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류독감(AI)이 발생한 농장 인근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닭을 기르는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방침을 두고 환경·동물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지자체 등은 AI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발생 농장 반경 3㎞ 이내에 있는 농장들에서 기르고 있는 가금류에 대해 '예방적'이라는 명목으로 살처분을 실시하고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AI가 극성을 부려 단기간에 전국으로 번지면서 3600만마리가 넘는(20일 기준)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언론과 정부는 연일 최대 규모의 살처분 마릿수를 갱신하고 있다며 AI 전파 우려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AI로 인해 살처분이 이뤄진 농가 총 910개 중 실제로 AI가 발생한 곳은 369개 농가였고 나머지 541개 농가는 예방적이라는 명목으로 살처분이 이뤄졌다. 예방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실제 발생 농가보다 더 많은 수의 농가들이 살처분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예방적' 살처분으로 사상 최대의 가금류가 희생됐지만 정부는 AI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이제는 매몰지 오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수많은 가금류들을 살처분하고 땅에 묻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매몰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로부터 친환경 인증과 동물복지농장이라는 인정을 받은 참사랑 농장주는 단지 AI 발생 농가로부터 반경 3㎞ 이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기르던 닭들을 살처분할 수 없다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닭들을 살처분하는 손해는 금전으로 보상이 가능하고,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해당 농장의 닭들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AI 잠복기인 21일을 넘어섰고, 28일 음성으로 판정됐다. AI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예방적 살처분 강행의 의미가 사라진 셈이다.  '예방적 살처분'의 명목이 희미해지는 대목이다.

해외의 경우에도 AI가 발생하면 살처분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렇게 반경을 정해놓고 무차별적인 살처분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3㎞ 이내 예방적 살처분 대신 발생 농가가 관리하는 농장에 대한 살처분만 실시된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들은 AI가 발생하면 인근 농가에 대한 주변 농장으로 번지지 않도록 이동제한, 수시 예찰 등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

물론 AI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예방적 조치라는 점에서는 살처분이 필요악(惡)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살처분이 얼만큼의 예방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고, 매몰지 지하수 오염이라는 심각한 환경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제 AI는 잦아들고 있지만 언제 또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예방적 살처분'을 고집하기 보다 동물들의 복지를 고려한 건강한 사육방식 등 보다 근본적인 '예방'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AI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fly1225@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