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지난 4월 7일은 세계보건의 날이다. 이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족한 1948년 4월 7일을 기념하는 날로 세계보건기구는 해마다 이날이 되면, 그 해의 보건숙제를 하나 제시하고 모든 회원국가이 함께 세계인의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

올해는 "Beat diabetes!" '당뇨병을 퇴치하라'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단맛을 줄이세요. 인생이 달콤해 집니다"를 내 걸었다. 세계보건기구의 그것에 비하면 무척 달콤(?)하다. 그리고 "설탕과의 전쟁"으로 홍보되고 있다.

설탕의 역사는 생각보다 무척 오래됐다. 이미 기원전 4세기경 인도에서 제조됐다고 한다. 그리고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는 이보다 훨씬 전인 기원전 8000년경부터 태평양 남서부에 있는 뉴기니 섬에서 경작됐다고 한다. 설탕보다 더 오래된 식품첨가제가 또 있을까 싶다.

이후 아랍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진 후 식민지시대에는 대규모 사탕수수농장이 경영되고, 이를 위한 노예무역이 급증했다고 하니 거의 모든 인류가 즐기는 설탕은 사실 인류역사를 변화시킨 주요한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침략의 구실이 됐던 설탕이 이제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전쟁의 대상이 됐다.
 
우리 옛말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다. 단맛을 내는 음식이 무척이나 귀했던 시절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요즘이야 설탕이 싸고 흔하지만 80년대 중반까지도 명절 선물용일 정도로 대접받았다. 어릴 적 기억으로 국수도 설탕물에 말아 먹었고, 수박도 맛이 밋밋해서 설탕을 뿌려먹었다. 어머니 몰래 설탕 한 숟가락 입안에 냉큼 집어넣고 흐뭇해하기도 했다.

설탕의 소비는 문명의 척도라는 말이 있듯이 일반적으로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리고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설탕 소비량이 많아진다. 최근까지 지구상에 단맛을 거부하는 사회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 설탕이 다시 지구적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설탕이 비만과 당뇨 등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다.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 인구는 6억4100만 명으로, 성인 8명 중 1명꼴로 비만이다. 당뇨병 환자도 2014년 기준으로 4억2200여 만 명에 달한다. 1980년 이후 거의 4배나 증가한 규모다. 

설탕이 한 때 '사랑식품'으로 대접받다가 이제는 '증오식품'으로 전락하고 전쟁의 대상이 됐다.

최근 설탕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곳은 영국이다.

영국 오스번 재무장관은 지난 3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향후 2년 이내에 설탕세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음료 100㎖당 설탕 5g이 함유된 음료에 대해 1ℓ당 18펜스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세금을 매겨서라도 설탕 소비를 줄이겠다는 의지다.

설탕 소비 줄이기 캠페인을 벌여왔던 시민단체들은 환영하고 있으나 탄산음료업계는 불공정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설탕세가 실질적으로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설탕세가 비만 개선이라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음료의 주 소비층인 가난한 이들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효과만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마케팅에 대한 규제나 비만 예방 교육 등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 정부도 세계보건의 날을 맞아 단맛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먼저 보건복지부는 당뇨(위험)인구 천만 명 시대를 맞아 국민들이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예방 수칙을 실천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어 당뇨캠페인을 연중 실시하고, 당류 저감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1차 당류저감 종합계획(2016~2020)'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을 하루 열량의 10%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당으로 환산하면 50g인데, 무게가 3g인 각설탕 16.7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대책 발표는 다소 때늦은 느낌이고 대책의 강도도 "전쟁" 수준은 아닌 듯  싶다. 사실 최근 몇 년 전 부터 우리 사회에는 단맛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고 이미 절정에 와있는 있기 때문이다. 가히 "단맛의 늪"에 빠져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너도나도 달달한 음식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꿀이 들어간 과자가 품귀현상을 빚어 사회적 신드롬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설탕이 자장면, 떡볶이 같은 대중음식을 넘어 국, 찌개나 고추장 같은 일상음식과 양념에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어느 요리 전문가의 "문제 있음 설탕 넣어유~"라는 멘트가 회자된다. 요식업계는 설탕 안 넣으면 장사 포기하는 것이라고 토로한다. 이제 단맛이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할 듯하다.

더 심각한 것은 단맛이 중독증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단 음식을 자꾸 소비함으로써 점점 더 단 맛을 탐닉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확대 재생산된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단맛 대책은 적어도 2-3년은 먼저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단맛 문제의 본질은 보다 근원적이다. 우리사회가 단맛 중독에 왜 빠져들었을까를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단맛은 뇌 내 쾌락중추를 자극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분비시키고, 세로토닌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고 한다. 단 것을 먹으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설탕은 위안음식(comfort food)이 된다. 각종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점점 단맛을 찾게 되고 결국 알코올이나 담배처럼 의존성이 커지게 돼, 단맛에 중독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단맛을 찾는 것은 혀가 아니라 뇌다.

우리의 뇌를 과다한 스트레스의 늪에서 탈출시키지 않고서는 정부가 아무리 설탕과의 전쟁을 해보아야 큰 성과가 나기 어려울 듯 싶다.

근원적인 성찰이 생략된 즉흥적이고, 전시적이고, 일회성이고, 정책을 위한 정책은 자칫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불경기에다가 20대 총선거로 온통 시끄러운 요즈음 국민들의 뇌는 과일향이 첨가된 달달한 소주에 설탕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불닭발 안주를 찾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박용현 교수 약력>

-서울대 의대 박사
-영국 버밍엄대학교 대학원 석사
-현(現)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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