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상 원료물질사업자이자 가습기살균제사업자, 분담금 더 내는게 타당" 지적...SK케미칼 "환경부와 협의중"

가습기살균제 제품별 판매량 및 시기 [출처='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행과 교훈' 한국환경보건학회지 초빙논문]

 

A라는 제품이 있다. B사는 A의 핵심 원료물질을 생산했고, C사는 그 물질을 담을 용기의 크기와 디자인 등을 정했다면 A의 제조사는 어디일까.

14일 환경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제정된 ‘가습기살균제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구제를 위한 기금조성에 관련 기업들의 분담금 규모가 정해지는 와중에 돌연 이런 이슈가 제기돼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애경가습기메이트’ 제품의 원료물질인 CMIT/MIT는 ‘SK케미칼’이 생산했고, ‘애경’은 살균제 용기 디자인 과정에 의견을 제시했다면, 이 제품의 제조사는 어디냐는 게 논란의 시작.

이는 국회가 해당 법안을 만들면서 피해 구제 분담금을 부담할 ‘사업자’의 범위를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와 ‘원료물질 사업자’로 나눈 게 불씨가 됐다.

특별법상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자, ‘원료물질 사업자’란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독성 화학물질을 제조한 자를 말한다. 그리고 법 35조에는 피해자를 위해 두 사업자가 분담해 2000억원 한도의 기금을 조성토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서 가습기살균제 원료(PHMG·PGH·CMIT/MIT)를 생산한 원료물질 사업자인 SK케미칼이 250억원,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살균제사업자들이 1000억원으로 총 1250억원을 우선 조성키로 하고 생산량과 판매량 등을 고려해 업체별 분담금 규모를 조정 중이다. 

가습기살균제특별법 제35조에 따른 분담금 계산 [출처=법제처]

 

문제는 SK케미칼이 법적으로 원료물질 사업자이면서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SK케미칼은 250억원을 납부하는 동시에 1000억원 중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 

특히 살균제 사업자의 경우 분담금액이 가습기살균제 사용비율과 판매량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이에 따라 SK케미칼 분담금이 수백억원대로 높아질 수 있다.  

앞서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은 처음 ‘가습기메이트’를 만들어 판매하다가, 2002년에 판매권을 애경에 넘겼고, 이후 애경 이름을 달고 10년간 165만3000개가 팔렸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연도별 판매량에 따르면 유공의 가습기메이트는 약 60만~70만개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법에서는 같은 가습기살균제에 대하여 복수의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있는 경우에는 공동으로 분담금을 납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만약 SK케미칼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로 본다면 유공 제품에 대한 온전한 사업자인 동시에, 애경과는 공동사업자가 된다. 따라서 총 720만개의 가습기살균제 판매량 중에서 약 150만개 분담금인 200억 원 가량을 더 부담해야 한다. 

아울러 특허청에 따르면 가습기메이트의 상표권은 SK케미칼이 갖고 있어 분담금은 더 커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상표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피해 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조대진 법무법인 동안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PB상품의 경우 상표권을 유통·판매업체에서 갖고 있어 대부분 책임도 유통업체에 있다. 다만 제조업체에서 상표권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는데, 건강상품이나 화학약품으로 제조물책임이 발생될 수 있는 경우다. 특히 살균제 같은 경우는 제품의 특허,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라 상표권을 SK케미칼이 가지도록 계약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분담금 조정을 담당하는 환경부의 시각은 어떨까.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 관계자는 “SK케미칼은 원료물질·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둘 다에 해당한다”며 “애경의 경우도 디자인만을 담당했다 하더라도 PB상품 제작을 요구한 원청사업자가 되기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SK케미칼과 논의 결과 두 부분에 모두 포함하기로 했으며 SK케미칼도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SK케미칼은 "현재 환경부와 사업자간 분담금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애경은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면서도 “물론 판매자로서 분담금을 낼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 천명의 국민이 피해를 본 상황에서 누가 더 배상액을 많이 내느냐의 문제를 논하는 게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제조사들 입장에선 피해 책임이 나눠지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면서 "법 제정 당시에 정확한 규정이 없었던 게 아쉽다"고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달 9일까지 1131명, 피해신고자는 5432명으로 집계됐다. 잠재적 피해자만 29만~226만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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