우, 시강(淅江省) 후난성 쓰촨성(泗川省) 1,2,3위이며 윈난성은 6번째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이렇기에 후난성 사람들은 흑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후난성 창샤시(長沙市)의 바이샤시(白沙溪)에서 생산하는 흑차는 품질면에서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중국에서 두 번째 큰 차 생산공장도 바이샤시에 있다.

최근 창사를 방문했다.

중국의 3대 차 주산지로 꼽히는 곳답게 이곳에 전세계에서 유일한 차전문방송채널(茶頻道/차채널)이 있는데, 마침 환경TV와 방송프로그램을 통한 문화교류증진의 기회가 닿아 이 채널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게 됐다. 협의 상대방은 차채널의 제작파트 최고책임자(李曉群 总監)를 비롯, 3명이었고 이 방송사 회의실에서 마주했다.

주차장 입구까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비서의 안내를 받아 방송사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입구의 LED 안내판에 이런 문구가 흐르고 있었던 것. “한국환경방송국 김기정사장님이 친히 방문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한국환경방송국-후난쾌락선봉미디어유한회사 교류회’(환경TV-차채널 회의)라고 크게 빔 프로젝터로 띄워놓고, 자리에는 크게 한글로 명패를 만들어 세워놓았다. 자신들의 이름도 모두 한글로 써서. 뿐만 아니라 회의 순서 및 논의사항을 정리한 자료도 A4용지 한 장에 모두 한글로 써서 준비해 놓았다.

어찌 보면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지만, 방문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환대였다. 특히 사드배치 문제로 한중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경색된 시기인지라, 사실 방문하기 전부터 다소 염려되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환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협의에도 자연스럽게 탄력이 붙었다.

한글 명패와 한글로 쓴 회의자료
한글 명패와 한글로 쓴 회의자료

회의를 마치고 양측 참석자 모두가 저녁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식당이라는 시후루(西湖樓). 처음 가보는 식당이라 우선 그 규모에 입이 딱 벌여졌고, 나오는 음식의 수준도 높았다. 나를 주빈 자리에 앉게 하고는 본격적으로 식사와 술이 시작됐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차채널의 최고책임자 李 总監이 내 곁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다시 건배제의를 했다. 그리고 그가 크게 외친 건배사는 “허 이빼이 차(喝一杯茶)”. “차나 한잔 합시다”였다.

수 천 년 동안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로서 지내온 한중 양국 관계가 사드배치 문제 등으로 다소 경색됐지만, 문화교류 등에 있어서는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말고 툭 터놓고 잘 해보자는 뜻이 담긴 건배사였다. 우리가 친구와 다소 껄끄러운 무엇인가가 생겼을 때 “차나 한잔 하자”라고 청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건배사였다.

우리 일행은 이후 “허 이빼이 차”를 외치며 수도 없이 중국술로 건배를 했다. 덕분에 술이 많이 취하기는 했지만 서로 기분 좋게, 정말 오랫동안 교류한 친구처럼, 형제처럼 즐길 수 있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최근 환경문제가 국가적인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환경산업기술 가운데 상대적으로 발전된 분야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적용하고 싶어 한다. 또한 문화교류에도 여전히 적극적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사드라는 복병이 두 나라 사이의 교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게 천년만년 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양국간의 문화, 기술, 경제교류는 지속되어야 하고 지속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차나 한잔 합시다”라는 건배사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수차례 그 건배사를 주고받은 그 날은 바로 한중수교 25년이 되는 날이었다. (2017.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