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파렴치한이 아닙니다"..경찰조사 5일 뒤 자살

사진 = 원주 경찰서 페이스북

 


원주시 옛 한양정형외과에서 불거진 C형간염 집단감염사태의 원인을 경찰이 ‘주사기 재사용’이 아닌 ‘국소마취제 오염’으로 잠정결론을 내리면서 병원장 노 모씨(59)가 결국 주사기 재사용이라는 누명을 안고 세상을 떠난 셈이 됐다.

환경TV는 노씨의 아들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해당 사건의 전말과 경찰의 압박조사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노씨의 아들은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했던 아버지가 단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주사기를 재사용한 파렴치한 의사는 아님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월 12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원주시 옛 한양정형외과의원에서 2011~2014년 자가혈시술(PRP)을 받은 환자 927명 중 105명이 C형간염 유전자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 같은 집단감염이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3개월 전 서울 양천구 다나현대의원에서 주사기 재사용으로 C형간염 집단감염사례가 터진 것과 같은 사태로 보았다.

그러나 옛 한양정형외과 병원장인 노씨는 지난 2월 29일 경찰의 1차 조사 당시 "주사기 재사용’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다만 국소마취제 오염의 가능성을 경찰에 설명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전화를 거는 등 노씨를 압박했고 노씨는 결국 경찰조사 5일 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노씨가 세상을 떠난 뒤인 11일 해당 사건을 맡은 원주경찰서는 “사건의 원인을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이 아닌 자가혈주사(PRP) 시술 과정에서 사용하는 ‘국소마취제 오염’에 따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노씨의 1차 조사 진술과 일치한 결과였다. 

에이즈까지 운운하는 경찰의 압박수사 견디지 못해... 주사기 재사용 누명 쓰고 자살한 아버지

노씨의 아들은 12일 환경TV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1차 조사에서 경찰에 주사기 재사용이 아니라 자가혈시술에서 사용하는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이 오염된 것 같다고 진술했다”며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싶어 하셨다”고 했다. 

자가혈시술(PRP)은 자신의 혈액에서 혈소판만 분리해 다시 투여받는 시술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미용이 목적으로 이른바 '예뻐지는 피주사'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자가혈시술시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첨가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실수로 자가혈이 들어 있는 주사기를 직접 리도카인이 든 병에 꽂아서 썼고, 한 번 오염된 리도카인으로 집단감염사태가 벌어졌다는 게 노씨의 진술이었다. 

노씨의 아들은 “경찰이 아버지의 설명을 토대로 주사기 키트 수를 대조해 주사기 재사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경찰은 1차 조사 후 시간을 끌었고, 당시에는 지금(잠정결론)처럼 중간발표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경찰은 11일 잠정결론을 내리면서 “의료기기업체로부터 납품대장 등을 확보해 대조한 결과 납품한 PRP 키트와 병원에서 사용한 숫자가 일치해 주사기 등 재사용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씨의 아들은 또 “1차 조사 후 아버지가 집에 오셨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라며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고, 지난해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 사건 때문에 이미 여론이 너무 안 좋다'는 식으로 아버지를 압박했다”고 아버지와의 생전 대화를 전했다.

경찰이 주사기 재사용이 사실이 아님에도 어떻게든 노씨를 사건의 범죄자로 몰아가려고 했다는 것이 노씨 아들의 주장이다. 

“사실 아버지는 리도카인의 오염이 사용 순서를 바꾼 직원의 실수임을 알았지만 혼자 책임지려 하셨다”며 “그런데 경찰은 주사기 재사용이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간호사들까지 한꺼번에 몰아붙이고 다함께 가담한 범죄자로 만들려 했다”고 노씨의 아들은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이 압박수사에도 모자라 심지어 에이즈까지 들먹이며 노씨를 압박한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노씨는 경찰의 1차 조사 받은 하루 뒤인 3월 1일 경찰로부터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원주시보건소가 노씨 병원의 내원 환자를 검사하던 도중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 확진자 1명이 발견됐다고 같은 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환자는 문제가 됐던 자가혈주사 시술을 받은 게 아니라 교통사고로 잠깐 입원처지를 받은 환자라는 게 노씨 아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언론들은 잘못된 사실을 계속해서 퍼날랐고 경찰 측은 노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노씨는 “인과관계가 없는 에이즈 환자를 언급하며 아버지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죽음으로 몰고갔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경찰의 조사는 죄가 없다는 가정 하에 이뤄져야 하는데 경찰은 이미 아버지에게 죄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죄를 찾아내려고 수사했다”고 비난했다.  

더불어 “C형간염으로 사태가 이어지면서 아버지께서 (사태의 책임 및 부담감으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건데, 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경찰이 (주사기 재사용 가능성이 없다는 것만이라도) 정정보도를 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말하는 노씨 아들의 목이 메었다. 

