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자라면 9m 이상의 몸 길이에 몸무게가 최대 14톤까지 나가는 대형 동물이 있다. 바다를 주름잡는 '밍크고래' 얘기다.

이렇게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지만, 인간에 비해 암이 걸릴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다. 

암이 세포 분열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 세포에 의해 발생한다는 의학적 상식에 기초한다면 세포 수가 많은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암에 더 잘 걸려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위 '페토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정답은 '유전자' 속에 있었다. 국내 연구진의 조사 결과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는 덩치가 더 큰 동물일수록 오히려 적었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진이 밍크고래와 코끼리, 인간 등 포유류 31종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다.

수산과학원 연구진이 주목한 부분은 몸무게와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 수와의 상관관계다. 최근 국내외에서 동식물 유전자 분석에 많이 활용되는 유전자인 '마이크로 새털라이트(Micro satellite)'가 주인공이다.

연구를 주도한 박중연 수산과학원 연구관은 "마이크로 새털라이트는 생명체의 염기 서열 1,000개 중에 1개는 반드시 존재하는 유전자다"라며 "이 유전자는 돌연변이 유전자이기 때문에 많으면 많을 수록 암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운을 뗐다.

바꿔 말하면 마이크로 새털라이트가 적으면 적을 수록 암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즉 세포 수가 많은 동물과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연구진이 31종을 조사한 결과 몸무게와 마이크로 새털라이트 개수는 반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페토의 역설이 증명된 셈이다.

일례로 사람의 경우 평균 체중 65㎏을 적용했을 때 60만여 개의 마이크로 새털라이트가 있었다. 반면 몸무게 5톤 정도, 인간 평균 체중의 70배인 밍크고래의 마이크로 새털라이트 개수는 46만여 개에 불과했다. 인간의 77% 수준이다.

덕분에 암에 걸릴 확률도 인간보다 적다는 게 연구의 결론이다. 

몸무게와 마이크로 새털라이트로 인한 암 발생률의 상관관계. 출처=국립수산과학원

 


박 연구관은 "메커니즘 자체는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돌연변이 발생률이 높은 마이크로 새털라이트의 양을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향후 마이크로 새털라이트를 스스로 줄인 방식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메커니즘을 규명하게 되면 인간 몸속의 마이크로 새털라이트를 줄이는 데도 활용 가능할 거라는 게 연구진의 전망이다. 활용이 가능하다면, 암 발병률을 줄일 수 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지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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