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미래, 길을 묻다' 토론회 참석한 전문가 그룹, 원전 관리 시 '인재' 조심할 것 주문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에서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구 소련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례가 아닌 미국 '스리마일 섬(TMI)' 원전 사고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제기됐다. 기술적 안전성 문제가 아닌 '인재'가 사고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경고다.

31일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개최된 '에너지 미래,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출신인 박윤원 비즈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5년, 우리나라 원전 안전한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내에서의 원전 사고 가능성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바꿔 말하면 원전을 관리하는 인력만 '정신을 잘 차리면'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초대형 자연 재해가 원인인데, 우리나라의 근해에서 지진 8.0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그 보다 작업자의 실수와 운전지침서 미준수, 운전원의 판단착오 등이 어우러진 미국 TMI 원전 사고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리마일 섬(TMI) 원전 사고 (출처=원자력문화재단)

 


TMI 원전 사고는 1979년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 인근에 건립된 원전 2기 중 한 대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미국 최초의 원전 사고다. 냉각수 급수 펌프가 파손되면서 원자로 온도가 2,200도까지 치솟았다. 

이 사고로 원자로 핵연료봉이 녹아내렸고 이로 인해 대규모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됐다. 사고 발생 이후 주 정부는 8㎞ 이내의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사고 내용만 보면 2011년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으로 촉발된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TMI 원전 사고는 관리하는 인력들의 실수로 촉발된 사고이기 때문이다.

TMI 원전 사고는 냉각 시설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초동 조치만 제대로 했더라면 간단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운전 중의 운전지침서 위반, 설비 결함, 운전원의 반복된 실수 등이 겹쳐 결국 원전 설계 당시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우리나라도 사고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이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법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12년 2월 부산 소재 고리1호기에서의 단전 사고다. 당시 약 12분 동안 단전이 돼 핵연료봉을 식혀야 하는 냉각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이 사고는 은폐됐다가 이후 드러나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두 가지 사고에서 회자되듯 원전 관계자들의 촉박한 업무 일정과 무심한 절차서 위반, 비상 설비의 고장 등이 이어지는 것이 국내 원전 입장에서는 가장 위험한 요소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원전 운전실 모습 (출처=한국수력원자력)

 


패널로 참여한 허균영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역시 발제를 맡은 박 교수와 동일한 의견을 표출했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 원전이 가장 위험할 때는 원전 종사자가 안심하는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자력 분야 인력들의 실력이 차츰 낮아지고 있는데, 인력 충원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원전 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닌 그냥 '하나의' 일자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 원전 관리의 핵심은 '기술'이 아닌 '종사자'들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내 원전 안전 시설 (출처=원자력문화재단)

 


그렇다면 기술 수준은 어떨까.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원전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바탕으로 자연 재해까지 심층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기술 수준 상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방어체계를 구축했다는 의견이다.

다만 '만에 하나'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사고가 난다면 '인재'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만에 하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다.

허 교수는 "원전 사고 확률은 타 산업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고 기술자적인 입장에서도 동의한다"며 "하지만 원전 사고를 보는 본질은 확률이 작으므로 용인하자가 되면 안 되고, 한 번의 사고가 발생해도 미치는 영향이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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