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uwon Jen 유튜브

지난 7일 광화문에서 분신한 정원(64) 스님이 9일 저녁 사고 이틀만에 사망했다.

정원 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40분쯤 서울대병원에서 화상으로 인한 다장기부전으로 결국 정원스님은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원 스님은 7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끝난 오후 10시 30분쯤 경복궁 앞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몸에 휘발성 액체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분신 현장에서 발견된 스케치북에는 “나의 죽음은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는 글이 남겨졌다.

또 이날 오후 8시 SNS를 통해 "벗들이여 그동안 행복했소. 고마웠소. 고마운 마음 개별적으로 하지 못하오. 사랑하오. 민중이 승리하는,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가 바로 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정원스님의 입적 직후 비대위는 “소신공양으로 매국노 집단이 일어나는 기회를 끊고 촛불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스님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역시 “오직 ‘민중의 승리’만을 바랐던 고인의 뜻이 큰 울림이 돼 특권과 반칙의 세상을 뒤흔들 수 있도록 촛불의 바다는 민중의 승리를 일구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원스님은 1977년 해인사로 출가해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는 불교탄압 공동대책위 일원으로 활동했고 1987년 6월 항쟁에도 참여했다.

이후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 2008년 광우병 수입쇠고기 반대 투쟁,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의 사회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한편 온라인 상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한 정원 스님은 과거 베트남 독재정권에 항거해 소신공양했던 틱광둑 스님과 비교되고 있다.

1963년 6월11일, 베트남 불교계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56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고딘 디엠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교탄압에 나서자 스님들이 길거리에 나서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규탄했다.

그러자 디엠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이들을 진압하면서 수십여 명의 스님들이 숨지거나 다쳤고, 많은 스님들이 연행돼 감옥에 갇혔다.

결국 틱광둑 스님은 베트남 불교를 위해 소신공양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분신 전날 상좌들을 모아 놓고 “내가 만약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그 때는 모두들 희망을 버려라. 그러나 뒤로 쓰러진다면 결국 우리가 승리해 평화를 맞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음날, 틱광둑 스님은 도로 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은 후 머리 위로 휘발유가 부어 성냥불을 켰고, 불길이 스님의 법구 전체로 번져나갔지만 스님은 꼼짝하지 않았다.

스님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허리를 곧추세워 가부좌를 풀지 않았고, 10분 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후 반정부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 소신공양을 하는 스님들이 줄을 이었고, 시민과 학생, 공무원들도 반정부 시위에 가세했다.

미국도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고, 반미감정의 확산을 우려해 지지를 철회하고 나서면서 디엠 정권은 결국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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