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치닫는 인간의 이기심…나무 6,000그루 어디로 가야 하나..

'나무 고아원' 입구./ 출처=하남시 유튜브

 


도로를 새로 만들거나 건물을 올릴 때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나무들은 보통 베어진 뒤 '어디론가' 가게 된다. 또 자동차가 들이받아 상처 입거나 자연 재해로 쓰러진 나무들 역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상식적으로는 폐기물이나 땔감이 될 거라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나무들은 어떤 특정한 장소로 옮겨지게 된다. 바로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나무 고아원'이다. 하남시의 나무 고아원은 부모를 잃은 사람들처럼 살 곳을 예기치 않게 잃은 나무들을 옮겨 오는 일종의 '나무 뱅크'다.

이처럼 특이한 이름을 지은 데는 하남시의 작은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하남시는 도로 개설이나 확장 등 각종 공사현장에서 나오는 오갈 데 없는 나무를 ‘고아’로 여겨 이곳에 ‘나무 고아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덕분에 하남시의 나무 고아원에는 개발 등의 이유로 버려질 위기에 놓였던 나무들이 한데 모여 옹기종기 뿌리를 내리고 자생 중이다.

'나무 고아원'에 심어진 나무/ 출처=하남시 홈페이지

 


갈 곳 잃은 나무들에게 제2의 삶을 안겨준 ‘나무 고아원’ 

나무 고아원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9년이다. 당시 하남시 창우동과 신장동 일대에 심어져 있던 ‘버즘나무’가 첫 손님이다.

이곳에 있던 버즘나무는 나무껍질이 하얗게 벗겨지면서 "꽃가루가 많이 날린다"는 민원을 유발했다. 이러한 민원이 반복되자 하남시는 버즘나무를 꽃가루가 날리지 않는 ‘이팝나무’로 교체했다. 

이에따라 터줏대감인 버즘나무는 베어져 버려질 위기에 놓였고, 하남시는 나무 처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남시는 고민 끝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수용해 보호·양육하는 고아원처럼 개발 때문에 갈 곳을 잃은 나무들을 한 데 모아 키우는 나무 고아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사실 나무 고아원의 시작은 미약했다. 상처 입은 나무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하남시는 정성으로 보살폈다. 한약재 찌꺼기, 톱밥, 유기질 비료, 영양제 등으로 나무를 되살리는 데 아낌없는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나무들은 건강을 회복했고 이제 나무 고아원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는 6,000그루에 달한다. 면적도 8만 4,850㎡에 이른다. 

'나무 고아원'에 심어진 나무/ 출처=하남시 유튜브

 


사연 많은 나무 고아원 '원우'들, 재활 치료 끝에 가로수·정원수로 재탄생

나무 고아원에 모인 나무들은 대부분 인간의 개발 논리로 제 수명을 위협받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중에는 눈에 띄는 사연들도 다수다. ‘외과 수술한 버드나무’ 사연 역시 그 중 하나다.

해당 버드나무는 2001년 11월 고사하기 직전인 상태에서 발견됐다. 이 나무는 발견 당시 기둥이 반쯤 베어져 있었다. 모두가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당시를 기억하는 하남시 관계자의 회상이다.

하지만 이 나무는 3차례에 걸친 외과 수술을 받은 뒤 살아 남았고, 지금은 초록색 가지를 무성하게 늘어트린 채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나무 고아원의 상징이 됐다. 

이곳엔 다치거나 상처 입은 나무들뿐만 기증된 나무도 가득하다. 지금은 부지가 꽉 차 따로 기증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나무 고아원이 문을 열었을 때는 전국 각지에서 나무를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는 게 하남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전국 각지에서 나무 고아원으로 모여 든 나무들은 가로수나 정원수로 새롭게 태어난다. 2009년엔 나무 고아원 출신 1,000여 그루가 하남시 미사지구 한강 산책로에 심어졌다.

하남시는 그 이후에도 나무 고아원에 있는 건강한 나무들을 선별해 가로수나 정원수로 재탄생 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나무 고아원'이 있는 하남시./ 출처=하남시 홈페이지

 


또 다시 정부 개발 논리에 맞닥뜨린 6,000여 나무들.. 이제 어디로 가나?

하지만 이들이 또 다시 위험에 처했다. 중앙 정부가 해당 지역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남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적한 곳이었는데, 미사 지구가 들어오고 난 뒤로는 개발의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며 "중앙 정부에서는 나무 고아원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나무 고아원에는 버즘나무, 은행나무, 메타세콰이아 등 40여 종의 나무가 숨쉬고 있다.

어느새 시민들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도 부상했다. 이에 하남시는 이곳을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환경 사랑 배움터’로 만들 계획이지만, 중앙 정부의 계획과는 배치된다. 이대로라면 이들은 또 다시 밑둥이 베어지고 버려질 처지다.

하남시 관계자는 “나무 고아원에 ‘개발’이 시작되면 인간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은 나무들은 또다시 새 터전을 찾아 옮겨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인간의 욕심이 나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코앞이기 때문에 흘러 나온 토로다.

bakjunyoung@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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