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상 APEC기후센터 소장

정홍상 APEC기후센터 소장

 

지난해 말에 파리에서 각국 대표들이 모여 202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의 기본 틀에 대해 마침내 합의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까지 함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기울여 간다는 것,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구체화한 것 등이 중요한 골자였다.

전세계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중요한 진전이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음이 관측되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의 지구 평균 기온이 파리에서 목표치로 잡은 2도의 절반인 1도까지 이미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2도 상승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도전적인 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의 문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는 풍랑에 흔들리더라도 어느 정도 이내의 각도에서는 복원력으로 인해 다시 돌아오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전복되어 버린다.

이처럼 기온 상승이 어느 범위를 넘어버리게 되면 인류와 생태계가 복원력을 잃고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티핑 포인트의 개념이다. 하지만 티핑 포인트가 과연 몇도 일지는 아직 과학자들도 정확히 모른다. 분명한 것은 기온 상승 폭이 더욱 커질수록 티핑 포인트를 마주치게 될 위험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 문제가 인류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지만 이를 억제 또는 완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할까?

무엇보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있어서 국가 이기주의가 작용하는 측면이 크다.

지구 상의 대기는 제트기류와 같은 대기 순환구조에 따라 지구를 감싸고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뒤섞이면서 돌고 있다.
어느 특정 국가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이에 따른 산업의 생산원가 상승 등 비용은 그 국가 내에 고스란히 떨어지지만, 그 혜택은, 그 국가의 대기가 다른 지역과 뒤섞이게 되므로, 전 세계 국가들이 골고루 누리게 된다. 그래서 다른 대부분 국가들이 배출가스 감축노력을 기울이면 특정한 개별 국가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더라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개별국가의 입장에서는 자체적인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이 배출가스 감축노력을 강화하도록 압력을 넣는 일종의 무임승차(free rider) 전략을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제까지 이 같은 국가 이기주의 때문에 국제협상에서 서로 눈치 보기가 치열했고 그만큼 국제사회의 대응 노력도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각 국가가 이 문제를 서로가 직시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다같이 공멸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면 다른 나라도 자기 나라 입장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가 스스로의 배출가스 감축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다른 나라들에게 감축 노력을 강화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서로 미루다 보면 결국 모든 나라가 감축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함께 합의하고 공조하여 감축노력을 강화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UN기후협상체제(FCCC)를 유지하면서 논의해 오고 있는 이유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배출가스 감축노력을 하더라도 그 혜택은 몇 세대가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매년 생산되는 배출가스량이 아니라 연도별 배출량이 쌓인 누적 총량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현세대에서 배출가스를 감축하더라도 그 비용은 고스란히 현세대에게 떨어지지만,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주로 미래세대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얼마 전 미국 캐리 국무장관이 손녀딸을 안고 파리합의문에 서명한 것은 기후변화 대응이 무엇보다 미래 세대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국가별로 재원은 한정되어 있고 당장 새로운 복지제도를 신설하면 국민들이 즉각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이 대신에 수십 년 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문제를 위해 사회적 비용을 투자하자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

현 시점에서 우리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노력이 필요하다는데 다들 공감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는 사회적인 편익과 비용을 감안하여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에 어느 정도까지 탄소 저감 또는 저장 기술이 발전해서 감축 비용이 줄어들게 될지, 미래의 경제 사회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 기후변화의 피해액이 어떻게 변할지는 현 시점에서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므로 당장 현 시점에서부터 노력해야지 더 미룰수록 피해규모는 가파르게 커진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결국 제한된 정보와 지식 하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지역별로 피해 정도가 다르다는 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 폭우 등 이상 기후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지만, 북극에 가까운 그린란드 같은 나라의 경우 얼음으로 덮여 있던 토지가 녹으면서 경작할 수 있게돼 지구 온난화로 더 유리해지는 점도 있다.

산유국들은 지하에 아직 풍부하게 저장되어 있는 석유자원의 가치 하락을 우려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지만 어려운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대응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책목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더 높은 생산비를 부담하고 가계도 대중교통을 더 이용하는 등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수출이 중요한 나라로서는 해외시장에서 다른 나라 제품과의 경쟁력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면에서도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자동차에 안전벨트를 장착하도록 의무화하면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되듯이 국제적인 법적 의무화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안전벨트 의무화의 경우 안전벨트를 만드는 회사들이 새로이 생겨나서 추가적인 경제가치를 창출하고 고용을 늘리듯이 기후변화 대응 의무화는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국제사회가 효과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치적인 결정에 달려 있다. 따라서 결국은 일반 시민들이 기후변화가 인류 공동의 심각한 문제라는 점과 해결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러 대응 노력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 각자 스스로 노력에 동참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기후변화의 피해에는 직접 노출되어 있는 반면 이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전문 인력 또는 예산 같은 자원이나 준비된 역량이 부족하다.

반면 앞으로 배출가스 생산은 이들 개발도상국에서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개도국들이 배출가스 감축 노력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하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파리합의에서도 전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개도국 지원을 대폭 강화하기로 합의한 데에는 이러한 생각이 깔려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멀지 않은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은 대표적인 기후변화의 피해국가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APEC 정상회의에서 이들 남태평양 국가의 기후변화 대처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함을 언급하면서 이를 위한 APEC기후센터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APEC기후센터는 이상 기후로부터의 보호나 기후정보를 활용한 농업 생산 향상 또는 수자원 관리 등 각 분야에서 이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면서 하나하나 성공사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정홍상 차장 약력>

-미국 코넬대학교 경제학 박사
-前)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
-前) 기상청 차장
-현재 APEC기후센터 소장

geenie49@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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