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제대로 외워 칠 수 있는 곡 하나 없었다. 어머니께서 "어설프게 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말씀하셨다. 얼마 뒤 태권도 학원에 등록했다. ‘어설프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흰 띠에서 품 띠까지 올라갔다. 대회도 나가 상도 탔다. 그때 느꼈다.

"어설프게 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최근 한 공기업의 보도자료가 피아노 학원을 나와 태권도 학원에 다니면서 느꼈던 그때 그 느낌을 떠오르게 했다. 지난 11일자 자료였다. 내용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국립공원 내 '거목(Big tree)'에 대한 전수 조사를 끝냈다는 것.  

전수조사 결과 지리산에는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인 구상나무·주목·사스래나무 등 아고산대 수종을 포함해 숲의 건강성과 생태계 천이과정을 진단할 수 있는 극상림의 서어나무까지 총 45종 213그루의 거목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은 이중 보전가치가 높은 30그루를 선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탐방로 주변에 위치한 거목을 연결하는 탐방코스를 만들고 연계 해설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지리산국립공원을 찾는 국민이 거목을 통해 자연 생태계를 이해하고 자연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49년 만에 실시한 첫 거목 전수조사.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지리산의 생태적 가치 조명을 위한 전수조사의 취지는 좋다. 하지만 보호를 하겠다는 건지 탐방객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건지 목적이 불분명하다. 탐방코스 설치 계획 때문이다. 

거목과 연계된 탐방코스가 설치될 경우 나무는 사람의 발길로 인한 훼손 및 압력을 받게 되고 성장이나 생존에 영향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거목에서 나오던 양분을 먹고 살던 곤충, 버섯 등도 생존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남석훈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장은 전수조사를 끝내며 "지리산은 생태적 보전가치가 매우 뛰어난 곳이다"며 "100년 뒤에도 지리산을 찾는 우리 후손들에게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 그대로 물려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거목(Big Tree)은 참나무류(신갈나무, 굴참나무 등)의 경우 사람 가슴높이에서 측정한 나무의 지름인 흉고직경이 60cm이상, 침엽수류(구상나무, 주목 등)는 흉고직경 40cm이상, 관목류(철쭉, 진달래 등)는 흉고직경 15cm 이상, 교목류(노각나무, 때죽나무 등)는 흉고직경 40cm 이상이 되는 나무를 말한다. 

지리산국립공원 438.9㎢를 통틀어 거목의 기준을 충족하는 나무가 200여 그루에 불과하다. 8·15해방부터 6·25전쟁을 거치면서 삼림에 큰 피해를 입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1960~1970년대 정부에서 산림보호 일환으로 대대적인 거목 벌목 작업을 벌인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단은 지리산 거목 연계 탐방코스 조성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 남 과장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지리산의 경이로운 모습을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우리나라 명산이자 국립공원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지리산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bakjunyoung@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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