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검찰은 가해 기업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하고 구속수사 하라'. 지난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모인 150여 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외친 요구다.

이들은 이날 검찰 수사의 핵심에 서 있는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제품 불매 운동을 펼치겠다는 선언과 함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대기업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지난 18일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주장하며 서울고법 앞에 선 피해자들. (출처=포커스뉴스)

 


피해자들 나섰다..옥시 제품 불매 운동 번질까

옥시의 제품 라인업을 보면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브랜드가 다수다.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중 80% 정도가 사용했던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삭 뉴 가습기 당번' 제품은 업계 1위였다. 유해성이 입증되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유해성 문제와는 선을 긋고 있지만 세탁표백제인 '옥시크린'과 습기 제거제인 '물먹는 하마'가 국내에서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외에도 항균제인 '데톨', 세정제인 '이지오프뱅', 약품군 중에서는 위 역류 치료제 '게비스콘' 인후염 치료제인 '스트렙실' 등이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다. 콘돔 제품 '듀렉스' 역시 옥시의 유명한 제품 라인업이다.

그만큼 한국 시장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옥시 제품과 관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불매 운동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유해성 있음을 공식화한 이후 5년 동안 '모르쇠'로 일관했던 모습이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등한시했다는 판단이 그 이유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대한민국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모든 단체들과 연대해 불매 운동에 나설 것"이라며 옥시를 겨냥했다.

이어 "이 땅에서 옥시를 축출해 대한민국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에 공감하는 추세다. 3만 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저라도 오늘부터 사지 말아야 겠습니다" "섬유 유연제 쉐리 쓰고 있었는데 괘씸해서 안 써야겠네요" 등의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 건강 연구실 등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000명 중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소비자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 참여하겠다'라고 응답한 이들은 89.9%, 10명 중 9명꼴이다.

24일 옥시레킷벤키저의 한국 철수를 주장하며 시민단체가 올린 이미지. (출처=환경보건시민센터)

 


'안방의 세월호 사건'…"사과 코스프레 중단하라"

이날 한 자리에 모인 피해자들은 지난 18일 롯데마트를 시작으로 한 가해 기업들의 사과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문제삼고 나섰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그제서야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발단은 이렇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 중 한 곳인 롯데마트 측은 검찰이 가해 기업 관계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한 지난 19일에 앞서 전날 대규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가 머리 숙여 사과하고 100억 원 규모의 보상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

이후 홈플러스도 언론을 통해 사과 의사를 밝혔다. 5년간 묵묵부답이던 옥시 역시 21일 깜짝 보도자료를 통해 50억 원의 '인도적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가해자라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는 '보상'이란 표현을 담지 않은 보도자료다.

모두 다 피해 상황이 밝혀진 지 5년간 '침묵'하다가 '공교롭게도'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벌어진 일들이다.

이에대해 피해자들은 "우리에게 사전에 단 한 마디 연락이 없었다"면서 "사과 코스프레, 언론 플레이를 중단하고 진심을 갖고 피해자와 대한민국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해 기업들을 일일히 열거했다. 유럽계 다국적 기업으로는 옥시와 영국계 유통 기업 테스코, 덴마크 기업 케텍스를 들었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아직 사과 여부를 밝히지 않은 애경, GS 리테일, 신세계 이마트 등 대기업과 검찰 조사를 앞두고 대국민 사과 형태의 공식적인 행보를 보인 롯데그룹 롯데마트, 삼성그룹 홈플러스 등을 꼽았다.

피해자들은 "세월호 사건이나 가습기살균제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대규모 참사"라며 "세월호가 해상 위에서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라면 가습기살균제는 안방에서 소중한 가정의 목숨을 앗아가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안방의 세월호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이날 피해자들은 옥시 측에서 실시한 위해성 조사와 관련, 서울대 수의대와 호서대 등의 교수들에게도 칼날을 세웠다. 연구 윤리를 저버린 교수들에 대해 파면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sman321@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