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700명 사망..."여태 뭐하다가 이제서야"

조경규 환경부장관(우측)이 5일 환경보건센터를 찾아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조경규 환경부장관이 취임과 함께 최우선 현안과제로 가습기살균제 사건 후속조치를 지목했지만 ‘때늦은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2011년 정부 발표 이후 올해 6월까지 4년 10개월 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사람이 700여명에 이른다. 주무부서인 환경부가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올 때까지 수 년 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장관이 새로 오고 나서야 ‘생색내기’ 행정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조 장관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면담을 갖고 건의사항을 직접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은 이날 폐 이외 질환에 대한 판정기준 마련과 신속한 조사·판정을 위한 조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촉발한 유해화학물질인 CMIT/MIT 피해 메카니즘 규명, 피해자 지원을 위한 서비스 개선 등의 노력을 펼쳐가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 측에서 수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피해자의 신속 구제를 위한 선결과제인 조사판정 참여병원의 확대는 이달 중에야 추진된다.

환경부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4차 피해신청자들의 조속한 판정을 위해 참여병원을 기존 서울아산병원 1곳에서 11개 병원으로 늘려 이달 중 계약체결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서 8일 새로이 참여하는 병원들이 판정에서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사·판정 프로토콜 공유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덧붙였다.

그간 참여병원을 확대해달라는 요청은 줄기차게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환경부는 “조사판정 기준이 각 병원마다 다르면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의사를 명확히 했다. 하루 세미나로 해결되는 참여병원 확대를 미뤄오는 동안 판정을 기다리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조사판정 기준을 통일시키는 작업이 귀찮아 참여병원 확대를 미뤄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이 지난 5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16 가습기살균제피해자 및 가족모임 법인창립총회'에서 특별법 재정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2010년 정부 발표가 나온 이후 올해 6월30일까지 약 5년 동안 701명에 달한다.[사진=포커스뉴스]

 


환경보건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제19차 위원회에서 1,2단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37명을 추가로 인정했지만 37명 가운데 17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장례비만 지원된다.

이마저도 3차로 접수한 피해 신청자 752명 가운데 165명에 대해서만 판정결과를 심의 확정한 결과다.  

이렇듯 피해 접수자는 수백명에 이르지만 피해확정자 수는 수십명에 그치는 것은 조사판정 병원이 1곳이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때문에 올해 4월부터 받기 시작한 4차 피해 접수자가 3662명(8월2일)에 이르는 상황인데도 3차 조사판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내년 말로 잡힌 것이다. 

가피모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잠재적 피해자는 29만명에서 227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정부에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피해자를 찾는 특별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5년 전 전국 이마트 144개 지점에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과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구입한 사람이 9만1466명”이라며 잠재적 피해자가 9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수백명이었던 피해신청 접수자가 수천명으로 늘고 최대 수백만명에 이르는 잠재적 피해수치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통합적인 전담 피해지원 기구조차도 전무한 실정이다.

환경부는 조 장관 취임 직전인 올해 8월에서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내 ‘가습기살균제 피해 지원센터’를 설치했다. 

그러나 센터에는 박준철 센터장을 포함해 현재 10명이 근무중으로 수천, 수만명에 달하는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을 감당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조 장관이 방문한 9일 상담전문인력 6명의 추가 채용 계획을 밝히고 거동 불편자를 위한 방문접수상담과 의료기관 영수증 발급 대행을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 발굴에도 집중한다며 방송 및 옥외 광고 등 다양한 매체와 반상회보 안내문 등에 피해자를 찾는 홍보를  계속한다고 밝혔다.

추가 채용인원까지 모두 16명의 인력이 수백~수천명의 피해자 및 피해접수자를 지원하고 수백만명의 잠재적 피해자까지 찾아나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조 장관의 가습기살균제 후속 조치를 위한 행보는 말만 있고 실체는 없는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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