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 "'살균제'가 뭔지도 모르는 실력없는 정부"

"다른 나라에서는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다 안다. 그것을 세계 최초라고 자랑한 정부가 정신 나간 정부다. 살균제가 뭔지도 모르는 그런 정부를 우리가 믿어야 하나"

화학물질 분야 전문가의 일갈이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업체들이 제품에 '살균제'라고 이름을 붙이고 광고까지 하면서 팔아 오던 것을 정부가 방관하다가 2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에서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이 전문가는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산업자원부)가 세정제와 살균제 차이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허가해 준 정부에 일차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부 '공산품 안전 관리법' 허점이 가습기살균제 문제 낳아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출처=공식 블로그)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덕환 교수는 25일 환경TV와의 인터뷰에서 "가습기살균제는 공산품"이라는 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산업부가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 관리법'을 관리하는만큼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은 산업부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비누나 세제, 세척제 등은 공산품이고 공산품의 품질·광고는 산업부의 기술표준원에서 관리하도록 돼 있다"며 "(기술표준원은) 처음에 '세척제'라는 용도로 허용해 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세척제로 허가받은 가습기살균제는 그러나 세척이라는 이름 대신 살균이라는 이름을 달고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광고도 '물에 넣어서 사용한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식의 문구를 썼다. 하지만 당시 산업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 교수가 문제 삼는 부분이다.

이 교수는 "살균제, 살충제라는 것은 인체에 흡입이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쓰는 것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며 "정부의 잘못은 이거다. 세척제로 허가해 줬는데 제조사가 세척 용도가 아닌 방법을 소비자들에게 권장하면 정부가 나서야 했다"고 정부의 무대응을 성토했다.

단순히 무대응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산업부를 위시한 정부는 이를 제재하기는커녕 국가통합 인증 마크인 'KC마크'까지 붙여 줬다. 써도 문제없다는 표식이다. 결과는 200여 명 이상의 사망자다.

이 교수는 "다른 나라가 이 제품을 왜 안 만들었는지 10초라도 생각했으면 이렇게 못 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가습기살균제 판매 시장, 우리나라가 전세계 유일
해외에는 왜 없을까..'살균'이 갖는 의미는.. 

가습기살균제는 전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제조·판매된 상품이다. 왜 타국에서는 이렇게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지도, 팔지도 않았을까.

이 교수는 선진국 사례를 들면서 설명을 이었다. A사에서 제조한 '은나노 세탁기'가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다가 사업 자체를 접었던 사례다.

그는 "A사에서 은나노 세탁기를 미국 시장에다 소개하며 '살균력이 있다'고 광고했더니 미국 환경보호청(EPA)에서 나서서 인체 독성과 환경 독성에 대한 자료를 내라고 했다"라며 "그래서 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환경보호청에서 자료 제출 요구의 근거로 제시한 법안은 'FIFRA'라는 법이다. 이는 살균제나 살충제 또는 쥐약을 하나로 묶어서 '유독물질'로 관리하는 법으로, 살균 성분이 있다니 인체에 무해하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한 것.

이같은 사례는 유럽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 교수는 "또 은나노 세탁기를 유럽 시장에 내놓으려 할 때는 유럽연합(EU)에서 직접 나서서 살균된 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지, 담수 어류의 생태계에는 문제가 없는지 자료를 내놓으라고 했다"며 "역시 시장 진출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이게 선진국 사례"라며 "'살균력'이라는 말만 가지고도 이렇게 됐다. 그게 실력 있는 정부"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자료사진)

 


옥시 의뢰로 독성 실험 서울대 교수 "연구 윤리 위반 넘어선 실정법 위반"

이 교수는 아울러 옥시레킷벤키저가 서울대 수의대에 의뢰해 수행한 연구 결과와 관련해서도 쓴소리를 이었다. '연구 윤리'를 위반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을 때 조작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런 경우 (연구를) 거부하는 게 연구 윤리다"라며 "가감없이 하는 게 연구다. 그걸 어긴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 용역을 교수가 직접 수주한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업에서 용역을 받으려면 학교 '산학 협력단'을 통해 투명한 금전 거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기업에서 의뢰한 사항은 대학 산학협력단을 통해 돈이 오가게 돼 있다"며 "학교를 통해 받은 용역 계약을 수행하면 보고서에 연구자 이름과 함께 학교의 산학협력단장 이름이 붙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 대 기업의 계약이라면 그건 불법이다. 공개적으로 돈이 오고 가야지 그걸 개인 통장으로 받은 것 자체가 실정법 위반"이라며 "특별 격려금으로 생각했다는데,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옥시레킷벤키저와 산업부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환경부가 진행하고 있는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서도 날 선 비판을 이어갔다.

이 교수는 "질병관리본부 2011년 보고서를 보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염려해야 할 증상들이 많이 나왔다"며 "환경부가 폐 섬유화는 1급이고 뭐는 2급이고 하는데 정말 잘못하는 것이다. 과학이 뭔 지를 모르는 것이다"고 성토했다.

"보상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좀 낭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가습기살균제를 장기간 사용한 게 확실하고 몸이 아픈 게 확실하면 최소한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제안이다.

하지만 이 교수의 바람과는 달리 가습기 살균제 '3-4 등급' 피해자는 정부가 공인한 피해자임에도 보상이나 배상은 커녕 병원비도 여전히 자비로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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