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홍종선 기자]

 


돌림병처럼 퍼지는 연쇄살인으로 발칵 뒤집힌 마을. 살인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알 수 없이 퍼지는 피부병. 동네 형사 종구(곽도원 분)는 딸 효진(김환희 분)이 시름시름 앓자 불안감에 떨다 못해 광기를 띤다. 딸을 돕겠다고 나선 박수무당 일광(황정민 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무명(천우희 분), 모든 사건의 발단으로 지목되는 외지인(쿠니무라 준),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얘기 중 내 딸을 살릴 진실은 무엇인가. 누구를 믿어야할지, 어느 말이 진실인가에 대한 질문은 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주로 이분법으로 대립한다. 화자가 하나 추가됐을 뿐인데 그들의 조합 가능성에 따라 진실의 확률은 2분의 1에서 6분의 1, 7분의 1로 혹은 그 이상으로 희박해만 간다. 딸의 목숨이 제게 달린 종구의 광기는 그에 반비례해 거세게 폭발할 수밖에 없다.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제작 사이드미러 폭스인터내셔널프러덕션·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에서 효진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는 곽도원이다. 영화를 첫 번째로 관람하던 중, 종구 역에 배우 김윤석을 대입해 상상해 본 적 있다. 영화 전체를 듬직하게 등에 지고 이끌어갈 배우라면 연기의 마스터로 평가받는 김윤석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게으르고 천하태평에 덩치는 곰만 하면서 간은 콩알만 한 동네경찰 종구는 곽도원에게 꼭 맞는 배역임을 곽도원은 스크린 위에 증명해 보였고 계속해서 영화에, 곽도원에 집중했다.

실토하건데, 곽도원에 대해 훌륭한 조연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곽도원이 연기를 잘한다는 사실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주연이라는 위치는 배우가 자신이 지닌 연기력에 더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때 도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타짜’의 아귀, 김윤석이 혜성처럼 나타나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해 보인 것을 목격하고도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곡성’을 보며, 곽도원이 준비된 주연감임을 실감했다. 아직 충분하게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가 스스로 주연급으로 성장했다는 것에 경탄했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19일 오전 11시(이하 프랑스 현지 시작), 제69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인 칸 해변에 위치한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만난 곽도원에게 편견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서운한 기색 없이 환하게 웃었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극찬”이라고 감사했다.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아니지만, 연예인인 것도 아니었지만, 계속 ‘상’을 받아오고 있었어요(웃음). 영화제에서의 상도 중요하지만 제게는 관객의 박수와 칭찬이 큰 상입니다. 연극을 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커튼콜 때 박수소리가 배우마다 달라요. 제게 주시는 박수가 크면 큰 상 받은 것 같고 제 소리가 작다, 그런 날엔 정말 죽을 것 같죠. 영화를 하게 된 건, 차라리 한 작품 연기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죽어라 하고 개봉 후 한꺼번에 박수는 혹평이든 받는 게 견디기 낫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누구야? 진짜 검사야?’(영화 ‘황해’) 소리를 들었을 땐 날아갈 것 같았죠. ‘잘한다’ ‘진짜 같다’ 칭찬을 받으면 다시 다음 작품을 할 힘이 생기지요. 연기에는 답이 없는데 진짜 같다고 해 주시면 제가 한 게 답이 되는 거잖아요. 길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관객 여러분의 칭찬은 제게 (길을 안내해 주는) 빛인 거지요.”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스스로 큰 게 아니라고, 관객의 박수와 칭찬을 등불 삼아 주연급으로 성장했다는 곽도원에게 칸은 어떤 의미일까.

