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메이트 사용"...SK케미칼, 정부 '1차 판정' 핑계로 '나몰라라'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모씨(여)가 올해 10살이 된 아들의 코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 것은 지난해 8월,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오른쪽 코 안쪽에서 이상현상을 발견했다. (환경TV는 이씨의 요청으로 본인과 아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건 처음봤습니다. 큰 병원에 가보세요." 치과의사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이씨는 곧바로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찾아간 대형 병원에서 판정한 이씨 아들의 병명은 '섬유성 골형성 이상증(코 섬유화)'. 질병으로 인해 코 안쪽 점막의 조직이 변하는 증세를 보이는 병이다.

이 병 때문에 이씨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얼굴 변형이 오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밤마다 우리 아이 얼굴을 보며 '이 얼굴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내일이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4월12일 촬영한 이씨 아들의 CT 사진. 오른쪽 코(CT로는 왼쪽) 부분에 하얀 부분이 질병으로 인해 발생한 부분. 출처=피해자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코에 발생한 섬유화 증상이 지속되면 실명과 뇌 손상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게 병원의 진단. 

이씨는 "너무너무 무섭다. 그런데 그걸 제 아이는 모르고 있다"며 "의사랑 얘기할 때 얼굴 변형 때문에 수술 정도를 할 수 있다고 정도만 아이가 들었는데, 병원을 나오면서 사정하더라. 너무 무서워서 수술하기 싫다고..."라고 울먹였다.  

이씨는 아이의 병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으로 보고 있다. 2009년 초부터 2010년 11월까지 방안에서 이씨가 사용한 가습기 메이트가 이런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 SK케미칼에서 만들고 애경이 판매한 바로 그 제품이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이씨 자신도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먹어야만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잘 다니던 직장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됐다. 기초수급자 신세가 됐지만 젊다는 이유로 지원금 한 푼 받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지난해 8월부터는 코 섬유화 증세 때문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은 커녕 SK케미칼 등 제품 판매·유통 기업에서도 무시 당하기 일쑤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행한 가습기살균제 1차 피해 접수를 통해 4등급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폐 섬유화 등 폐쪽 질환이 아니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이씨와 어린 아이는 '가능성 거의 없음' 낙인이 찍혔다.

이씨는 "3·4등급을 받은 이들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피해가 있으니 '피해자'라고만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런 억울함을 정부가 만들어 놓으니 가해 기업도 피해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SK케미칼에서 제조하고 애경에서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 (자료화면)

 



SK케미칼 법무팀, CMIT/MIT 수돗물보다 안전하다 주장해

SK케미칼에서 제조한 가습기메이트의 주 성분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라는 성분이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가 원인 모를 폐 질환을 유발했다고 밝힐 당시만 해도 이 물질은 동물 실험에서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정부의 1·2차 가습기살균제 조사·판정에서 해당 물질이 원료인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이들 중에서도 3명이 피해자로 판정을 받았다. 폐 질환이 유발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판정'이 이씨 같은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자들을 SK케미칼과 같은 제조·판매 기업 측에서 외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부분이다.

이씨와 SK케미칼 법무팀의 대화를 들어 보면 이같은 상황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SK케미칼 법무팀 관계자는 이씨와의 통화에서 "CMIT/MIT 같은 경우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동물흡입 독성실험을 한 결과 인과관계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자사 제조 제품의 잘못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판정을 받았냐"라든지 "비염이라든지 천식의 원인이 환경이나 가족력, 다른 화학물질 때문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울러 "정부 조사에서도 저희 제품이 문제된다는 것이 밝혀진 바 없다"고도 못박았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만을 사용한 피해자 3명에게 '피해 인정' 판정을 내렸다. 또한 환경부는 지난 4월29일부터는 비염과 기관지염 등 경미한 피해도 가습기살균제와 연관이 있는 지 조사 작업에 들어갔다.

CMIT/MIT 기반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한 환경부의 입장. 출처=환경부.

 


게다가 SK케미칼 법무팀은 CMIT/MIT가 수돗물 속 '염소'보다 안전하다는 해석도 내놨다.

SK케미칼 법무팀 관계자는 "염소가 오히려 CMIT/MIT보다 흡입 독성이 있다"며 "CMIT/MIT에 대해서도 우리는 안전하다고 확인되는 흡입독성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그 농도 이하로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로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이씨에게 반박했다.

환경TV는 미국 환경청(EPA)에서 입수한 보고서를 통해 CMIT/MIT 성분이 농약 등에 사용되는 물질이라는 점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수돗물과 비교하더라도 흡입 시 안전한 농약 성분이 법무팀이 얘기한 CMIT/MIT의 정체다.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이에 대해 "농약을 100배 희석한 것을 사람이 코를 통해 흡입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배제된 CMIT/MIT 기반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원인 파악 및 사건 해결의 중심 축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지난 7일부터 오는 10월4일까지 90일간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일 계획이다.

우원식 특조위원장은 "성역 없이 조사하겠다"라는 입장을 통해 SK케미칼을 비롯한 기업 조사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8월31일 모 대학병원에서 진단한 이씨 아들 병변에 대한 진단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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