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베테랑 소방관, 직감적으로 큰 화재라고 느껴...

지난 9일 인천시 논현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한 황정선 대원. 출처=서울시

 


“소방관으로 20여 년을 일 해왔습니다. 경험으로 알 수 있었죠. 벨트 메는 것을 깜빡해 바지가 흘러내리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머릿속에는 온통 화재를 진압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1993년 입사해 23년 동안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서울 강서소방서 황정선(49) 대원. 

지난 9일 오후 9시7분쯤 인천시 논현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황 대원은 우연히 내다본 창밖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근에 있던 상가 건물 7층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 커다란 불꽃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큰 화재라고 느낀 그는 장롱 문을 열어 겨울용 기동복을 입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황 대원의 집으로부터 화재 현장까지는 216m. 현장에는 인천 공단소방서 논현199안전센터가 도착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수관을 전개하고 있었다. 황 대원은 다급히 발화 지점을 확인한 뒤 인근 건물 7층으로 올라갔다. 황 대원이 올라간 건물 8~9층엔 요양원으로, 어르신 38명이 있었다. 

황 대원은 옥내 소화전에서 호스를 끌어내 건물 난간에 올라가 불길을 향해 물을 쐈고, 출동 소방관과 함께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요양원 관계자 김모씨(50)은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뻔 했는데, 소방관들이 침착하고 신속하게 대응해 한 명의 인명피해 없이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대원의 활약상은 화재현장에 함께 있었던 인천 공단소방서 박청순 현장대응단장이 서울 강서소방서의 김시옥 현장대응단장에게 감사의 전화를 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다음은 황 대원과 일문일답.

지난 9일 황정선 대원은 자신의 집에서 인근 건물에 화재가 난 것을 목격했다. 출처=서울시

 


▲ 화재 발생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화재가 발생한 날은 비번일이었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우지직’ 소리가 났다. 처음엔 인근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난 소리인 줄 알았는데, 창문 밖을 보니 빨간 불길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했다. ‘나가봐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화재 발생 건물과 216m 떨어져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장롱을 열어 겨울용 기동복을 입고 현장으로 뛰어갔다. 


▲ 현장에 도착한 뒤 어떻게 대응했는가?

정신없이 나와 벨트도 챙기지 못해 바지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도 몰랐다. 현장에 도착하니 선착대가 도착해있었다. 정신없는 상황 속 그들에게 장비를 달라 말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옆 건물로 7층으로 올라가 옥내소화전을 찾았다. 건물 관계자에게 소화전 밸브를 열어달라고 한 뒤 발화 지점을 향해 계속해서 물을 뿌렸다. 


▲ 베테랑 소방관의 시각에서 이번 화재가 난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좀 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화재가 발생했던 그 건물만 유독 연소 확대가 심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건축물 구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건물을 지을 때 에어컨 실외기가 놓아질 부분을 콘크리트로 작업해야 한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에어컨 실외기 바닥이 철망으로 돼 있어 연소 확대가 다른 건물보다 빨리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 집에서 갑자기 뛰쳐나가 화재를 진압했는데,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았나?

밤 11시쯤 화재를 진압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내게 ‘몸 다치면 어쩌려고 장비도 없이 갔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내 몸이 저절로 가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내 머릿속에는 누구를 조금이라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실제로 불이 나면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경험상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몸이 자연스럽게 화재 현장으로 갔던 것 같다.


▲ 소방관으로서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소방관의 처우와 관련해서는 바라는 것 하나 없다. 하지만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길을 비켜주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소방차 사이렌이 도로 위에 퍼지면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또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골목길 주차도 피해줬으면 좋겠다. 시민들의 작은 도움이 우리 소방관들에겐 큰 힘이 될 수 있다. 

bakjunyoung@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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