“별책부록 사은품 같은 거예요, 본책은 아니지만 소중한. 나이를 먹을수록 자극받기가 쉽지 않아요.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은 커지는데 스스로 지적하고 반성하고…, 되돌아본다는 게 쉽지 않아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영화를 가져왔는데 세계 각국 사람들이 영화를 환영해 주고 냉철하게 분석해 준다니 너무 좋아요. 곽도원 연기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 됐어요. ‘곡성’을 한국에서 6번 보고 이번이 7번째인데, 새로운 부족함이 또 보여요. 이번에는 나홍진 감독이 치열하게 그린 큰 그림에서 열심히 뛰었는데 다음에는 내가 악착같아 져야겠구나, 내가 더 악착같이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첫 주연작 ‘곡성’ 이전에 이미 주연감 배우였다는 게 미처 몰랐던 첫 번째 곾도원의 면모다. 악착같은 노력과 냉철한 자기반성이 그 제조법이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두 번째 미처 몰랐던 곽도원의 면모는 자상한 남자라는 점이다. 곽도원은 ‘곡성’에서 아내로 호흡을 맞춘 배우 장소연과 공개 열애 중이다. 곽도원은 지난 18일 뤼미에르대극장 공식상영에 앞서 연인인 장소연에게 나란히 레드카펫을 밟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우리의 연애가 영화보다 부각돼서는 안 된다는 것, 영화 속 부부가 실제 커플이라 해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서는 레드카펫의 문법에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것 등에 얘기했다. 현명한 여자 장소연은 기꺼이 수긍했다.

따뜻한 연인 곽도원은 결국 장소연을 공식상영관의 스크린에 등장케 했다. 나홍진 감독과 주연배우, 제작진이 충분히 박수를 받았다고 생각한 순간 관람석 뒷줄에 앉은 장소연의 손을 당겼고 어깨를 두드렸다. 연인인 줄 모르는 관객들도 영화 속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 조연에게 박수를 나누는 주연의 배려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장도연의 현명함은 한 번 더 빛났다. 연인 곽도원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곧바로 한 발 물러서 다시금 기립박수가 감독과 주연배우를 향하도록 했다.

곽도원의 장소연 사랑은 이뿐이 아니었다. 19일 인터뷰 때 곽도원이 밝힌 이야기인데 스크린에 종구 부부의 모습이 나오면 뒷줄의 장소연에게 팔을 뻗어 손을 잡고 봤단다. 그야말로 닭살 돋는 행각이지만 밉기는커녕 부럽기 그지없는 건 곽-장 커플의 부부연기가 자연스럽고 좋아서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미처 몰랐던 곽도원에 관한 세 번째 사실은 그도 연예인이었다는 것이다. 열정적 에너지를 내뿜는 곽도원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들은 너나없이 칸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연기는 잘하지만 외모는…, 이라고 생각했던 게 기자치고는 참으로 무딘 눈썰미구나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곽도원과 투샷을 찍은 기자들 중 몇몇이 ‘인생 사진’(사진이 매우 흡족스럽다는 뜻을 인생 최고의 사진이라는 말에 담은 것)을 건졌다.

호쾌한 미소와 다부진 체격의 곽도원이 프레임 안에 위치하자 사진이 환해졌다. 곽도원에게는 자신만 빛나거나 옆 사람에게 굴욕을 주는 독불장군 식 스타성이 아니라 서로를 함께 빛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별이 홀로 빛나지 않고 밤하늘을 밝히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듯이 말이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개봉 열흘 만에 400만, 무서운 속도로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는 ‘곡성’의 주인공 곽도원, 갈고 닦아온 연기력에 대중의 사랑이 더해져 배우 곽도원의 가능성이 폭발할 영화 ‘특별시민’이 기다려진다. 곽도원은 20일, 일정을 마치자마자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최)민식이 형님을 기다리시게 할 수는 없지, 얼른 가야죠. ‘곡성’으로 사랑받는 순간에 다음 작품을 연기할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어딨어요. 달릴 수 있을 때 열심히 달리겠습니다.아, 비행기가 아침에 도착해요? 어휴, 바로 촬영장으로 가야겠네요.”

귀여운 앙탈에 즐거운 비명이 섞인다. 오랜 시간 자신을 연마하며 늘 대기 상태였던 곽도원의 진지함, 내 연인을 과하지 않되 살뜰히 챙기는 자상함, 어느새 주변사람까지 빛나게 하는 스타성에 이어 그 이상으로 기억에 남을 귀여움이 곽도원의 네 번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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