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 이례적 보도자료 제공, 8개월 만..내용 들여다 보니..

국가정보원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7월 '해킹 프로그램 논란'에 대한 입장 보도자료를 내놓은 지 8개월 만이다. 그만큼 정보기관이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테러방지법 제정 관련 입장'이라는 제목의 이 보도자료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감청이나 개인정보 수집 등의 남용 우려가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기간을 통해 제기됐던 여러가지 논란점에 대한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모양새다. 2014년 3,500만 명이 가입한 SNS '밴드' 메시지 감청 의혹과 전 정부에서 제기된 민간인 사찰 문제 등의 논란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탓도 한 몫 했다.

내용별로 보면 국정원은 "'통신 감청·개인정보 수집 권한' 등의 남용 우려가 있었던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며 "통신정보 수집은 법원 허가 등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고, 금융정보도 부장판사가 포함된 금융정보분석원 협의체의 결정이 있어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권한 남용'은 없다는 얘기다.

국정원 보도자료 일부 발췌. 출처=국정원

 

하지만 국정원의 이같은 입장은 현실과는 '약간' 괴리를 보인다. 우선 통신정보 수집의 경우 법원 허가가 있어야 한다지만 통신비밀보호법 8조를 보면 '국가인보를 위협하는 범죄의 실행 등 긴박한 상황일 경우 긴급 감청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사후 36시간 이내에 법원 허가를 받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이미' 감청을 한 뒤다. 법원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감청했던 사실을 무위로 돌릴 수는 없다. 야당이 "테러방지법으로 무제한 감청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사실상 감청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계좌 추적 등 금융 정보 문제도 논란의 대상이다. 국정원은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법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정보 제공을 요청한 뒤에나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 제9조를 보면 '테러위험인물에 대해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관련정보 수집'에 절차가 있을 뿐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핵심이 되는 부분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다. 국정원은 "UN이 지정한 테러단체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ㆍ기부 기타 예비ㆍ음모ㆍ선전ㆍ선동을 했거나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대상을 '엄격'히 제한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문제는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대한 정의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로 판단 가능한 대목이지만 이를 정하는 기준이나 결정권자에 대해 국정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원장이 국문 누구든지 임의로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판단, 감청 등을 시도해도 법령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17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서 "국정원은 이미 3,500만 이용자가 있는 네이버 밴드를 조사한 바 있다. 철도노조 관련 발언이 나온 방은 모두 조사했다"며 "국정원은 카톡, 밴드 뿐 아니라 내비게이션도 사찰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이나 '민간인 사찰'은 불가능하며 일반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국정원의 입장 표명이 무색하기 들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최소한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입법 과정에서 나온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국민들께 보여드리겠다"며 마지막을 갈음했다. 근거 제시보다는 '믿어 달라'는 얘기다.

한편 이같은 국정원의 테러방지법 남용 우려는 감시 수단 역시 우려되는 대목으로 제기되고 있다.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가테러대책위원회'에 대테러 인권보호관을 배치하도록 한 부분이다.

국정원의 보도자료에는 언급되지 않은 '보호 장치'이지만 이 역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한 명이 국정원의 모든 부분을 어떻게 감시하고 인권 침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나"며 혀를 끌끌 찼다. 2005년 김대중 정부 당시 도청팀 운영을 실토한 국정원의 '믿어 달라'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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