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白鹿潭). 제주를 상징하는 단어인 백록담은 '하얀 사슴 연못' 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제주도의 상징인 사슴과의 한 갈래인 노루는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밀렵 등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복원과 보호 활동에 힘을 쏟은 끝에 간신히 복원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 현재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돼 포획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에따라 최근 제주도는 야생 노루를 포획할 수 있는 기간을 당초 올해 6월 30일에서 오는 2019년 6월 30일까지로 3년 연장하는 도 조례안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노루로 인한 농민 피혜가 크기때문이다. 

제주를 상징하던 노루가 어쩌다가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동물이 됐을까.

노루 모습. 환경TV 자료사진

 


사슴과 가까운 섬 제주…백록담 전설 속까지 등장해.. 

제주도는 예로부터 사슴이 많이 살던 섬으로 유명해 전설 속 동물로 많이 등장했다. 실제 제주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백록담은 '흰 사슴 연못'이라는 뜻이다. 백록은 우리말로 흰 사슴이다.

옛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 정상에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흰 사슴인 백록이 산다고 믿었다. 이 백록이 먹는 맑은 물이 백록담이라는 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느 중복(中伏) 날 선비들이 제주 방선문 계곡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을 마치고 집에 가려던 한 선비는 중복에 선녀들이 계곡에 내려와 목욕을 한다는 말을 듣고 계곡 바위틈에 숨어 지켜보기로 했다.

얼마 후 정말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선비는 선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빠져 훔쳐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넋이 빠진 나머지 한 선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선녀들은 깜짝 놀라 다시 옷을 입고 하늘로 도망쳤고 옥황상제에게 이 사실을 말하게 됐다. 옥황상제는 매우 화가 나 선비를 하늘로 잡아들였고 한라산 정상을 지키는 사슴이 되도록 명했다. 

그 후로 선비는 흰 사슴이 돼 한라산 백록담을 지키게 됐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처럼 백록담 전설까지 등장하는 제주 사슴은 제주도에 서식하는 수많은 노루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문제는 그 노루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될 정도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 노루 모습. 출처=제주노루생태관찰원

 


전설 속 노루,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제주 노루는 상위 포식자가 없는 탓에 개체수가 늘어가는 추세다. 오홍식 제주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제주 노루는 2011년 기준 1만 7,70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루 개체수 증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제주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농작물을 마구 파헤쳐 먹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접수된 노루 피해는 2013년 기준 공식 집계된 것만 275개 농가에서 13억 6,200만 원으로 나타났다. 피해 면적도 78ha(약 23만 6,000평)에 달했다.

하지만 노루로 인한 피해는 실제 피해 금액이 얼마이든 최대 보상금액이 1,000만 원이 상한선이어서 제주 농부들의 원성을 사왔다. 

이에 도는 2013년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3년간 해발 400m 이하 피해 농경지 반경 1km 이내에 서식하는 노루를 대상으로 포획을 허가했다.

그 결과, 피해 면적이 2013년 78ha에서 49ha(약 15만 평)로 감소했고, 노루로 인한 피해 보상금액도 5억 600만 원에서 3억 4,700만 원으로 줄었다.

피해 감소 효과가 나타나자 제주도는 오는 6월 30일까지 결정된 포획 기간을 2019년 6월 30일까지 3년 더 연장한다는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 개정안을 17일 입법예고했다.

도 관계자는 "토론회 참석자들은 제주도가 섬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단일 종의 개체수 증가가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어 개체수 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노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노루를 포획해 개체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제주 노루 모습. 출처=제주노루생태관찰원

 


반면 환경 단체와 학계에서는 대규모 노루 포획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농가 보호에만 치우쳐 노루 포획에 몰두한다면 1980년대 노루 멸종 위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루 포획이 시작된지 2년 6개월 만인 지난해 말 기준으로 4,597마리의 노루가 포획된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식용으로 쓰기 위해 밀렵한 노루까지 포함하면 1만 마리 가량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제주도 노루 전문가는 "노루 포획이 시작된 후 흔히 보이던 노루가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며 "노루 개체수를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아차하는 사이에 노루가 멸종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전문가는 " 농작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에코펜스 등 노루 퇴치장비가 개발되고 있는 만큼, 노루를 포획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루 나이 비교. 출처=제주노루생태관찰원

 


노루 포획 이유, 농작물 피해 방지가 아닌 식용 목적일지도..

노루 포획이 허가된 이후 포획된 노루의 대부분이 식용으로 사용된 점이 드러났다.

연도별 포획 통계에 따르면 허가 첫해인 2013년에 1,285마리, 2014년 1,675마리, 지난해 1,637마리가 잡혔다. 문제는 이 포획된 노루의 92.4%(4,246마리)가 모두 식용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농작물 피해 농가나 지역 주민들이 2,900마리를 자가 소비했고, 포획 허가를 받은 대리 포획자(엽사)들이 1,346마리를 식용으로 사용했다. 포획 후 땅에 묻은 노루는 337마리뿐이다.

이같은 통계를 들어 일각에선 노루포획이 단순히 농작물 피해 예방 조치로 잡은 것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루는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유명했다. 노루 고기는 맛이 좋아서 육포로 많이 만들어 먹었고, 노루 피는 허약한 사람에게 좋다고 해 건강식품으로 섭취했다. 또한 노루뼈를 곰국으로 먹으면 골절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1980년대 노루가 멸종위기로 몰렸던 이유도 노루 고기를 얻기 위한 밀렵 행위가 한 몫했다. 

현재 노루고기를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없다. 노루고기를 목적으로 유해 야생동물 포획을 악용하는 사례가 없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hypark@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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