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여전한 정부의 개발지상주의

따지고 보면 언론 뿐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서도 생태계에 대한 장기적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 거대 포유류의 복원에만 뭉칫돈을 쏟아 붓고 있다. 5년 전 제주도가 관리·운영하고 있는 한라산연구소를 취재했을 때 연구위원들이 구상나무 군락의 정상부로의 후퇴에 대해 “장기적 모니터링을 할 자원도, 의지도 없는 실정”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 등 연구기관들은 그래도 자금이나 인력사정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도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수년간 추적조사가 필요한 연구과제에는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포천 국립수목원

자연과 자연정책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 태도는 자연을 보전하는데 돈을 들이는 것은 낭비라고 하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자연보전국의 지나해 예산은 4176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약 8%에 불과하다. 예산 사용내역을 보면 국립공원관리공단 출연금이 14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주로 인건비로 충당된다.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건립비용이 540억원, 경북 상주의 낙동강생물자원관 건립비 300억원 등이 책정됐다. 정작 전국 생태계조사와 모니터링, 자연 복원, 대체습지 조성 등 직접 자연보호에 들어가는 돈은 그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국립생태원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자연보전국 본연의 업무인 국토와 생태계보전 사업에 투입하는 돈이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국립공원은 1988년 이후 23년째 추가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 추가지정은커녕 지난해말 구역조정을 통해 주요 계곡의 집단시설지구 등을 대거 공원구역에서 해제함으로써 공원전체 면적이 북한산 국립공원(79㎢)만큼 줄었다. 환경부 관계자들은 국립공원내 사유지를 단계적으로 국가가 매입하는 게 옳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예산 따내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고위 공무원과 직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주민 민원이 귀찮다고 해서 보존가치가 높은 계곡을 주변 숲과 분리해 공원구역에서 해제하는 것은 연결된 생태계 개념을 무시하는 것이다.

최근 인천시와 수자원공사, 한국전력 발전회사들이 서해안 곳곳에 조력발전소를 건립하려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천만 조력발전소는 남아 있는 갯벌 가운데 가장 큰 강화갯벌을 위협하고 있다, 강화도민 상당수와 지역 환경단체는 강화갯벌을 갯벌국립공원으로 지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시화호 조력발전소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림이라고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지금 산림은 국토의 64%로 줄었다. 습지는 더 비참하다. 지난 100년간 서해안 해안선의 40%가 사라졌다. 서해안 갯벌 면적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더 많은 곳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람사르습지로 지정하기만 하면 보전이 저절로 되는 것인가.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습지에 대한 대체습지 조성이 제대로 이뤄지는가.


Ⅳ. 종 다양성의 보고, 산림 생태계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앤드루 비티와 폴 에얼릭이 쓴 ‘자연의 해법: 생물다양성은 어떻게 은행에 맡겨 둔 돈이 되는가’(역서명 ‘자연은 알고 있다’)에는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종 다양성을 인류가 의약품과 식품, 농업과 해충방제, 조림산업 등에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가 상술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열대우림에 사는 식물을 연구하는 한 방법이다. 토착민들이 그 식물을 어떻게 이용하는 지 조사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식물의 용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토착민과 협정을 맺고 조사구역 1헥타르를 설정해 토착민들이 각각의 나무를 어떻게 이용하는 지를 묻는다. 그 결과 삼림의 주요 용도는 목재 생산이라는 일반적 생각과 달리 의약품이나 사냥용 독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 부족들의 경우 연구 구역 1헥타르당 서식하는 식물종이 70~119가지이며 토착민들은 이 가운데 49~79%를 어떤 목적으로든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용식물에 대한 토착민들의 지식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현대 의학이나 약학은 아직 이런 전래의 지식을 다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산림이 제공하는 식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구석기시대, 특히 전기구석기시대의 인류가 농경시대나 심지어 지금의 인류보다 훨씬 더 건강했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 유골 분석을 통해 구석기시대 수렵·채취인들의 이빨 상태가 초기 농경인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등의 증거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구석기시대 유럽 남부의 현생인류는신장도 지금의 인류보다 더 컸다고 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신디 엥겔은 저서 ‘살아있는 야생(원제:Wild Health)'에서 구석기시대 인류가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먹었기 때문에 암과 심장병, 당뇨병,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구석기시대의 인류는 침팬지나 고릴라가 먹는 것과 비슷한 음식을 먹었다. 과실, 견과류, 씨앗, 채소, 곤충, 포화지방이 적은 고기 등이 그것이다. … 더 중요한 사실은 당시 인류가 침팬지나 고릴라와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한 종류의 식물, 1년에 약 100~300종류의 식물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필수 비타민과 미네랄은 물론 귀중한 식물의 부차적 화학물질을 얻었을 것이다. 초기인류는 하루에 100그램 이상의 섬유질을 섭취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섬유질 하루 권장량 30그램도 미처 다 먹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의약품 원료와 다양한 건강식품의 대부분이 산림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가 내륙습지와 해안습지 및 연안바다에 있다. 산림이 그런 실용적 용도에 기여하려면 종 다양성이 보전돼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산림정책의 우선적 목표는 기후변화 적응과 종 다양성 보전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건강한 산림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각종 개발계획에 이런 목표를 미리 반영하고, 과도한 개발을 견제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야생 동식물의 영향과 적응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자생지외 보전과 복원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국립수목원은 강원도 고산지대에 사는 만병초 등 기후변화 취약종 100종을 선정, 연차적으로 광릉숲에 옮겨 증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Ⅴ, 사람의 관점, 야생 동식물의 눈높이

중요한 것은 의약품 원료나 식품 등 상업적 활용에 앞서 사람의 관점이 아닌 동식물의 관점에서 산림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원시림의 토착민이 축적한 동식물에 관한 지혜가 어떻게 획득됐는지를 생각해 보자. 야생동식물에 대한 정확하고 생생한 관찰과 지식은 부족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동식물은 그 이전에 원초적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산림의 지속가능한 산업적 활용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역량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국토의 무분별한 개발 압력에 제동을 걸어 사라져가는 다양한 생물종을 효과적으로 보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종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신약 원료의 개발도, 건강식품의 발견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생태계와 종 다양성을 다루는 언론의 시각에서 가장 부족한 것도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넘어서는 야생동물의 눈높이와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시각이다.



장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지덕(至德)의 시대에는…산에는 지름길이나 굴이 없었고, 못에는 배나 다리가 없었다. …금수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초목이 마음껏 자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짐승들을 끈으로 묶어서 끌고 다니며 놀 수 있었고, 새 둥지를 끌어당겨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착취가 없었던 시절로 되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신화 속의 ‘황금시대’는커녕 자연환경이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전기구석기시대로 되돌아가는 것도 인류가 한번 멸망하고 난 다음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수렵채취인의 정신과 생활방식을 따르려는 노력이 적어도 일정 부문에서 필요하다. 예컨대 현대의 온갖 다이어트 기법도 자연에서 직접 음식을 구하는 생활방식보다 살 빼기에 더 효율적일 수는 없다. 생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에드워드 O. 윌슨은 모든 어린이가 초보 탐험가 겸 자연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는 “수렵자, 채취자, 정찰병, 보물 추적자, 지리학자, 신세계 발견자 등 모든 것이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다”고 말했다. 자연주의자는 속성상 무엇보다도 수렵·채취인이다.

임항 기자

news@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