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리아 로버츠 주연 한국판 '에린 브로코비치 소송'

#2012년 7월, 부산시 기장군 고리 원자력 발전소 반경 10㎞ 이내에 오랜 기간 거주해 온 이진섭씨는 법률사무소 '민심'을 소송 대리인으로 지정,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한 사건을 접수한다. 고리 원전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다.

이씨가 이런 소송을 제기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이씨의 가족은 모두 암에 시달렸다. 자신은 직장암에 걸렸고 부인은 갑상선암에 걸려 있었다. 여기에 장모는 위암에 시달렸다. 가족력이라고만 보기는 이상할 정도다.

게다가 아들인 이균도 군은 발달 장애까지 겪고 있었다. 집 주변에 있는 고리 원전을 의심하게 된 이유다.

그 결과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2014년 10월 1심에서 이씨 부인의 갑상선암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일부 책임을 인정했다. 1,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전주변 주민 500여 명 원전 상대 감상선암 소송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이씨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비슷한 사례가 수백 명에 달했다. 그렇게 원전 주변 지역의 갑상선암 소송이 시작됐다. 현재 500여 명이 이 소송을 통해 자신의 갑상선암 문제가 원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도 역시 '진행 중'이다.

출처=환경운동연합

 

원전 주변 피폭량 전세계적으로 유례 없을 정도로 높아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이자 최초로 문을 닫은 고리 1호기. 이 1호기를 포함한 고리 원전 1~4호기에서 한 때 뿜어져 나왔던 방사성 물질이 다른 원전 선진국 대비 1,000만 배 이상 높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년 가량 전인 1990년대 있었던 일이다.

문제가 된 물질은 기체 상태의 '요오드 131'. UN 과학 위원회가 2000년 발간한 방사능 피폭 보고서를 봤을 때 고리 원전 주변의 피폭량은 전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생과의 개연성을 설명할 수 있는 단초다.

UN과학위원회 및 한수원 자료 발췌. 출처=환경운동연합

 

9일 최원식 국민의당 의원과 환경운동연합이 공개한 1993년 기준 고리 원전 1~4호기에서의 요오드 131 배출량은 13.20기가 베크렐(G㏃)이다. 1990~1997년까지 8년간 전세계에서의 기록을 비교해 봐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단연 세계 최고의 방사성 물질 배출량이다.

해당 자료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와도 동일한 수치를 보인다. 국내외 적으로 확인된 자료라는 얘기다.

환경운동연합의 분석에 따르면 이 수치는 미국, 일본, 스위스 등 원전 선진국들에 위치한 원전에서 나온 수치들과 비교해 최대 1,300만 배 높다.

당시 동일한 노후 원전 중 하나인 미국 사우스 텍사스 원전 1~2호기에 비해 이 정도 수준으로 높았다. UN 보고서에 기록된 430곳의 노후 원전 중 가장 높은 수치라는 점도 '기록'이 증명했다. 그만큼 주민들의 영향이 컸을 거라는 게 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1993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 의원이 공개한 한수원의 자료를 보면 고리 원전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지 2년째인 1979년에도 UN 보고서에서 언급한 기간과 비교해 6배 정도 되는 요오드 131이 배출됐다.

그렇더라도 6배와 1,300만 배는 '간극'이 너무 크다. 그 사이 원전이 3기가 늘었다고 해도 그렇다. 원인이 뭐였을까.

"핵연료봉 피복 손상으로 방사능 물질 과다 노출"..한수원, 자료 허위 보고도

그 이유로 한수원은 제출 자료를 통해 당시 고리 2호기에서 핵연료봉 결함이 있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 측은 핵연료봉을 둘러싸고 있는 피복이 손상돼 방사성 물질이 많이 노출된 것을 그 원인으로 추정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한수원은 1992년 자료를 허위 보고하기도 했다.

한수원의 최 의원실 해명 내용. 출처=환경운동연합

 

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수원 자료는 1.76기가 베크렐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UN 보고서를 보면 당시 수치는 16.00기가 베크렐에 달한다. 약 9분의 1로 축소된 수치가 버젓이 적혀 있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수치는 1990~1997년까지 매년 비교치를 봤을 때 1992년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고리 1호기의 배출량인 15.8기가 베크렐을 1.58기가 베크렐로 오기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요오드 131의 배출이 주변에 실제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높다는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 동안 고리 원전 주변 지역에 거주했던 이들의 암 등 발병률이 다른 기간에 비해 높았다.

백도명 교수의 인과관계 분석 자료 중 발췌. 출처=환경운동연합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통계적 유의성은 떨어질 것으로 보이나, 전체적인 시기와 기간에 대한 양상은 환경에 노출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법무법인 민심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으로 모두 592명의 원전 주변주민 갑상선암 공동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2월 25일 촉발된 갑상선암 집단 손배 공동 소송의 참여자 중 42% 정도 수준인 249명이 고리 원전 주변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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