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에 걸친 주민의견 수렴으로 신뢰 구축해야"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의당 생태에너지부와 노회찬 의원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 주최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 및 관리절차에 관한 정부법안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노회찬 의원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방침이 문제투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 선진국이 개발, 추진중인 고준위핵폐기물 최종 부지 선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를 인정받은 '발틱 모형'이 주목받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우라늄 광석으로 채굴된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남은 방사성물질로 취급이 까다로운 방사성 덩어리로 알려져 있다. 주민들의 생활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민감한 사안이지만 정부 법안의 폐기물 처리 부지 선정과정에서 지역주민 의견반영 과정이 누락돼 반발이 일고 있다.

국회에서 지난 28일 정의당 생태에너지부와 노회찬 의원실, 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공동 주최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 및 절차에 관한 정부 법안의 문제점과 대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발제에 나선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방사성 폐기물 부지 선정 과정의 민주적 관리체계로 '발틱 모형'을 제시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사용후 핵폐기물 관리방안으로 '심지층처분(Deep Giological Disposal)'을 개발, 추진중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분부지 선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민주성을 인정받았는데 이를 '발틱 모형'이라고 한다.

스웨덴은 현재 9기의 원전이 전체 전력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핵폐기물 관리업체인 SKB는 1991년부터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 선정과정에서 주민수용성을 원칙으로 유치지역 대상 타당성 조사에 나섰다.

SKB는 지정학적 부적합지와 주민 거부 지역을 원천 제외하고 외스탐마르, 오스카르샴 등 두 지역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두 지역은 부지 조사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참여 비용은 핵폐기물기금으로부터 지불할 것과 SKB 및 각종 규제기관들이 지역 부지사가 의장이 되는 환경영향평가포럼에 참여할 것을 제시했다.

환경영향평가포럼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었던 배경은 1999년 통과된 스웨덴의 환경법에 있었다. 해당법상 환경영향평가 규정에 따라 사업자는 부지 조사과정에서 향후 건설될 핵폐기물 처분장 시설의 환경·보건·사회적 영향을 파악하고, 결과에 대해 환경법정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핀란드는 현재 총 5기의 원전이 전체 전력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원전은 2개의 기업(Fortum, TVO)이 소유, 운영중이다.

핀란드는 1994년 핵에너지법 개정안에 따라 자국에서 만들어진 핵폐기물은 자국내에서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최종 승인은 고용경제부에 있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핵규제위원회(STUK)의 기술적 평가 의견을 받아야 한다.

핀란드는 최종처분장 부지선정을 위해 1997~1999년까지 4개 후보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고 2000년 최종처분장으로 올킬루오토(Olkiluoto)를 선정했다. 2004년에는 최종처분장 연구시설인 온칼로(Onkalo)를 건설, 2015년 최종처분장 건설 승인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지질학적 요인 뿐만 아니라 주민수용성이 반영됐다. 당초 지역의회의 반대가 있었지만 세금 등 경제적 혜택과 주민 참여 보장 약속으로 의회를 설득했다. 또 환경영향평과와 함께 주민 설명회, 공청회가 수 차례 실시됐고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의 의견 수렴도 이뤄졌다.

두 나라는 모두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선정까지 약 20여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규제기관과 환경영향평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환경영향평가법으로 주민참여가 보장됐고 해당 지역의회의 거부권도 인정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 NEA(원자력기구)는 2011년 발틱 모형이 기술적 건전성 뿐만 아니라 절차적 공정성의 중요성, 주민들에게 정보와 자료에 대한 접근권을 비롯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점, 환경영향평가 실행 그룹의 독립성, 사회적·기술적 이슈를 망라한 진정한 공공 참여의 추구 등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특히 NGO재정지원으로 사업자와 당국자간 대화를 촉진했고,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규제기관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등 이해관계자간의 신뢰가 구축된 점이 발틱 모형의 성공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발틱 모형에 비춰볼 때 국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법에 기본계획 상 부지선정 소요기간 12년이 과연 적절한지, 국제공동저장·처분시설의 윤리적 문제, 부지선정과정에서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역할이 없다는 점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와 관련, 주민의견수렴 조항이 있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고 주민의견 수렴이나 주민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유치지역에 지원을 한다며 경제적 유인책으로 부지선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이달 초 국무회의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이번 법안은 주민투표 등 지역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누락돼 반발이 일고 있다.

또 고준위 방사선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절차 외에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 내용이 담겨 민감한 사안인 부지선정을 소통이 아닌 재정지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도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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