3월 4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집에 돌아와 보니 난장판이 된 거실 

3월 4일 오전, 노씨가 병원에 실려가고 옆에서 거의 실신상태로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사건현장을 확인해야 하니 어머니에게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중에 노씨의 아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이 난장판이었다. 경찰은 단순히 ‘유서’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노씨의 아들은 “왜 그렇게 경찰이 유서를 찾으려고 했는지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며 “경찰이 주사기 재사용 같은 의료기기 사건이 터지니까 수사에 부담감이 있던 것은 아닐까, 압박조사 등 유서에서 나올 내용이 자신들에게 끼칠 불리함을 생각한 걸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또 “유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아버지의 기록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경찰은 노씨가 사망한 후 "1차 조사 당시 변호인과 함께 진술 녹화실에서 조사한 만큼 수사 과정에서 압박은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을 맡은 원주경찰서 수사과 과장은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게 사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서는 없었다”고 답했다. 에이즈 환자까지 얘기하며 압박수사가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도 “압박수사는 없었고 에이즈 환자까지 얘기한 건 잘 모르겠다”며 “그걸 왜 얘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노씨의 아들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에겐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또한 “아버지가 주사기를 재사용해 환자의 건강을 저버리는, 비윤리적 파렴치한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과 경찰과 복지부의 잘못을 밝히고 싶을 뿐”이라고 희망했다.

다음은 노씨 아들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단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주사기를 재사용한 파렴치한 의사는 아니다. 아버지는 1차 조사 때부터 원인이 주사기 재사용이 아니라 국소마취제 때문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이 결국 사실화 됐다. 그런데 1차 조사 후 경찰은 시간을 끌면서, 당시 지금(잠정결론)처럼 중간발표도 하지 않았다. 주사기 재사용이라는 원인이 사실이 아님에도 어떻게든 아버지를 사건의 범죄자로 몰아가려고 했다. 주사기 재사용을 했다면 의사로서 범인이 되는 거지만 그게 아니라면 경찰이 범인을 못 잡은 것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경찰이 사건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경찰의 1차 조사 후 아버지가 집에 오셨는데 표정이 안 좋으셨다. 경찰이 압박 구속수사를 하겠다며, 구속영장신청 할 수도 있다며 아버지를 압박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 사건 때문에 이미 여론이 너무 안 좋다는 식으로 경찰이 아버지한테 말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다나의원 사건 관련해서, 수사를 엮어서 하겠다고 아버지한테 압박을 했다. 아버지가 조사를 받고 더 힘들어 하신 게 그런 부분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의 감염이 밑의 직원의 실수임을 알았는데도 혼자 책임지려고 하셨다. 그런데 혼자 책임을 지겠다는 아버지에게 간호사들까지 한꺼번에 몰아붙이고 다함께 가담한 범죄자인 것처럼 만들려고 했다. 아마 경찰은 아버지의 진술 후에 납품내역과 시술수를 비교하고 주사기 재사용이 아닌 걸 알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1차 조사 받고 오셔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리고 경찰 조사받고 1일 후에 경찰이 에이즈 환자 발생했다고까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 환자는 자가혈시술을 받은 환자가 아니었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내원해 잠깐 입원처지 받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사실관계도 명확히 따지지 않고 (에이즈가 자가혈시술로 발생한 것처럼) 전화했다. 아버지는 더 힘들어했다.

C형간염 집단감염으로 사태가 이렇게 되면서 아버지께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셨다. 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경찰이 (주사기 재사용 가능성이 없다는 것만이라도) 정정 보도를 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경찰이 감염자들에 대한 후속조치는 생각도 안 하고 아버지를 범죄자로 몰아 넣고 어떻게든 건수를 잡으려고 했다고밖에는 생각이 안 든다. 경찰이 아버지께 에이즈 환자 얘기 한 것을 보면 그렇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경찰의 조사의 원칙은 죄가 없다는 가정 하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경찰은 이미 아버지에게 죄가 있다는 걸 가정하고 그 죄를 찾아내려고 수사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 사망 당시, 아침에 아버지를 발견한 저희 어머니는 병원에 계셨다. 거의 실신상태로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사건현장을 확인해야 한다고 정신없는 어머니에게 막무가내로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이 정말 난장판이었다. 경찰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유서 찾으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품인데. 수색영장도 발부안하고 뒤져서 가지고 갔다. 그거 불법 아닌가. 나는 계속해서 왜 그렇게 경찰이 유서를 찾으려고 했는지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경찰이 주사기 재사용 같은 의료기기 사건이 터지니까 수사에 부담감 있던 것은 아닐까하고. 경찰은 자신들의 불리함 때문에 유가족을 더 아프게 했다.

보건당국이 지난 7일 주사기 재사용 사건에 대해 정책 발표한 것을 보면 “여전히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 등장한다. 마음이 아프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허위사실 유포 아닌가. 보건당국은 그걸 기정사실화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자도 그런 걸로 바탕으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아버지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에게 너무 죄송스럽고 우리 가족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절대로 비윤리적인 파렴치한은 아니라는 것, 주사기를 재사용해서 돈 벌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 경찰과 복지부의 잘못을 꼭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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