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째 옥시레킷벤키저 여의도 본사 앞에서 천막 치고 농성하는 사연 들어 보니..

"춥지 않으세요" "얼어 죽을 거 같더라고요"

1일 오후 3시30분쯤 가습기살균제 피해 발생의 중심에 서 있는 영국계 기업 옥시레킷벤키저가 입주한 서울시 여의도 소재 IFC 빌딩 앞에서 만난 안성우씨(40)와 처음 나눈 인사다.

이날 오전 기상청에서 밝힌 서울 지역의 체감 온도는 영하 13.4도, 이런 '험악한' 날씨지만 그는 오는 2일 정오까지 24시간 여의도 대로변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계획이다. 이 일도 벌써 10주째라고 한다. 지난 주에는 올 겨울 '최강' 한파가 몰아쳤지만 그 때도 그는 이 자리를 지켰다.

왜 그랬을까. 더욱 더 의문이 든다.

가습기살균제로 임산부이던 아내와 태아를 잃은 안성우씨(오른쪽). 사진=신준섭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안씨에게서 모든 걸 빼았다

부산에 사는 그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지난해 11월25일이다. 10박 11일,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서 전국 각지를 거쳐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열흘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안씨는 전국의 지방검찰청에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들을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자신의 일도 내팽개치고 자전거 한 대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텐트, 침낭만을 들고 돌아다녔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부모님께 맡겼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안씨는 가습기살균제로 임신한 아내와 태아를 다 잃었다. 5년 전인 2011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아내의 나이는 34세였다. 4살바기 아들과 함께 둘째를 기다리던 안씨의 가정에 벌어진 참사다.

안성우씨가 농성하는 텐트에 걸린 피해자 그림. 사진=신준섭 기자

 

5년이 흘렀지만 그에게 해결된 문제는 없다. 시위에 나섰어도 마찬가지다. 안씨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24시간 농성을 하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합니다"라며 "옥시레킷벤키저 사람이 찾아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말문을 뗐다.

140여명에 달하는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들 중 그의 사례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사실 피해자들을 대표해 시위를 이어가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환경부에서 지난해 말까지 진행한 3차 피해자 접수에 신고한 이유와도 관련이 깊다.

아내가 가습기살균제로 태아와 함께 사망할 당시 뱃속 아이는 8개월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상 24주 이상이면 어떤 경우에도 낙태조차 불법이다. 법령조차 우회적으로 사람으로 판단했을 시기지만 둘째는 세상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둘째는 30주 이상이었다. 이 때면 태아는 심장은 물론 감각 체계도 다 갖추고 웃고 화내고 찡그린다. 하지만 그 기회는 세상 밖에선 주어지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다. 안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인터뷰 중 날짜를 확인하고 있는 안성우씨. 사진=신준섭 기자

 

더욱 안씨를 가슴 아프게 한 건 정부다. 환경부는 2014년까지 1~2차에 걸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고를 받으면서 태아는 신청조차 받지 않았다. 안씨가 지난해가 돼서야 피해자로 신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안씨는 "정부에 물었더니 태아는 조사 자체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산모가 가습기살균제로 죽었는데, 당연히 태아도 영향이 있었을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조사할 방법이 없다고만 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남은 아들에 대한 걱정도 평생..
상황 여전하지만 정부는 '덮을' 생각만..

3차로 접수를 하기는 했지만, 안씨는 여전히 불안하다. 남은 9살 아들 때문이다. 안씨의 첫째 아들은 '폐섬유화'를 앓고 있다. 그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안씨는 "쉽게 말하면 폐의 한 부분이 산소 발생을 평생 못 하는 병입니다. 1년에 한 번 관찰하지만 평생 치료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동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모임의 강찬호 대표와 다른 피해자인 박기용씨, 최승용씨도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와중에 피해자들 사이에서 폐 이식 얘기가 나왔다.

안씨는 "폐 이식을 하더라도 5~7년밖에 못 사는 시한부 인생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설령 폐 이식을 받더라도 첫째의 병이 낫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인 평가다.

이 논의는 피해자 중 폐섬유화에서 폐암으로 발전한 경우가 있다는 얘기까지 이어졌다. 다들 불안해 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안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분노를 정부와 옥시레킷벤키저를 포함한 가해기업으로 이끌었다.

안성우씨가 혹한 날씨 속 10주째 시위를 벌이고 있는 IFC빌딩 앞 농성 천막. 사진=신준섭 기자

 

정부는 피해자들이 아산병원에서밖에 검진을 못 받도록 해 놓은 데다가 추가 피해 접수를 받지 않은 면에서, 기업은 사과는커녕 가습기살균제 독성 시험 보고서조차 안 내 놓은 면이 원인이다.

안씨는 "가습기살균제는 폐뿐만 아니라 눈 등으로도 흡입됐을텐데, 그 영향을 조사하는 곳은 환경부가 지정한 아산병원밖에 없습니다"라며 "전국에 조사할 수 있는 병원을 지정해 조사를 해야 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계속해서 피해자가 나오는데 환경부는 더 이상 피해자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라며 "마치 '개눈 감추듯' 이 사안을 덮고 싶어하는 듯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기업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이었다. 옥시레킷벤키저를 예로 들자면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기 이전 독성 실험 결과조차 내놓지 않고 있는 부분 등이 피해자들을 더욱 더 분노하게 만든 부분이다.

안씨는 "피해 배보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전제"라며 "옥시레킷벤키저를 포함한 기업들은 국민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진정 어린 사과를 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안씨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했지만 여운은 여전히 남았다. 서민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농성으로 지친 그에게 "지원의 손길은 있느냐"고 질문하자 답은 다른 피해자인 박씨에게서 돌아왔다.

박씨는 "피해자 중 잘 사는 사람이 없어서 (안씨를) 돕지도 못한다"며 "서민들만 죽고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서민만 죽는 나라,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다시 곱씹어 보게 만드는 '흐림'이다.

sman321@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